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0 12:55  |  오피니언

[추니박의 인도 여행기]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로운 인도인들의 영혼②

[아시아아츠 = 글 그림 추니박]
아침 일찍 서둘러 일어난 일행들은 새벽 공기를 마시며 타지마할 호텔 앞 공원에 모였다. 디아의 뒤를 따라나선 공원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아침 운동을 했다. 잘생기고 품위 있어 보이는 노인분의 리드에 맞춰 열심히 요가를 했다. 특히 적극적으로 따라 하는 나의 퍼포먼스 덕에 다들 웃으면서 금세 친숙해졌다. 요가를 하는 것을 티브이에서 가끔 본 적은 있지만 그렇게 흥미로운 운동인지를 몰랐다.

요가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까지도 너그럽게 만들어 주는 정말 인도인다운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 콧구멍을 막고 다른 쪽으로 숨을 들이셨다 내뱉는가 하면 히히히히 웃으며 몇 걸음 앞으로 나간 후 만세를 부르며 하하하하 웃는다든가 옆 사람과 건배를 하는 자세로 악수를 하며 신이 나게 웃을 때는 정말 배꼽이 빠질 것 같았다. 아마 인도 사람들이 그 가난 속에서도 즐겁게 살아가는 원동력이 바로 요가가 아닐까 싶었다.

지난밤 인도에 도착해 느꼈던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웠던 감정들은 현지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그런대로 사람들과의 만남이 편해지고 있다. 거리의 사람들과 부딪히며 있을 때의 혼잡스러움 때문에 가끔씩 혼자 있거나 조용한 시간엔 상대적으로 평소보다 몇 배의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얼굴이 까매서 낯설게 느껴졌던 인도인들을 이제는 똑바로 쳐다볼 수 있게 되었다. 도착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인도 사람들의 내면을 살짝은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거지들과 공원에서 스치는 사람들 곳곳에 장사를 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생동감 넘치는 인도의 모습을 보게 된다.

지금 나는 뭄바이에서 1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엘리펀트 섬을 왔다 돌아가는 배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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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섬 석굴사원, 종이에 먹, 아크릴, 2001 / 그림=추니박


엘리펀트 섬에는 석굴이 다섯 개가 있는데 입장료를 10달러나 받는데 비해 그리 대단한 유적지는 아니었다. 석굴 하나만 제대로 완성이 돼있고 나머지는 파다가 말고 그냥 방치해둔 석굴이였다. 서기 400년경에 만들어진 석굴은 돌산을 그대로 파고 들어가 시바신과 그 외의 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조각으로 만들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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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치기 원숭이, 종이에 붓펜, 2020 / 그림=추니박

그러나 이미 책과 사진들을 통해 익숙한 지라 그다지 놀랍게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사방천지를 뛰어다니는 원숭이 떼였다. 나무 위나 바위에 앉아 있다가 순식간에 달려와서 사람들이 들고 있는 가방이나 비닐봉지를 빼앗아 달아나기 일쑤였다. 어떤 사람은 원숭이가 할퀴기까지 해서 사람들이 공포심을 느끼기도 했다.

석굴 입구에 앉아 조용한 시간을 보내며 스케치도 하고 일기도 쓰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동굴 앞의 가게에서 70루피를 주고 인도 맥주를 마셨는데 그런대로 맛이 괜찮았다. 인도는 빈병이 귀하기 때문에 병으로 된 음료수나 술을 마실 경우에 그 가게에서 다 마셔야만 한단다. 안 그러면 병 값을 치러야 한다고 주인이 옆에 꼭 붙어 있었다.

