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6 11:38  |  오피니언

[추니박의 인도 여행기]온통 성으로 둘러싸인 잔시(Jhasi)의 오래된 도시 오르차(Orchha)에 가다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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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서 본 오르차 전경,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아시아아츠 = 글 그림 추니박]
산치에서 하루의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카주라호로 가기 위해 보팔에서 다시 기차를 탔다. 일정이 워낙 빡빡하게 짜여 있어서 매일매일 강행군을 해야 하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 그야말로 26명이 일사불란하게 배낭을 짊어지고 움직이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군대에서 새벽에 일어나 군장을 싸듯 새벽 세시 혹은 다섯 시에 일어나 침낭을 개고 짐을 챙겨서 기차를 타야만 한다.

인도는 도시와 도시가 워낙 멀다 보니 보통 기차는 10시간 이상을 타야 한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기차에서 잠을 자기 위해 야간열차를 이용해 새벽에 목적지에 닿을 때도 있다. 어쨌든 2,3일에 한번씩 기차를 타는 일이 버거워서 나는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보팔에서 기차를 탄 일행을 잔시(Jhasi) 역에서 카주라호로 가는 기차로 갈아타야만 했다.

나는 잔시에 도착하기 전 오르차(Orchha)라는 곳이 아주 조용한 명상 도시라는 이야기를 듣고 혼자 그곳으로 갈까 말까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잔시 역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는데 우리가 탄 기차가 플랫폼에 정차하기도 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차로 밀려 올라와서 막상 기차가 멈춰 섰을 때 우리 일행들은 사람 사이에 끼어 꼼짝 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사람들이 입구를 가득 막고 있으니 정말 암담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잘못하면 꼼짝없이 우리 일행들이 기차에서 못 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다급하게 콩글리쉬로 소리를 질러가며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길을 텄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입구의 사람들을 기차에서 내리게 하고 극적으로 기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카주라호 행 기차가 맞은편에 대기하고 있어서 우리는 전속력으로 건너편 플랫폼으로 달려가야만 하는 상황,,,, 나는 그 짧은 순간에 일정을 선택해야만 했는데 기차에서 소리를 지르며 길을 뚫고 내린 것에 고무됐는지 용기를 내서 혼자 남아 오르차로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나와 좀 친하게 지내던 일행 넷이 같이 가겠다고 나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그룹은 기차를 타고 카주라호로 떠나고 남은 다섯 사람은 잔시 역에서 릭샤를 빌려 이곳 오르차로 왔다.

오르차는 시내의 중심도로가 100미터가 채 안 되는 작은 동네다. 마을 중앙에 사거리가 있고 그곳을 중심으로 숙소와 상점들이 몰려있고 버스 정류장도 그곳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복잡한 곳이다. 그러나 사거리를 50미터만 벗어나면 이내 한산해진다. 사거리에서 불과 100미터도 안 떨어진 곳에 아주 커다란 중심 성이 있고 그 성을 기준으로 많은 성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나는 그 사거리가 내려다보이는 모퉁이의 2층 게스트하우스에 방을 잡았다. 이곳에 앉아 거리를 구경하는 일이 아주 재밌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2001.1.25. 오르차 숙소에서

오르차는 커다란 성과 작은 성들이 어우러진 아주 근사한 풍경을 가진 조용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무굴시대 살림왕자가 반란을 일으키고 오르차로 도망 왔을 때 이곳의 왕이 왕자가 편히 지내라고 지어서 바쳤다는 제황기르 마할에 올라가 주변을 살펴보면 성 옆으로 폭이 꽤 넓은 강물이 흐르고 건너편으로 끝도 없는 숲이 펼쳐져 있다.

왕자가 피신한지 3년 뒤에 무굴제국의 황제가 죽어서 살림왕자가 황제로 등극하는 덕에 오르차도 잠시 제후국으로 번성했다고 하니 이곳의 성들은 그 시대의 번영을 증거하는 것 들이리라. 성은 규모가 대단해서 성 안쪽 마당에 커다란 노천탕이 있고 정 사각형의 건물이 그 노천탕을 중심으로 우람하게 건축되었다. 그 옆에 쉬시마할 이라는 성이 붙어 있는데 인도에서 가장 저렴한 궁전 호텔로 이름이 난 곳이라고 했다. 돈은 없지만 혹시 나중에 가족들과 같이 올 때를 대비해서 가격을 살짝 물어보니 하룻밤 100달러라고 했다. 지금 내가 하루 평균 3000원짜리 게스트 하우스에서 잠을 자고 있으니 인도의 물가를 생각하면 엄청난 비용이다.

