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7 04:40  |  오피니언

[미술을 말하다] 한국의 포스트모더니즘③

[아시아아츠 = 김창만 기자]
90년말 신세대 작가들은 정치사회현실보다는 대중소비사회의 스펙터클과 일상성에 주목하고 새로운 매체 개발과 멀티미디어 실험으로 관객과의 소통 문제에 유념하였을 뿐 아니라, 타분야, 타문화와 교류함으로써 가변성, 다가치성이라는 포스트모던 미학을 실천하였다.

이러한 감성은 90년대 후반부에 등장하는 후속 신세대 작가군에 의해 계승되었다. 이 신예 신세대는 선배 작가들의 탈이데올로기와 다원주의를 수용하는 한편, 새로운 감각과 가치관으로 전세대로부터 스스로를 차별화시키며 독자적 진로를 개척하였다.
center
LEE BUL, Aubade V 50%, 2019 Installation view at the 58th Venice Biennale, 2019 Photo by Roberto Marossi / 2019 베니스 비엔날레 아르세날레에 전시된 이불 작가의 설치 작품 '오바드 V(Aubade V)'
이불, 최정화로 대변되는 전반기 신세대들이 대부분 국내파로 자생적인 언더그라운드 과정을 거친 후 국제 작가로 부상한 반면에, 다수가 유학파들인 후반기 신세대는 1990년대말 출현하는 대안공간을 무대로 처음부터 오버그라운드, 스타십, 국제화, 세계화를 표방하며 주류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후기 신세대는 순수주의 혈통을 준수하는 배타적인 우리 조상들의 단일민족 이상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분방한 개방의지와 카오스적인 탈경계 에너지로 타자, 외부세계와 융합하고자 한다. 이들은 중심의 다변화, 노마디즘, 글로벌리즘,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징후 속에서 한국성, 아시아성을 초월하는 세계적 비전을 제시하고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세계적 혼성 모델로 부각시킨다.

문화적 노마드로서 세계를 자유롭게 이동, 왕래하며 어느 곳을 가거나 그곳을 창작, 전시활동의 공간으로 장소화함으로써 크로스컬쳐의 친밀성을 성취하는 이들에 의해 지역과 지역, 문화와 문화, 영역과 영역, 학문과 학문의 의미심장한 만남이 가능해지고 글로벌적인 통합이 일어난다.
center
김수자, 보따리트럭 / Kimsooja – Bottari Truck – Migrateurs, 2007, 1 ton truck stacked with Bottaris, installation view at Musée D’Art Contemporain du Val-De-Marne (MAC/VAL), Paris, 2007 / 사진=Continua Gallery
옛 패러다임으로부터의 해방을 촉구하는 혼성의 다이나미즘, 문화적 노마디즘이 서구 문화에 익숙한 90년대 후반 신세대작가들의 집단 정서가 되고 있다. 90년대초부터 활동한 김수자의 작업이 노마디즘의 선구적 용례를 마련한다. 작가는 여성적 “도망”, 탈출을 유추시키는 보따리에 현대 노마디즘의 함의를 불어넣음으로써 전형적인 여성 억압의 주제를 문화적 이주, 환치, 이산의 이슈로 확장시킨다.
center
Kimsooja – Bottari Tricycle, 2009, used Chinese tricycle, bedcovers and clothes, 295 x 190 cm, Installation view Continua Gallery, Le Moulin 2009 / 사진= ⓒThierry Depagne
유튜브영상 / 김수자, '보따리트럭(2007)' / 영상=a.p.r.c.s 프로덕션

'망명의 보따리 트럭', '빨래하는 여인', '바늘 여인' 등, 1990년대 말 이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일련의 비디오 설치에 등장하는 작가 자신은 새로운 세기가 요구하는 새로운 정체성, 상호주관적 주체, 상생적 여성적 자아를 대변한다.

