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5 12:28  |  오피니언

[추니박의 인도 여행기]바그다드 카페와 닮은 ‘까나야 쿤츠 호텔’ 그리고 아잔타 석굴④

[아시아아츠 = 글 그림 추니박]
지난밤 기차를 타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빠르다푸르(아잔타)’라는 마을 근처에 있는 ‘까나이야 꾼츠 호텔’이다. 호텔이라는 간판을 사용할 뿐이지 집은 1층으로 된 나지막한 허름한 건물이다. 넓은 들판이 펼쳐진 사막 비슷한 들판 한가운데 뜬금없이 자리를 잡은 건물이 마치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배경이 된 호텔과 비슷해서 내가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그 영화에 등장하는 화가처럼 나도 이곳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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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나이아 꾼츠 호텔,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큰 간판이 붙어있는 건물 입구 프론트를 거쳐 안으로 들어오면 건물이 미음자로 둘러쳐진 가운데 작은 정원이 만들어져 있다.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건물을 그런 식으로 지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방에서 문을 열고 물끄러미 마당의 꽃들을 쳐다보다 문득 대학을 들어오기 전 혼자 여행을 할 때 밀양의 어느 여인숙에서 똑같은 경험을 했던 것이 데자뷰처럼 떠올랐다. 평화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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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 석굴사원, 종이에 먹, 2001 / 그림=추니박

우리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짐을 풀고 택시를 불러 아잔타 석굴을 다녀왔다. 세계사를 공부할 때 아잔타 석굴 동굴 벽화에 대해 대부분 들어봤던 그곳을 직접 본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석굴로 가기 위해 차를 내려야 하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자 여기저기서 나타난 어린아이들이 가방과 옷을 붙들고 돈을 달라며 매달리는 바람에 멘탈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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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걸하는 여인, 종이에 먹, 2001 / 그림=추니박

한두 명에게 돈을 줬다간 모든 애들이 다 달라붙으니 절대 돈을 줘선 안 된다고 디아가 여러 번 교육을 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만 힘이 들었다. 어떤 경우엔 보기 안쓰러웠는지 현지인들이 아이들을 떼어주기도 했다. 그보다 조금 점잖기는 하지만 싸구려 사리(인도한복)를 입고 손으로 밥을 먹는 시늉을 해가며 구걸을 하는 여인네들의 모습을 보니 세상에 힘든 사람들을 보는 일이 참으로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알고 보면 나도 힘들긴 마찬가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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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들고 있는 석가, 종이에 먹과 펜, 2001 / 그림=추니박

아잔타는 기원전 2세기부터 서쪽과 내륙을 이어주던 중요한 요충지였다고 한다. 이 지역 자체가 번성했던 도시였는데 후에 엘로라가 더 번성해지면서 점차 시들해져 갔다고 한다. 바위 절벽에 만든 석굴사원은 부처님의 일생을 화려한 색채의 회화와 정교한 조각으로 기록해 둔 곳인데 총 30개의 석굴 중에 25개는 스님들의 거주지였고 5개는 기도하는 곳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석굴은 한 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바위에 굴을 판 다음 조각이나 그림을 그려서 완성해가는 방식으로 아주 오랜 시간 만들어진 곳이라 한다. 5세기 이후 대승불교가 유행하면서 정교한 조각들이 부조로 만들어지고 또 가장 큰 석굴이 조성되고 있었는데 끝까지 완성되지 못하고 7세기 이후 거의 1100년 이란 세월을 숲으로 뒤덮여 있다가 1800년대 영국군 장교에 의해 뒤늦게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석굴의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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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마리의 코브라와 부처, 종이에 먹, 2001 / 그림=추니박

그러나 세월의 유수함 앞에 여러 곳의 회벽이 떨어져 나가고 그림도 많이 상해 있어서 어떤 부분은 아예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었다. 벽화는 그림의 선이 강하고 붉은색의 채색이 특히 인상적이었고 석굴 자체의 돌에 부조로 만든 불상들이 자주 정교하고 화려했다. 그중 밥이 가득 든 밥그릇을 내밀고 있는 부처가 있었는데 그런 자세를 취한 그림을 본 적이 없어서 깜깜한 어둠 속에서 스케치를 한 장 했다.

석굴의 보존을 위해서 일체의 빛을 안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석굴 내부는 대부분 어두웠다. 그렇게 노력을 한다 해도 아마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난다면 석굴을 폐쇄시켜야 벽화를 보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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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 뒷편의 폭포, 종이에 먹과 펜, 2001 / 그림=추니박

우리는 보존이 잘 돼있는 석굴을 골라 관람을 하고 디아를 따라 석굴이 있는 절벽 위의 들판을 가로질러 ‘네나프르’라는 현지 마을을 들렀다. 우리나라 6,70년대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 같은 시골마을이었는데 우리와 같은 많은 배낭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매우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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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깃는 여인들, 종이에 먹, 2001 / 그림=추니박

어쨌든 뭄바이 시내와 기차에서 사람들에게 시달린 걸 생각하면 그 한적한 시골에 주황색 사리를 입은 인도 여인들이 물동이를 이고 한 줄로 걸어가는 풍경을 보니 마음이 평화로웠다.

