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3 09:00  |  오피니언

[추니박의 인도 여행기] 긴장과 두려움을 안고 난생 처음 떠난 해외여행, 인도①

나를 버리고 떠난 인도로의 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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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젖은 인도기행 스케치북 2001 / 사진=추니박
[아시아아츠 = 글 그림 추니박]
"나를 버리고 떠난 인도로의 여행’은 2001년 1월 17일부터 2월 16일까지 한 달간 인도의 뭄바이에서 아잔타, 오르차, 카주라호, 아그라, 올드델리를 거쳐 조드푸르, 자이살메르의 타르 사막까지 배낭여행을 다니며 스케치북에 썼던 여행 일기입니다. 당시 여행을 다녀와서 책을 출판할 생각으로 글과 그림을 그렸지만 그해 장마에 반 지하 살림살이가 물에 잠기면서 스케치북의 여러 페이지가 물에 훼손이 되었습니다. 결국 출판을 포기하고 오랫동안 방치해 뒀던 스케치북을 다시 꺼내 상태가 양호한 곳의 글 몇 편을 독자님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일기 형식의 짧은 글과 메모, 삶에 대한 단상 등 글의 길이가 달라 한 번에 두 세편의 글을 함께 싣기도 하고 어떤 글에는 그림이 한 두점만 실리기도 하겠습니다. 시골 출신 젊은 화가가 처음으로 나라밖 여행을 하며 낯선 곳에서의 긴장과 놀라움으로 이것저것 사소한 것들을 기록하며 젊은 날의 한 때를 보낸 기록으로 가볍게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아티스트 추니박 -

나를 버리고 떠난 인도로의 배낭여행

(1) 긴장과 두려움을 안고 난생 처음 떠난 해외여행, 인도

떠나는 날!

춥고 긴 밤을 보냈다.

인도에서의 밤이 이렇게 길진 않으리라!

수도는 얼고 보일러는 터지고 떠나는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우는 날씨가 밉기만 하다. 이것저것 할 일을 두고 떠나는 마음이야 막상 떠나면 그만이지만 어린 아들을 돌보고 그 밖의 많은 일들을 혼자 해내야 하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이제 드디어 기대하던 첫 해외여행을 떠나는 기로에 서있다. 앞으로 내 미래에 얼마나 많은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런 것들을 통해 내 마음이 커지고 넓고 광활한 안목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보자!

나의 해외 첫 여행은 ‘친구 따라 인도가기’라는 여행사의 1개월 배낭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른 새벽 인천공항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먼저 떠나는 16명의 팀원들을 힐끔힐끔 곁눈질해 보았다. 나를 포함해 남자는 둘이고 다들 대학생들이다. 다른 남자 한 명이 마침 나와 동갑내기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말동무가 있으니,,,

한 달 동안 배낭 팀을 이끌 팀장은 ‘디아’라는 이름을 가진 아주 믿음직스럽고 당차 보이는 성격과 외모를 가진 여자다. 이런 여행에서 좋은 리더를 만난다는 건 좋은 말과 마부를 가진 격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인도 여인 같은 외모에 다부진 리더를 만난 건 행운이다.

이제부터 사람을 만나는 여행의 시작이니 마음 활짝 열고 세상 사람을 다 내 품에 담으리라!

2001. 1. 17 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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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계곡,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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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해,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홍콩 공항에 도착했다.

난생처음 밟아보는 이국땅이지만 아직도 인천공항에 있는 기분이다. 게이트를 지키는 안전요원들과 서비스 요원들이 홍콩 말을 한다는 것 이외에 아직 나는 3시간 30분을 비행기로 날아왔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가 없다.

날씨는 덥고 사람들은 축 늘어진 채 이리저리 의자에 걸터앉아 있다. 적당히 다른 얼굴과 다른 언어들이 섞여있어 좋다.

옆에 앉은 인도 여인의 공부하는 모습과 줄을 서서 탑승을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가 이웃 같다. 아마도 내가 국제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갈 조짐이지 않을까, 서울서 멀어지자 아침에 보고 나온 아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점점 더 집에서 멀어져 간다.

2001. 1. 17 홍콩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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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석양,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어둠이 내리는 방콕시를 뒤로하고 봄베이로의 마지막 비행을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허공을 뚫고 비행기가 구름 위로 올라서자 저 멀리 석양이 보인다. 하늘에서 경험하는 첫 번째 일몰이다.

새삼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동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엄청난 일을 생각해낸 위대한 화가이자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부터 날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라이트 형제 까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천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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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위의 구름과 그림자,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형용할 수 없는 색깔로 물들인 저 하늘의 모습은 과연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위대한 자연의 작품이다. 길게 가로로 드러누워 강열하게 불타는 하늘의 구름 숲, 그 사이로 비행기가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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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위의 섬,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찬란한 역사, 부와 문명을 공유했던 그 화려했던 나라 인도를 향해 날아가는 마음, 그것은 첫사랑의 그 순수하고 긴장됐던 감정만큼 설레이는 일이다.

2001. 1. 17 봄베이로 가는 비행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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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사이로 보이는 땅-섬 ,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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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 본 풍경, 종이에 수성펜, 2001 / 그림=추니박


꿈에 그리던 해외여행의 첫 도착지 봄베이!

인도 말로 뭄바이( Mumbay)라고 불린다.