아침에 배탈이 날까 봐 두려워서 계란 프라이 두 개로 배를 채우고 낮에 바나나 한 개 오렌지 한쪽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래도 물을 갈아먹은 탓인지 팔뚝과 발에 좁쌀 만 한 두드러기가 돋았다.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아라비안 해! 이름으로 듣던 그 바다는 너무 지저분한 구정물 같다. 어디를 가도 개발이 문제고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2001.1. 18 봄베이로 돌아가는 배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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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인디아, 종이에 펜, 2011 / 그림=추니박

엘리펀트 섬에서 다시 타지마할 호텔 앞 포트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네 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아라비안 해안을 끼고 들어서 있는 기념문 인디아 게이트 앞 광장엔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과 사진을 찍는 인도 현지인, 땅콩을 팔고 짜이를 파는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어젯밤의 그 낯설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관광객이 붐비는 살아있는 인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인도의 청년들은 어찌나 호기심이 많은지 괜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따라가며 말을 붙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난밤 택시에서 내려 숙소를 찾아갈 때 청년들이 난간에 기대서 우리를 바라보던 그 자리에 똑같이 서서 그들이 하는 꼴을 구경하니 그 기분도 괜찮았다. 저녁이 돼서 잠깐 숙소에 들린 후 우리는 마린 드라이브라는 해변으로 노을을 구경하러 갔다. 택시 기사와 흥정을 해서 30루피에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막상 우리를 내려준 곳은 그 비취가 아니라 방파제로 둘러쳐진 바닷가였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여기서 30분은 더 걸어가야 우리가 가려고 하는 목적지란다,,,,,웃기는 택시기사 놈! 우리가 흥정해서 택시비를 깎았다고 그만큼만 데려다주고 가버린 거였다. 이런 걸 복골복이라고 하던가!

우리는 방파제에 걸터앉아 노을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즐겁게 눈인사를 맞추며 길을 걸었다. 마린 드라이브는 바닷가를 끼고 있는 굉장히 긴 해안도로였는데 길가에 늘어선 집들이 제법 정교하고 우아하게 지어진 것으로 봐서 중산층들이 사는 동네로 느껴졌다.

마린 드라이브를 따라 우리의 목적지 쵸파티 비취로 가는 동안에 해는 서서히 해안선을 넘어 붉은 노을을 만들었다. 겨우겨우 도착한 코딱지만한 비취의 모래사장에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주변의 관광객들과 인도 사람들이 다 함께 어울려 웃고 떠들면서 지는 해를 구경했다.

여행을 오기 전 영어학원을 몇 달 다니고 온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아주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잉글리시로 대화를 나눴다.

해가 진 후 맥주 집을 찾는 우리에게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준 세 명의 17살 인도 소년들은 어젯밤 길가에서 만났던 애들과는 너무나 달랐다. 꿈이 뭐냐고 묻자, 셋 다 2년 뒤 학교를 졸업하면 레스토랑에서 돈을 벌고 싶다는 말을 해서 열악한 교육 환경에서 그만큼의 꿈을 가지고 살아야 했던 그 옛날 고향의 선후배들과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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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드라이브 해안, 종이에 펜, 2020 / 그림=추니박

어쨌든 우리는 마린 드라이브 어느 사거리 모퉁이에 위치한 맥주 바에 들어가 살사와 라틴음악을 들으며 여러 종류의 스몰 피자와 라이스(볶음밥) 음식에 맥주를 마셨다. 낮에 그냥 관광을 하며 지낼 때와는 사뭇 다른 진지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매우 친절한 웨이터들은 음식만 먹으면 잽싸게 접시를 치우고 테이블을 닦아주는 부지런한 친절을 보여주었다.

맥주는 큰 병 하나가 75루피였는데 다른 물가에 비하면 대단히 비싼 편이었다. 1시간 동안 배를 타고 다녀오는 엘리펀트 섬 왕복 뱃삯과 같은 가격이니 짐작이 갈 만하다.

돌아오는 길에 택시 기사와 35루피에 흥정을 하고 왔는데 목적지에 도착하니 더 많은 돈을 요구해서 책에서 배운 대로 35루피만 두고 내렸다. 택시기사는 돈을 더 달라고 뒤에서 ‘기브 미 모아 머니~’를 허공에 외쳐댔지만 모른체 하고 와버렸다.