아잔타 석굴을 다녀와서 나는 동료들에게 닭백숙을 해 먹자고 제안을 했다. 숙소 주인에게 물으니 숙소에서 한 30분 걸어가면 시골마을에 가게들이 있다고 했다. 그곳에 가면 닭을 살 수 있고 또 자신의 마당에서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들어도 된다는 것이다. 와우 세상에,,,,이렇게 반가운 소릴 듣다니! 나는 당장 일행들을 모아 돈을 조금씩 걷어서 저녁을 백숙으로 만들어 먹자고 제안했다. 물론 다들 찬성! 다 같이 며칠 정신없이 에너지를 뺏겼으니 힘을 보충하자는데 동참했다.

나는 디아와 남자 동료 몇을 데리고 벌판 한가운데 끝도 없이 뻗어있는 길을 걸어 마을로 갔다. 해가 지고 막 어두워지는 시간 디아와 함께 닭을 사고 감자도 샀는데 세상에 사람들이 시골이라서 마늘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못 알아들었다. 그때 불쑥 생각난 아이디어! 나는 스케치북에 마늘을 그려서 주인에게 보여줬는데 그랬더니 양파를 들고 나왔다. 모양이 비슷하니 그럴 수밖에,,,,나는 마늘을 쪽으로 깐 모양을 다시 그려줬다. 그랬더니 주인이 안에 들어가 마늘을 가지고 나왔다. 마치 우리나라 옛날이야기 ‘금도끼 은도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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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려서 마늘 사기, 종이에 먹, 2001 / 그림=추니박

주인이 들고 나온 마늘을 보며 우리가 뛸 듯이 기뻐하자 외국인이라고 구경 와서 서있던 사람들까지 다 같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이 사람들은 정말 흥이 넘치는 건지 무슨 일이 있으면 박수를 치며 좋아해 주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늘이 빠진 닭백숙은 앙꼬 없는 찐빵과 다를 게 없으니 걱정하던 우리 일행이 호들갑을 떨며 기쁨을 표현하자 주인도 구경꾼들도 다 같이 그림을 가리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앞으로 말이 안 통하면 그림으로 소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는 닭 열 마리와 마늘, 쌀과 맥주 몇 병을 사서 깜깜해진 시골길을 랜턴도 없이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어두운 인도의 시골길을 걷는 첫 경험은 앞으로 내가 세상의 많은 곳을 찾아 여행하는 과정이 이런 길을 걷는 느낌이겠구나 하는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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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숙 먹는 일행을 바라보는 스님, 종이에 먹, 2001 / 그림=추니박

나는 평소 실력을 발휘해 솥을 걸고 주변에 널린 마른 가지들을 모아 불을 펴서 쌀을 넣은 걸쭉한 백숙을 만들었다. 닭 열 마리를 한꺼번에 끓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지만 늦은 저녁까지 투덜대지 않고 기다려준 일행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 즐거웠다.

우리는 솥을 걸어둔 주변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백숙을 맛있게 먹었다. 물론 이야기의 화제는 장을 볼 때 마늘을 그려서 보여줬던 일이 단연 최고의 화두였다. 처음으로 백숙을 맛본 호텔 주인과 어린 아들도 그 맛이 좋았는지 숙소로 들어오는 나를 보더니 두 손을 모아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인도에 온 지 이제 사흘이 지났다.

마치 꿈을 꾼 듯 정신없이 지나간 시간, 그 3일이 한 달은 된 것 같다.

뭄바이 게스트 하우스의 삭막한 잠자리와 기차에서의 고된 경험을 생각하니 이곳의 시간이 천국같이 느껴진다. 그냥 이 집에 한 달간 머물다 가도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우리는 젊고 가난한 배낭족 아닌가! 넓은 세상, 험한 세상 인도를 경험하러 떠나왔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이제부터의 여정을 더 열심히 즐겨봐야겠다.

이 벌판 한가운데 평화롭게 자리한 이 작은 숙소에서 느끼는 이 한가로움을 와이프와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이 뜬금없는 곳을 나중에 와이프를 데리고 찾아올 수 있을까!

2001. 1. 22 까나야 꾼츠에서

[추니박의 인도 여행기] 글·그림 추니박(아티스트 박병춘)

[한국화가추니박] 동양화와 한국화의 구분 / 영상=추니아트 유튜브

추니박(박병춘)은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을 비롯해 32회의 개인전과 200여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00년부터 산수풍경시리즈를 시작하고 그동안 독특한 작품을 발표해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그는 2010년 중앙일보 주최 평론가가 뽑은 3040작가 1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많은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추니아트’로 미술 애호과들과 소통 중이다.

chang@asiaart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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