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7 12:32  |  오피니언

[추니박의 인도 여행기]얼떨결에 인도기차의 유명인사가 된 동양인 화가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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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역,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아시아아츠 = 글 그림 추니박]
빅토리아 역은 정말 대단한 건물이다. 서울역의 10배는 될 만한 커다란 건물이다. 지붕의 철탑과 구조물 전체가 웅장하고 벽마다 인간의 섬세한 손길이 닿아 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역 안은 표를 예약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창구마다 아우성이고 기차를 기다리며 삼삼오오 모여 있는 수많은 인파와 쉬지 않고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로 헤엄치듯 지나가는 외국 관광객들이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특히 20명씩 되는 가족들이 산더미같이 짐을 쌓아두고 그 옆에 앉거나 누워서 기차를 기다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희한한 광경이다.

어떤 가족들은 아예 도시락으로 싸온 짜파티에 카레를 발라 식사를 하기도 하고 어떤 가족들은 잔치 집 분위기를 내며 대화 삼매경에 빠져있기도 하다. 이렇게 가족단위로 대규모 이동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 엄청 중요한 행사가 있거나 지난밤 봤던 그 길거리의 시골사람들처럼 이들도 계절에 따른 주거지를 이동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철새만 이동을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2001. 1. 20 빅토리아 역에서

우리는 빅토리아 역 짐 맡기는 곳에 5루피를 주고 배낭을 맡긴 후 ‘우타팜’이라는 음식으로 식사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디아의 인솔을 받아 영화 구경을 가고 몇 명은 나름대로의 일정을 만들어 흩어졌다. 나는 뭄바이 시내를 걸어 다니며 대체 인도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혼자 남은 나는 거리를 구경하며 봄베이 시내를 돌아다녔다. 빅토리아 역 근처의 거리는 잡상인들로 가득 차 있고 골목마다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어슬렁어슬렁 걸어 시내를 구경하는 일은 나에게 있어 처음으로 외국에 그것도 인도의 뭄바이라는 낯선 도시에 홀로 남는 일이라서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제법 긴장감이 도는 모험이었다. 나는 큰 대로변으로 나와 웅장해 보이는 빅토리아 역을 기념 삼아 스케치를 하고 직선으로 나있는 큰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울타리에 달라붙어 뭔가를 구경하는 틈을 비집고 들여다보니 크리켓 경기가 한창이었다. 구경꾼들 말로는 크리켓 게임이 인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이라고 했다. 아마 60년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은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인도인들의 생활 체육으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인산인해를 이룬 경기장 입구는 경찰들이 지키고 경기장 안에는 표를 사서 입장한 부티 나는 관중들이 꽉 들어차 응원의 열기가 대단했다.

경기장 안의 부자들과 울타리에 매달려 구경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참으로 인도다운 풍경을 그곳에서 느낀 것 같다. 그 옛날 영화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을 주제로 한 영화에서 봤던 장면들이 떠올라 우리의 과거나 이들의 처지나 별 반 다를 게 없다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마침 게임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옆 사람에게 물었는데 자신이 교통경찰이라고 했다. 사복을 입고 오토바이 옆에 서있었는데 힌디어와 섞인 엉망진창 영어를 자랑스럽게 그것도 큰 소리로 소리치듯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어디를 가면 멋진 공원이 있느냐고 묻자, ‘행긴가든’이란 곳이 있는데 마침 자기가 그곳으로 가는 중이니 오토바이로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내가 돈을 원하냐고 묻자! ‘노 아임 폴리스! ’라고 자신 있게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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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달리는 오토릭샤 20X30 종이에 먹 / 그림=추니박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기로 다짐을 받고 내가 흔쾌히 오토바이에 올라타자 신나게 거리를 달리며 이것저것 설명하느라 신이 났다. 불과 이틀 전에 지저분하고 낯설고 조금은 무섭기도 한 인도를 왜왔는지 후회하던 마음은 간데없고 낯선 인도의 경찰등에 달라붙어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를 구경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거리는 차와 사람들로 넘쳐났는데 특히 세발 오토바이처럼 생긴 오토릭샤라는 것이 거리든 골목이든 공간만 있으면 도시의 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릭샤가 내뿜는 매연 때문에 도시는 온통 매캐한 냄새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후에 세계 환경기구에서 지구의 환경을 위해 인도의 대도시에 있는 릭샤를 없애라고 해서 택시로 교체되었음) 그러나 그 릭샤가 가득한 뭄바이의 풍경이야 말로 장관 중에 장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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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걸하는 수도승 30X20 종이에 먹, 2001 / 그림=추니박

아마 내 생각에 인도를 여행하며 교통경찰의 오토바이를 타고 뭄바이 시내 구경을 한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은 나밖에 없으리라,,,,재미있는 경찰 덕분에 시내 곳곳을 둘러보고 한 시간 만에 행잉가든이란 공원에 도착했는데 공원은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새것 티가 많이 났고 나무 그늘이 많지 않아 운치도 없고 다듬어진 정원수 사이로 펭귄 모양의 인형을 군데군데 세워 놓은 것이 전부였다. 친절한 교통경찰은 기념으로 사진을 한 장 찍은 후 돌아가고 나는 공원을 산책하고 주변의 사람들과 어울려 인도 사람들과 익숙해지는 연습을 실컷 했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타고 역 근처에 내려 길거리 노점상에서 50루피 슬리퍼를 하나 샀다.

