2020-01-16 08:15  |  오피니언

[추니박과 함께 걷는 그림여행④] 스물일곱... 군 입대를 앞두고 떠난 이별여행, 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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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여행 90X190 한지위에 아크릴 2018 / 그림=추니박
[아시아아츠=글 그림 추니박]
나는 호적으로 두 살이 줄어있어 사는데 조금은 불편한 적이 많다.

내가 어렸을 때 동네 이장님이 한꺼번에 출생 신고를 몰아하는 바람에 내 고향 친구들은 생일이 하루 차이로 쪼르륵 줄을 서있다. 그러나 그 두 살이 줄어있어 내 인생의 큰 기회를 갖기도 했으니 어쩌면 줄어든 그 두 살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만약 내 나이가 제대로 돼 있었다면 22살에 대학 입시를 준비해 23살에 홍익대 미대에 진학하지 못했을 것이다. 호적이 줄어 있는 관계로 영장을 연기하고 입시를 할 수 있었으니 정말 하늘이 준 선물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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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50X60 한지에 수묵채색 1991(대학4학년) / 그림=추니박

나는 대학 4학년 때 학교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후 드디어 영장이 나왔다. 실제 나이로 27살, 군 입대를 하기에 조금... 아니! 아주 늦은 나이에 와이프를 두고 군대를 가야 하는 막막한 상황을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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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신부 80X80 한지에 수묵채색 1991(대학4학년) / 그림=추니박

그 당시 나는 망원동의 반 지하 방에서 신혼살림을 하고 있었는데 저녁마다 밥상 앞에서 울던 와이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92년 7월 군 입대를 위해 우리는 살림 전부를 충북 영동에 있는 시골집으로 보내야 했다. 이삿짐을 옮기던 날 그나마 살림 중에 제일 아끼던 냉장고를 트럭에 실을 때 눈물을 흘리던 와이프의 모습은 아직도 내 눈시울을 적신다. 26살 대학 시절 결혼을 해서 1년 넘게 둘이서 열심히 재밌게 살다가 어쩔 수 없는 이별을 해야만 했으니 얼마나 슬프고 마음이 아팠을까!

시골로 짐을 옮기고 우리는 다니고 있던 미술학원 수업도 정리하고 있는 돈을 다 모아서 10일간의 남도 스케치 여행을 떠났다. 당시 우리는 알바로 돈을 모아 빨간 프라이드를 사서 시간이 날 때마다 스케치여행을 다녔었는데 그 여행을 끝으로 차도 2년간은 주인 없이 버려져야 하는 상황이 됐으니 우리의 여행은 이래저래 슬픈 여행이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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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남도풍경 162X130 한지위에 아크릴 2018 / 그림=추니박

우리는 서해안을 따라 남도로 내려가기로 하고 최종 목적지만 진도로 정했다. 아름다운 서해의 풍경을 즐기며 막연하게 진도로 가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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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사생-고창가는 길 2018 / 그림=추니박

서해안의 매력은 노을을 보는 저녁시간의 풍경을 감상하는 일이다. 노을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지만은 서해의 노을은 갯벌과 함께라서 독특한 장면을 연출한다. 검은 뻘 사이에 고인 물웅덩이와 바다와 노을이 연출하는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작은 언덕이나 야산으로 올라가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영광군에 속한 해안도로는 군데군데 야산을 끼고돌아 여기저기 노을을 감상하기 좋은 장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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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사생-언덕길 2018 / 그림=추니박

여행 3일째 되는 날 우리는 드넓은 갯벌이 펼쳐진 풍경에 매료되어 바다를 쳐다보고 있다가 저 멀리 뻘 안에서 일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호기심 많은 우리는 바지를 걷고 한참을 걸어 힘겹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분들은 작은 소쿠리를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잡고 있었는데 눈에는 띄지도 않는 것이였다.

궁금한 내가 애써 물으니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장어 잡아요” 라고 짧은 대답을 했다. 아마 낯설고 또 어리기까지 한 이들이 그 먼 뻘 안까지 들어와서 그런 걸 물으니 이상하게 생각했나 보다. 그래도 전혀 개의치 않는 내가 장어가 안 보이는데 먼 장어를 잡는 거냐! 왜 잡느냐! 잡아서 뭐하느냐! 힘들겠다! 집에는 안 가느냐! 쉴 새 없이 물으니 나중에 경계를 풀고 새끼를 잡아서 양식장에 파는 거라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나와 와이프는 설명을 들은 대로 바구니를 들고 열심히 일을 돕다가 해가 완전히 졌을 때 뭍으로 나왔다.