일본, 중국 등 인근 동남아 지역을 여행하며 우연히 만나게 되는, 노란색과 관련되는 미지의 인물을 추적하여 그와 대화를 나누고 그의 삶에 개입하는 과정을 비디오로 기록하고 있는 함경아의 '체이싱 옐로우' 연작이나, 펑크족, 야피족, 레즈비언 등 소수파 커뮤니티와 일체감을 나타내는 단체사진이나, 여행자, 할머니, 오피스걸, 스트립걸로 변신하는 자신의 타자적 초상을 통해 인종적, 문화적 정체성을 이슈화하는 니키리의 변신과 방랑의 다큐멘터리 사진은 다른 문화권을 이동하며 위치의 불안
정속에서 긍정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노출하거나 타자에 개입함으로써 세계 속 자신을 발견하는 대표적인 현대판 노마드 작업이다.
center
함경아, 악어강위로 튕기는 축구공이 그린 그림, 2016, 비디오 설치및 퍼포먼스, 축구 페인팅, 아크릴릭 페인트, 축구공, 축구화, 고무, 텍스트, 로얄지, 모니터, 사운드, 1200x600x300cm / 사진=mmca
정보시대, 대중소비사회의 작가들답게 일부 신예 작가들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순수 엘리트문화보다는 정보유통, 문화생산과 소비, 유흥문화에 주목하고 정체성의 모델을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대중적 혼성문화에서 찾는다. 또는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예술·오락, 동·서, 과거·현재와 같은 이질적 요소를 뒤섞고 흔들어 새로운 배합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center
최정화, 잡화엄식(雜華嚴飾) / 사진=문화역서울284
어떤 작가들은 토착적 내러티브, 로컬 신화, 전통미학을 서구기술, 서구미학과 혼합시킴으로써 문화적 글로컬리즘을 성취하고자 한다. 최정화는 제식용 돼지머리, 염라대왕 등, 무속적, 통속적 모티프를 독창적이면서도 보편적인 현대미술 언어로 변용함으로써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혼성의 미학을 일궈낸다.
center
황인기, 디지털 산수화 전시전경 / 사진=우민아트센터
한국 전통 도자기의 파편을 접착시켜 비정형적이고 우연적인 새로운 도자기를 만들어내는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 한국이나 중국의 미술사적 대가들의 역사적 산수화를 디지털 수법으로 리메이크하는 황인기의 '디지털 산수화' 역시 이러한 맥락의 작품들이다.
center
이수경(Yee Soo Kyung), 번역된 도자기, 재질/ 도자 파편, 에폭시, 24K금박 / Ceramic Trash, Epoxy, 24K Gold Leaf, 2006 / 사진=경기도미술관
전통 모티프의 차용은 이주의 타자적 경험과 함께 모국으로의 회귀 불가능성을 인식하는 이산작가들의 작업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애매모호하고 불안정한 이중 정체성을 조형적으로 재맥락화하는 이들의 작업에서 후기식민주의적 환유의 힘이 예증된다.

1990년대 이후 한국 화단에서는 코리안아메리칸이나 그밖의 해외교포 작가들에 대한 높아진 관심과 함께 탈식민주의 시각에서 이들의 작업을 다시 드려다보는 재해석의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이질문화에 노출된 해외교포작가들, 특히 다수종족과 이문화의 집결지로서 정체성의 사각지대를 이루는 미대륙의 코리안아메리칸 작가들은 동화와 이화라는 이중적 요구에 직면하여 서구적 합리주의, 모더니즘에 도전하고 서구적 가치를 대상화, 상대화하려는 탈식민주의 시각에서 대(對)아메리칸 정체성을 표방한다. 그것은 식민과 피식민 사이의 변증법, 양가적 겹침, 그것에 의거하는 혼성적 정체성에 다름 아니다.

이들은 탈경계적 코스모폴리타니즘이나 노마디즘보다는, 우선은 모국의 뿌리와 원형을 강조하는 전통의 차용으로 환유의 정치학을 대두시킨다. 은유보다는 환유적 독해를 선호하는 호미 바바의 주장이 뒷받침하듯이, 환유는 후기식민 증상을 노출하고 그것에 내재된 힘의 구조를 반영하는 수사학적 기제로서 이국문화와 민족문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포착하고 자전적인 요소나 개인적 내러티브를 사회, 문화, 역사적 맥락속에 위치시킨다.

환유는 말하자면 후기식민사회의 다양한 문화를 통해 양산되는 교배 양식을 추동시키는 양가성 또는 차이의 수사학으로 규정될 수 있는데, 바바는 그것이 모방(mimicry)의 전략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피력한다.여기서 모방은 재현적 모방이 아니라 흉내내기 또는 의태적인 모방으로서, 그것이 타자적 욕망으로 표출된다.

식민 모방은 흉내내기(mimicry)와 조롱(mockery) 사이에서 닮음과 위협의 양가성으로 구축되는데, 그러한 양가적 불확실성이 피식민자를 부분적 존재로 변형시킨다. 바바는 미메시스적 모방은 재현(re-present)하지만 의태적 모방은 반복(repeat)한다고 강조한다. 반복을 통한 모방은 나르시스틱한 동일화와 다르게 환유적 패러디의 힘으로 식민담론의 권위, 재현을 위협하며 지배담론의 표준과 정상의 기준을 붕괴시킨다.