나는 마치 하룻밤 묵을 것처럼 자연스럽게 실내를 구경할 수 있느냐고 직원에게 물었다. 친절한 직원은 당연히 보셔야죠! 하며 나를 궁전 숙소로 안내했다. 넓고 커다란 실내는 화려하고 정교한 무늬와 그림으로 치장된 오래된 가구들이 멋지게 배치돼있었고 왕의 침실같이 엄청난 크기의 침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직원은 아주 밝은 미소를 지으며 아주 근사한 것이 있다고 나를 창가 쪽으로 인도했는데 글쎄 밖으로 툭 틔어나간 창부분이 공중에 떠있는 듯했는데 거기에 변기가 있었다. 나는 그 변기와 그 옆에 놓인 욕조를 보고 꼭 다시 아내를 데리고 이곳에 와서 묵어가리라 마음을 먹었다. 생각만 해도 근사한 일이다 마치 하늘에서 똥을 싸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멋진 화장실이 생각지도 못한 오래된 성에 설치돼 있다니 그저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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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숲,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어쨌든 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많은 숲이 있고 강 건너편의 숲은 끝이 없어 보였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곳은 아직 미개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아주 위험한 곳이니 절대 숲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다. 특히 강 건너편 숲은 더 위험해서 얼마 전에 관광객이 놀러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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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차의 장날,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성안의 마을은 아주 작지만 많은 관광객이 오고 가다 보니 기념품 가게 식료품 가게 게스트하우스들이 오밀조밀하게 줄을 지어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 중심에 사원 같은 건물이 있는데 그 앞마당은 온종일 벼룩시장 같은 장이 열려서 지나가며 눈요기하기에 그만이었다. 물론 다 짜가들이 많겠지만,,, 그리고 사거리에서 큰 성과 반대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들과 숲과 작은 마을이 어우러져 멋진 그림책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풍경화를 잘 그리는 화가라면 이곳에서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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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차의 노을, 종이에 펜과 수채, 2001 / 그림=추니박

오르차의 풍경은 내가 오래전에 와봤던 풍경처럼 익숙하고 친숙하다.

해 질 녘 일행들과 언덕 위에 앉아 성 너머로 지는 노을을 보며 내가 전생에 무굴제국의 제후국 시절 이곳의 화가라도 했던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낯설지가 않다고 했더니 다들 그럴지도 모른다며 키득거렸다.

나는 바쁜 일정을 멈추고 이곳에 머물며 그동안 미뤄뒀던 나 자신의 자아 찾기도 하고 낡고 멋진 성들을 찾아 번성했던 인도 무굴인들의 건축을 감상해 보기로 했다. 인도에 오면 처음에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더니 이곳의 성은 화가인 내게 그리고 싶은 충동을 자극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명상에 빠지기엔 단순하고 섬세한 작업을 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며칠 성을 그리다 보면 내게도 어떤 깨달음이 있지 않을까!

엘로라 힌두사원에서 받은 자극이 사라지기 전에 하나하나 벽돌을 쌓는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건물 스케치를 해보리라,,,ㅎㅎㅎ

내일은 들판으로 나가 멋진 성을 찾아봐야겠다.

2001.1.26. 오르차에서의 첫날을 보내며

[추니박의 인도 여행기] 글·그림 추니박(아티스트 박병춘)


현대적인 동양화를 그리기 위한 구도의 중요성#1 / 영상=추니아트

추니박(박병춘)은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을 비롯해 32회의 개인전과 200여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00년부터 산수풍경시리즈를 시작하고 그동안 독특한 작품을 발표해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그는 2010년 중앙일보 주최 평론가가 뽑은 3040작가 1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많은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추니아트’로 미술 애호과들과 소통 중이다.

chang@asiaart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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