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3 14:50  |  회고

[미술을 말하다] 한국의 포스트모더니즘②

[아시아아츠 = 김창만 기자]
1980년대는 군사정권의 특수한 정치적 현실 속에서 등장한 민중미술의 시대로 각인된다. 민중미술은 정치사회적 현실을 고발, 공격하는 동시에 미술내적으로는 모더니즘을 비판하는 소통의 예술, 참여예술, 저항예술로 기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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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 칼노래, 1985, 광목,목판에 채색 / 사진=서울옥션
모더니즘은 두 가지 면에서 민중미술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는데, 첫째는 그것이 삶과 유리된 자율적 예술이라는 점, 둘째 외래 사조의 모방적 수용이라는 점이다. 이에 민중미술은 한손에는 ‘삶의 예술’, 다른 한손에는 ‘한국적 미술’의 기치를 내걸고 반모더니즘과 민족주의적인 정치미술을 표방하였다.

민중미술은 비판적 내용과 정치적 주제를 담을 새로운 양식을 창안하지 못하고 기존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공식 양식으로 채택했다는 한계와 약점을 갖지만, 한국의 정치사회적 현실에서 출현한 초유의 자생적 미술로서 정체성 문제에 대안적 해답을 제시한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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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서기 포즈를 취한 초창기 ‘현실과 발언’ 회원들. 왼쪽부터 김정헌, 성완경, 노원희, 이태호, 김건희, 최민, 윤범모, 김용태, 임옥상, 강요배. / 1980년대 초, 서울대 미대 출신을 중심으로 한 젊은 작가들의 모임 ‘현실과 발언’(1979), 광주 미술인들의 모임 ‘광주자유미술인협회’(광자협)(1979) 등 소그룹을 중심으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들이 발표되면서 민중미술운동이 태동했다. / 사진=현실과 발언 30년 전시기획위원회
20세기초 개화기로부터 민중미술의 시대인 1980년대까지, 즉 모더니즘 시기의 한국 화단은 민족문화를 토대로 자국의 정체성을 정초하려는 민족모델에 입각하여 제1세계, 제국주의에 도전하는 대립적 모드를 지향하였다.

특히 일제치하 자신의 나라에서 식민화를 경험했던 민족적 트라우마가 식민 이전의 고유문화와 자국 언어를 고수하려는 대립적 역담론을 창출하고 해방후 수십년 동안 그것을 지속시킨 동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후기구조주의, 후기식민주의 자각과 함께 한국 화단은 식민지 이전 문화의 부흥운동이나 배타적 분리주의 보다는 '식민,피식민', '지배,피지배'간의 협상이라는 공모적 모드를 채택한다. 공모 모드는 식민이건 3세계 난민이건, 피지배자는 운명적으로 지배 주체를 상상적으로 반영한다는 혼합주의 이론의 비교모델, 또는 교배모델에 의거한다.

혼합주의 이론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 후기구조주의, 페미니즘, 정신분석학 등 인접 이론들을 수용하면서 제국주의와 타자간의 변증법적 문화 충돌을 설명한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신세대들이나 해외교포 작가들은 후기구조주의, 후기식민주의 사상과 시대적 공감대를 가지며 혼성의 미학과 환유의 정치학에 기초하여 현대적 개념의 새로운 정치예술을 대두시킨다.

미술을 프로메튜스적 생산 신화로 전환시키며 계급타파, 사회변혁, 이념구현을 위한 혁명적 도구로 사용했던 과거의 정치예술과는 달리, 이들은 정체성을 근간으로 인종, 타자, 젠더, 신체, 재현 등 해체의 대상이 되는 제반의 문제들을 주제화하고 그에 부합되는 양가성의 예술언어와 혼성의 미학을 도출함으로써 후기구조주의적, 후기식민주의적 정치미술을 탄생시킨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인 1990년대에는 정체성에 대한 패러다임과 문제의식이 대폭 변화한다. 1970, 80년대에 강조되었던 한국성, 민족주의 대신에 다원주의와 해체주의 감수성에 의거한 절충적이고 양면가치적인 혼성의 미학으로 단일한 정체성을 초월하는 것이다.

민족모델에서 비교모델로, 대립적 모드에서 공모적 모드로, 순수주의에서 혼합주의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한 것이 이 시대가 배출한 신세대 작가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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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 창립 멤버들의 기념촬영 왼쪽부터 박흥순, 송창, 송주섭, 이명복, 전준엽, 권용현, 이종구 / 임술년(壬戌年)은 1982년에 창립된 단체로 80년대의 반모더니즘적 민중미술까지 모두 이념화된 권력으로 간주하면서 절대 자유의지와 언더그라운드 정신으로 기존 화단에 도전하였다. / 사진=대안공간 눈
신세대 작가들은 경제가 급성장하고 대중소비문화가 정착된 1990년대 초부터 시대적 감수성을 드러내며 소위 한국 포스트모던아트의 실질적 주체로서 그 흐름을 주도하였다. 이들은 탈이데올로기를 표방, 70년대의 모더니즘 추상미술은 물론 80년대의 반모더니즘적 민중미술까지 모두 이념화된 권력으로 간주하면서 절대 자유의지와 언더그라운드 정신으로 기존 화단에 도전하였다.

1980년대 민중 진영의 언더그라운드 대표적 그룹 중 하나인 ‘임술년’은 1982년 이명복, 이종구, 송창, 전준엽, 황재형 등의 작가들로 출범되었다. 그들은“이 시대의 노출된 현실이나 감춰진 사실이 우리들 스스로가 간직해야 할 아픔이라는 각성을 통해 역사의식이 성찰과 공존하는 토양의 형성”이라는‘역사적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그룹 회원들의 뚜렷한 개성적 표현과 함께 완성도가 높은 리얼리즘 양식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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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 '다시 오지리에서' 2003년 종이에 아크릴릭, 포스터 215 x 391 cm / 임술년 창립 멤버 이종구작가는 ‘임술년’의 작가 중 독보적 존재이다. / 사진=ⓒ2006 이종구
그 중 이종구는‘임술년’의 작가 중 독보적 존재이다. 그의 작업은 1970년대 중·후반 화단의 유행사조였던 극사실주의 양식을 통해 우리 시대 농촌의 현실과 땅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주었다. 농부의 자식인 그는 농민들의 삶의 모습과 역사를 밝히는 일이 우리 시대 미술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미술이가지는 사회적 가치와 역사적 소산이란 인식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역사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미술은 더 많은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속에서 말하고 운동하며 희망의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삶의 터전을 벗어나지 않는 그림, 삶의 모든것을 밝혀내는 그림을 그리고자 하였다.

‘임술년’은 관념적인 문화, 문명, 비판, 주체적인 미술에 대한 성찰의 미흡이라는 한계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리얼리즘을 통한 현실비판이란 시대적 과제를 공유하였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가진다.

특히 미술관 문화와 상업 화랑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언더그라운드 소그룹 운동의 시작은 90년말 등장하게 되는 대안공간 운동의 원형을 마련한다.

참고 : '최열, 한국현대미술의 역사', '김희영, 한국근현대미술사학', '김홍희, 동아시아 문화와 예술'

김창만 기자 chang@asiaart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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