의태적 모방은 관음적 주체이자 식민 감시의 대상으로서 환유의 축을 따라 정체성과 재현을 재구축한다. 모방은 결국 위장된 닮음을 환유적으로 제시하는 식민적 수사학이다.

환유의 정치학을 구사한 선구적 이산작가로 백남준을 들 수 있다. 백남준 초기의 명상적 작품군, 예컨대 선사상에 입각한 '머리를 위한 참선', '텔레비전을 위한 참선'을 비롯해, 굿과 퍼포먼스를 결합시킨 그의 해프닝, 또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불상, 무속적 쇠대가리, 곰방대, 갓 등 민속적 소품들은 유학기 서구 학습으로 충만했던 그가 아시아, 한국 문화유산에 대한 자각과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하며 주목했던 전통 모티프의 환유적 사용과 그 효과를 예증한다.
center
백남준, TV 부처, 가변크기, 부처 조각상, CRT TV, 폐쇄회로 카메라, 컬러, 무성, 1974/2002 / 사진=백남준아트센터
실로 동양사상과 서양의 기술의 결합으로 발상된 그의 비디오아트 자체가 일종의 환유로서 그것이 이산작가 백남준의 작품세계의 정치적 측면을 대변한다.
center
바이런 킴, `제유법(Synecdoche)' 전시전경 / 사진=National Gallery of Arts
코리안아메리칸 바이런 킴은 청자 빛깔의 모노크롬 페인팅이나 고춧가루를 사용한 벽화 드로잉을 선보인다. 동양과 서양, 한국과 미국의 정치적, 문화적 긴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 인종적 갈등, 모국의 정치적 사건 등에 대한 환유적 언급을 포스트미니멀적 시각언어로 녹여내는 것이다.
center
마이클 주, '분리불가’ 전시전경, 2012 / 사진=광주비엔날레
마이클 주 역시 민족족, 문화적, 사회적 정체성의 문제를 불상과 같은 모국의 전통과 미국적 기술, 대중이미지의 미묘한 조합으로 풀어낸다. 미국 유학기를 거쳐 뉴욕에 거주하는 서도호는 모시한옥에서와 같이 한국과 미국의 경계, 안과 밖의 틈새,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교차점에서 자신을 둘러싼 복수적, 복합적 타자와 관계맺기를 시도한다.

자아, 자국의 정체성과 원형에 대한 관심, 전통적, 민속적 모티프의 환유적 차용은 무엇보다 코리안아메리칸 1세대 작가로서 후기식민주의와 페미니즘을 결합시키고 있는 고(故) 차학경과 민영순의 작업에서 명시된다. 어린 시절에 북아메리카로 이주한 이산작가들로서 이들은 이민, 망명의 상실감, 이중 정체성의 혼란과 모순의 경험을 토대로 탈식민주의적 작품세계를 일궈내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모태공간으로부터 일탈하여 새로운 환경과 대면하는 복잡한 물적 상황, 이주라는 새로운 장소적 경험과 그것을 기술하는 언어 사이의 간극, 즉 공간과 언어의 불일치의 경험을 언어, 텍스트, 퍼포먼스, 비디오, 영화, 사진 등 탈장르 실험을 통해 조형화한다.

여행, 방랑, 엽서 등 인류학적 모티프와 함께 한복, 보따리, 고무신, 김치 등 한국적 전통 소재의 재현을 통해 서구중심의 문화적, 젠더적 기준에 도전한다.
center
차학경(車學慶, Theresa Hak Kyung Cha, 1951 - 1982)은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미술가이자 작가이다 / 차학경 레퍼런스전 전시전경 / 사진=수하갤러리리
고 차학경작가의 후기 대표작인 '엑사일레 Exil E E'와 '딕테 Dictee'는 귀환에 대한 기대, 회귀불가능성의 확인, 이중소외, 공간적, 언어적 환치를 주제화하고 있다. '엑사일레'는 필름, 비디오, 작가의 음성으로 구성되는 영상설치작업으로 자신의 이산 경험을 언어와 이미지의 변증법으로 형식화하고 있다.