역시 인간은 교육에 의해 무엇이든 적응이 되나 보다. 오늘 하루 인도에 적응하기를 하며 가이드북의 친절함과 디아의 교육에 감사를 보냈다.

2001. 18 밤 인디아 게스트 하우스 호텔에서

새벽에 새 식구들이 도착했다. 전체 27명의 그룹 멤버 중 선발로 17명이 오고 나머지 10명이 하루 늦게 도착했다. 복도에서 보니 어젯밤 우리가 쫄아 있던 것처럼 다들 얼굴이 사색이 돼있었다. 어제 우리가 공항에서 왔던 그 길을 그대로 왔을 테니 안 봐도 비디오 아닌가!

늘 그렇듯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미지의 세계에서 위대한 자연을 만나기 전 설레임과 비슷하다. 어쩌면 인생에서 지혜로운 한 사람의 위인을 만나는 것이 많은 곳을 여행하는 것보다 더 큰 소득이 될지도 모른다. 결국 인생의 종착역에 다가가면 많은 시간 함께 했던 사람들의 모습이나 삶은 지탱해 오는데 훌륭한 약이 돼줬던 지인들과의 추억을 먹으며 지내게 될 테니까 지금 내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만큼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고 항상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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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뭄바이 뒷골목, 종이에 붓펜, 2001 / 그림=추니박

다시 도착한 열 명의 사람들은 60대 여승 한 분과 연령대가 고르게 분포된 남녀로 구성돼있었다. 다들 인상이 좋고 밝아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후발대가 방을 잡고 짐을 풀은 후 밤 열두 시가 돼서 숙소 근처 빈민가로 산책을 갔다.

인도 남부에 사는 농부들이 여름 추수가 끝나면 이곳 타지마할 호텔 근처 빈민가로 와서 난민 생활을 하고 봄이 되면 농사를 지러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단다. 왜 고생을 해가며 자식과 아내, 노인들을 모시고 길거리에서 살아야 하는지 의아해했더니,,,,사실은 여름 농사로 번 돈으로 겨울을 날 수가 없어서 차라리 도시로 와 빈민 생활을 하며 동냥을 해서 사는 게 낫기 때문에 매년 겨울이면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고 했다. 한겨울 시골에서 쫄쫄 굶고 사느니 고생스러워도 도시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서라도 활기차게 살고 싶어 하는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한 밤중 타지마할 뒤편의 빈민가로 길을 나서자 자로 잰 듯 거리에 줄을 맞춰 잠을 자는 사람들의 수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 수가 대략 10만 명은 된다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광경이었다. 오죽하면 여행사들이 그 풍경을 보여주는 것을 관광 상품으로 만들었을까!

그 긴 거리 골목골목마다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만큼의 공간을 남긴 채 양쪽으로 줄을 맞춰 누워 있는 그 묘한 풍경 사이로 걸어가자 컴컴한 어둠 속에서 우리가 외국인 인줄 알아보는 사람들이 두 손을 모아 ‘나마스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하며 아주 반갑게 맞아주기도 하고 농담을 건네 가며 웃기도 했다. 낯선 풍경에 잔뜩 얼어있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밝고 친절했다. 그러니 그마저도 내겐 충격이였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는 것일까!!!

아침이 되자 어젯밤의 그 충격적인 산책은 꿈속에서 벌어진 일처럼 느껴졌다.

이제 아침을 먹고 뭄바이를 떠나기 위해 빅토리아 역으로 간다.

2001.1.19. 뭄바이를 떠나며


[추니박의 인도 여행기] 글·그림 추니박(아티스트 박병춘)


[Travel India] 리얼다큐 인도배낭여행 Travel to India by ricksah / 영상=추니아트 유튜브

추니박(박병춘)은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을 비롯해 32회의 개인전과 200여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00년부터 산수풍경시리즈를 시작하고 그동안 독특한 작품을 발표해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그는 2010년 중앙일보 주최 평론가가 뽑은 3040작가 1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많은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추니아트’로 미술 애호과들과 소통 중이다.

chang@asiaart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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