125루피 달라는 신발을 50루피에 샀는데 나중에 기차에서 현지인들에게 물으니 잘 산거라고 했다. 처음으로 물건 흥정을 성공적으로 해서 아주 기분이 좋았다. 빅토리아 역 앞 시장 안에 있는 분식점에서 인도 튀김요리를 먹었는데 일부러 사람 많은 곳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를 같이 했는데 다들 친절하게 대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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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 30X20 종이에 먹, 2001 / 그림=추니박

사람 사는 것은 어디나 똑같다. 이들에게도 삶이 있고 또 그들만의 규칙과 방식 속에 있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문제가 있다면 외국인들이 이들에게 가하는 눈에 보이지 않은 우월주의가 문제이다,,,,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만큼 이들에게 물건을 사주고 나름의 혜택을 주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들이 삶을 지탱해갈 것이란 생각으로 나 스스로를 위로했다.


기차는 9시 20분이 돼서야 출발했다. 우린 자석을 구하지 못해 웨이팅 티켓를 가지고 침대칸(SL)에 탔다. 디아의 교육을 받아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자는지를 배운 후 네 개조로 나뉘어 기차를 탔다. 잠을 자는 것은 너무도 힘들고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옆 사람의 눈치를 봐야하고 구걸을 해야 겨우 침대와 침대 사이의 빈 바닥을 빌려 잠을 잘 수 있다. 다행히 앉아갈 수 있게 오랫동안 자리를 양보해준 가족들이 있어 서있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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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한 표정의 인도여인 30X20, 종이에 먹, 2001 / 그림=추니박

침대칸은 3단으로 마주 보고 6개의 침대가 있었다. 제일 위 칸의 침대를 구하면 일찍 잠을 잘 수도 있지만 첫 번째 칸의 침대는 침대 주인 이외에 입석표를 산 사람들이 주루룩 같이 앉아서 가기 때문에 밤늦도록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밤이 늦으면 그 침대 사이의 바닥에 많은 사람들이 끼여서 잠을 잔다. 어쨌든 나도 표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눈치를 보고 침대를 빌려 앉아 가야 하는 처지였다. 그렇게 앉아서 밤새 달려야 목적지에 닿을 수 있으니 기차를 타는 일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시커멓게 생긴 인도 사람들이 조금은 어색하고 약간 무섭기도 했지만 그런 표시를 내지 않기 위해 더 친숙하게 많은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우연히 앞사람의 얼굴을 그리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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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천민의 초상 30X20 종이에 먹, 2001 / 그림=추니박

내 그림 솜씨를 본 옆 사람이 자신을 그려달라고 해서 한 장 더 그려주게 되었는데,,,,그 옆 사람, 그 옆 사람을 그려주고 옆 침대칸에서 온 사람, 복도에 서있던 사람의 초상화들을 그려주게 되었다. 급기야 기차의 다른 칸까지 소문이 나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를 그려달라고 모시고 오는 일이 생겼다. 그 아주머니가 그림을 받고 너무 감격해 하자 빙 둘러 그림 그리는 걸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기도 했다. 그림의 대가로 짜파티와 음료수 그리고 술까지 가져다주는 사람까지 있었다. 나는 졸지에 기차의 유명인사가 되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쓰던 침대를 쓰라며 주기도 했다. 그 그림 그리기 이벤트는 결국 스케치북을 다 써서 없어질 때야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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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번을 쓴 남자 30X20 종이에 먹, 2001 / 그림=추니박

그 바람에 원래 자리의 주인인 인도 가족들이 침대 밑바닥에서 겨우 잠을 자게 돼서 미안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이 사람들은 정도 많고 흥도 있고 또 착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자리를 양보한 사람, 내가 그림을 많이 그려서 힘들겠다고 걱정해주던 사람, 나쁜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충고해주던 사람, 배고프지 않으냐고 먹을 것을 가져다주던 사람들,,, 나는 처음으로 탄 기차에서 어쩌면 인도에서 경험할 모든 것을 이미 다 경험했는지도 모르겠다.

점점 더 인도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2002. 1. 21 아우랑가바드로 가는 기차에서


[추니박의 인도 여행기] 글·그림 추니박(아티스트 박병춘)


추니박그림배우기] 초보자를 위한 동양화입문 #1 / 영상=추니아트 유튜브

추니박(박병춘)은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을 비롯해 32회의 개인전과 200여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00년부터 산수풍경시리즈를 시작하고 그동안 독특한 작품을 발표해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그는 2010년 중앙일보 주최 평론가가 뽑은 3040작가 1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많은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추니아트’로 미술 애호과들과 소통 중이다.



chang@asiaart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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