봄베이 공항 활주로는 유난히 길이가 짧은 탓에 비행기가 땅에 닿자마자 속도를 줄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커다란 비행기가 행글라이더가 땅에 내릴 때 단걸음으로 재빠르게 속도를 줄이듯 굉음을 내며 바닥을 미끄러져갔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허가를 받는 동안에 우리 일행은 플라스틱 타는 냄새에 숨을 쉬지 못했다. 대학을 진학하기 전 PVC 공장에서 잠깐 일을 해본 터라 그 냄새를 잊을 수가 없었는데 다름 아닌 국제공항에서 그 냄새가 진동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팀장인 디아는 여러 번 인도에 와 익숙해서 그런지 냄새를 맡을 수 없다면서 어쨌든 우리가 맡은 바로 그 냄새가 인도의 전형적 냄새라고 했다. 매캐한 냄새와 지저분한 실내뿐 아니라 공항의 시설도 정말 형편없기 짝이 없었다.

특히 환전소에서 근무하는 인도 여성은 무례할뿐더러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여성이라는 것에 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과 사람이 엉켜 아수라장이 된 공항 앞에서 디아의 능숙한 흥정으로 택시 네 대를 잡아타고 1시간을 달려 타지마할 호텔 근처로 왔는데 내 생에 가장 난폭하고 무섭고 넌덜머리 나는 드라이브를 했다.

택시는 다 부서져가는 낡고 작은 차였고 사이드미러도 없고 깜빡이도 없는 상태였다. 더욱이 운전사는 불만스럽고 짜증 나다 못해 경멸스러울 정도로 불친절한 사람이였다.

아마 이곳 숙소까지 오는데 한 50번은 사고가 날 뻔했던 것 같고 급기야 우리 앞에 가던 인도인 차가 사람을 치였는데 다친 사람이 입에 피를 흘리면서 벌떡 일어나더니 미안해하며 자기를 친 차에게 그냥 가라는 손짓을 했다. 물론 그 앞차는 그냥 가버렸다.

사람을 치고 그냥 가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의 연속이였다.(나중에 알고 보니 무단횡단을 하다 사고가 나면 당사자가 더 큰 처벌을 받기 때문에 그렇다고 함)

내가 탄 택시는 목적지로 오는 동안에 경적을 한 1000번은 울린 것 같다. 오죽했으면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며 차를 타고 왔다.

도로는 좁고 복잡해서 그야말로 사람과 차와 자전거와 오토바이, 오토릭샤, 리어카가 뒤엉켜 지옥 같았고 길 양쪽으로는 한 시간 내내 거지 떼들이 모여 사는 것처럼 다 쓰러져가는 빈민굴이 즐비했다.

그 속에서도 엄마에게 매를 맞는 어린아이를 보자 특히 가슴이 아프고 집에 두고 온 아들이 죽도록 보고 싶었다. 또한 환경 때문에 사랑보다는 매로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그 처지가 너무 불쌍하고 마음 아프기도 했다.

슬픈 풍경! 그러나 살아있었다.

온통 도시가 살기 위해 날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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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호텔,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끔찍한 택시가 우리를 내려놓은 곳은 인도에서 가장 비싸다는 타지마할 호텔 앞이였다. 나는 일행들과 무거운 배낭을 배고 어두컴컴한 길을 말없이 걸었다.

우리의 숙소는 그 타지마할 호텔 뒤편 빈민가에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였다. 새벽의 아라비안 해가 어둠 속에 출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바다를 향해 길게 쳐진 난간에 끝도 없이 길에 늘어선 인도의 청년들이 ‘나마스테’를 건네며 인사를 했다.

그 사람들의 벽을 따라 걸었던 10분여의 시간은 무섭고 긴 공포를 경험한 순간이였다. 낯선 곳에서의 공포,,, 그들이 건네던 눈빛이 애절하고 섬뜩하기도 했다.

그 청년들이 늘어선 뒤편으로 아라비안 바다를 낀 커다란 연회장에서 새벽까지 결혼식 연회를 즐기는 호화찬란한 부자들의 파티가 1루피의 꽃을 팔기 위해 배낭에 매달리는 소년의 모습과 뒤엉켜 나를 짓눌렀다.

돈이 많다면 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러나 그것이 어찌 가능한 일인가!

이 세상 어떤 부자라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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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 해변의 일출,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숙소 환경이 열악해서 천정이 뚫린 가림 막을 쳐서 방을 만든 게스트 하우스에서 이 글을 쓰니 정말 이게 생시인가 꿈인가 싶다. 공항에서부터 정신이 나간 탓에 이 모든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곳에 있고 정신이 드니 집 생각이 난다. 집 수도가 얼어 밤새 가스 불을 들이대 녹이느라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날아온 인도는 습도가 높아 한여름을 연상케 하고 머리 위에선 낡고 허름한 선풍기가 돌아가며 드르륵드르륵 소리를 낸다.

낯설고 무섭고 재밌는 세상에 온건만은 확실하다. 내일 아침이면 좀 적응되길 기대하며 난생처음 떠나온 인도로의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그런데 떠나온지 하루 만에 서울에 가고 싶다.

2001. 1. 18 여행 첫날 뭄바이 인디아 게스트하우스에서


[추니박의 인도 여행기] 글·그림 추니박


붉은 밭이 있는 남도의 풍경그리기 / 출처='추니아트' 유튜브


추니박(박병춘)은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을 비롯해 32회의 개인전과 200여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00년부터 산수풍경시리즈를 시작하고 그동안 독특한 작품을 발표해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그는 2010년 중앙일보 주최 평론가가 뽑은 3040작가 1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많은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추니아트’로 미술 애호과들과 소통 중이다.



chang@asiaart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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