우리는 갯벌에서 나와 아저씨의 저녁이나 먹고 가라는 소리에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뒤를 따라 집으로 갔다. 그렇게 아저씨 아주머니 댁에서 갓 잡아 삶은 새우와 바다 해초로 만든 반찬으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그러다 급기야 내 입담에 넘어간 아저씨는 술 끊은 지 몇 년 되셨다면서 아껴뒀던 선반 위의 산삼 주를 꺼내 나와 대작을 해주셨다. 술을 몇 잔 하신 아저씨는 우리를 보니 집 떠난 자식들 생각난다며 신이 나셨고 그 사이 아주머니께서 다른 방에 예쁜 이불로 잠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우리는 졸지에 따뜻하고 운치 있는 방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일어나 나는 마당을 깨끗이 쓸고 아침 식사 후 와이프가 설거지도 깨끗이 해드렸더니 무뚝뚝하던 아주머니가 입도 여시고 살갑게 대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떠날 때가 되자 한 며칠 더 묶고 가라고 한사코 말리시는 바람에 우리는 아주 무거운 이별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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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있는 풍경-고창 46X60 한지위에 아크릴 2018 / 그림=추니박

그 섭섭한 마음을 달래 드리려고 집을 배경으로 서 계신 아저씨를 그림으로 그려드리고 우리는 남쪽을 향해 차를 몰았다.

영광면 두우리는 그 이후 우리에게 아주 따뜻한 기억으로 남은 장소로써 오랫동안 기억되었는데 20년이 지나서 다시 그 집을 찾아갔었다. 마침 장날 영광읍내를 나가셔서 얼굴은 못 뵙고 통화만했는데 그 분들도 우리를 기억하고 계셔서 더 반갑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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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사생-흰비닐이 덮힌 흙 2018 / 그림=추니박

나와 와이프는 그 길로 고창, 함안, 무안, 장성, 목포, 해남을 지나가며 아주 많은 그림을 그렸다. 좋은 풍경이 나오면 무조건 서서 스케치를 하고 점심에 호숫가나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김치찌개도 끓이고 삼겹살도 구우면서 꿈같은 여행을 했다. 아마 그때부터 남도의 고즈넉한 언덕과 들판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붉은 땅과 초록이 어우러진 남도의 풍경은 정말 어머니의 품 같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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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사생-영광 2018 / 그림=추니박

2018년 4월 혼자 고창과 영광으로 봄기운이 가득한 붉은 땅을 그리러 스케치 여행을 다녀왔다. 고창의 보리밭 풍경도 그리고 아기자기한 언덕풍경을 그리려고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어느 한적한 아주 작은 호숫가를 가게 됐는데... 세상에나 28년 전 그때 맛있는 점심을 먹다가 이 행복을 잠시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소중해서 눈물이 난다며 밥을 문채로 눈물을 주르륵 흘리던 와이프를 끌어안고 슬프게 울던 그 장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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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사생-파란지붕 창고 2018 / 그림=추니박

나는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 한 참을 서서 멍하니 연못 같은 작은 저수지를 바라보았다. 그때의 나는 흰머리가 잔뜩 난 중년의 화가가 돼있는데 나의 기억은 금세 그 시절 그 슬프지만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얼른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행복했다. 그 장소를 다시 만나고 그 마지막 이별여행을 하며 가장 극적이고 슬픈 눈물을 함께 흘리던 그곳에서 청춘의 우리를 추억하니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청춘은 그런 것이다... 지나야 더 소중한 걸 아는...

어쨌든 우리는 그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진도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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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밭이 있는 풍경 90X190 한지위에 아크릴 2018 / 그림=추니박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감자 서리를 해서 버스 승강장에서 삶아 먹던 추억도, 폭풍 같은 비가 내려치던 차 안에서 일기를 쓰고 잠을 자던 그 무섭던 진도의 밤도, 빗속을 걸어가던 낯선 이를 태워준 덕분에 진도에서 가장 맛있는 밥상을 받아 본 것도, 길에서 만난 할머니를 태우고 해남의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달려가던 그 황당한 기억도 그 여행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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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하여 90X120 한지위에 먹, 아크릴 1991(대학4학년) / 그림=추니박

슬펐지만 우리는 그 여행을 통해 서로의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다지고 힘든 세상을 굳건히 살아갈 용기를 얻어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해가 쨍쨍 째는 한여름 와이프를 홀로 두고 논산으로 내려가 연무대로 입소했다.

아! 그때 그 심정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추니박과 함께 걷는 그림여행] 글·그림 추니박

추니박(박병춘)은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을 비롯해 32회의 개인전과 200여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00년부터 산수풍경시리즈를 시작하고 그동안 독특한 작품을 발표해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그는 2010년 중앙일보 주최 평론가가 뽑은 3040작가 1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많은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추니아트’로 미술 애호과들과 소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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