대나무, 툇마루, 전통 도기 찻잔 등 한국적 모티프들이 흐릿한 흑백 이미지로 처리되어 조용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가운데 작가의 주술적 목소리가 보이스오버로 망명자의 “이름없음”을 토로한다. 과거형의 한국 모티프가 망명 이전의 기억을 되살리며 모국에 대한 향수를 나타내는 한편, 모국어를 말하는 주저하는 음성이 이민자의 불안과 긴장을, 한국여성의 불안정한 정체성을 표현한다.

민영순 역시 한복, 보따리 등, 특히 여성과 관계되는 전통 모티프를 소재화한다. 그러나 차학경이 회고적, 회귀적인 감성으로 사용한다면, 민영순 작가는 식민상황과 여성억압에 대한 비판적 지시물로 그것을 등장시킨다. 1993년의 '기계인형신부의 제식적 노동'에서 전통 혼례용 한복을 입고 쪽도리까지 쓴 미네킹 신부가 접대부처럼 카펫위에 서서 손님을 맞고 있다.

카펫에는 “나를 밟고 걸어오세요”,“나는 당신의 겸손하고 순종적인 하녀입니다”등의 자학적인 문구들이 새겨져있다. 그러나 손님이 다가서면 신부는 오디오테이프 음성으로 “나의 탈무장된 욕망, 탈식민화된 신체 정치학은 어디있는가”하고 의식화된 질문을 던진다. 텍스트와 음성의 상반된 멧시지가 문화정체성과 성정체성의 교차점에서 다중적 혼란을 겪는 이산 여성의 심리를 반영한다.
center
민영순 작가, '어머니와 보따리' 전시전경, 2014 /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작품 '거주지'에서 민영순은 모시한복과 영어책을 병치하고 있다. 한복이 모국에 대한 향수라면, 그것과 대비를 이루는 영어책은 교육과 지식을 선사한 미국, 여성 미술가로서의 자유와 독립을 가져다 준 미국에 대한 경의이다. 미국의 위대함에 대한 선망과 잃어버린 고국에 대한 기억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율배반적 자아를 통해 미국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한다.

4부분 천조각으로 이루어진 '어머니의 짐보따리'에서 전통 모티프의 사용이 보다 명시된다. 한국 여성성, 여성상의 문화적의 기표인 보자기를 모티프로 공식역사를 나타내는 펼쳐진 빈 보자기, 정신대를 의미하는 위장무늬 한복, 분단을 상징하는 반쪽의 보자기, 이주의 역사를 나타내는 동여매진 짐 보따리 등 4개의 보따리 연작을 만든 것이다.

기호화, 추상화, 양식화된 차학경의 전통이미지에 비해 민영순의 이미지는 묘사적이고 모방적이다. 전자는 기호적 중재로, 후자는 의태적 모방으로 환유적 의미를 획득한다

한국 미술의 정체성 문제는 정체성이 무엇인가하는 인식론적 성찰에서 출발한다. 정체성은, 스튜어트 홀이 피력하듯이, 고정적 본질이나 보편이 아니라 신화, 기억, 환상을 통해 구축되는, 불안정한 동일화의 지점들 사이에서 “자리매김”되는 인간적 과정이다.

그러한 까닭에 민족, 인종, 문화, 지역 사이의 의미 있는 차이, 틈, 불연속성을 인정하기 이전에는 하나의 정체성을 말할 수 없다. 홀은 본질보다는 생성되는 존재를 인정하고 지속적 변형을 추구하는 시각에서 유사성과 지속성과 그리고 그에 대립되는 차이, 틈, 균열의 두 축, 즉 유사와 차이의 양 축으로부터 정체성의 다이아로직, 정체성의 정치학이 정초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차이, 틈, 양가성에 대한 후기식민적 관점, 그에 기초한 정체성의 정치학은 제3세계와 제1세계를 이분법으로 가르는 오리엔탈리즘, 이국주의, 토속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전제와 교훈을 수정한다. 특히 세계의 중심이 동쪽으로 이동하고 아시아가 논쟁적 범주로 주목받고 있는 현시점에서 한국의 역사, 문화전통을 후기식민적 관점으로 이해하고, 나아가 한국의 현대미술, 이산미술을 차이와 양가성의 코드로 분석하는 이해가 중요하다.

한국의 신세대 작가들과 이산작가들은 혼성미학과 환유의 정치학으로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일구는 동시에 글로컬리즘을 성취한다. 동양과 서양, 고국과 타국의 경계에서 양가적 언어를 발견하는 이들의 작업은 서구적인 동시에 반서구적이다. 탈식민 의식으로 전통적, 회고적 모티프를 등장시키지만, 그것은 서구적 해체주의 발상에 의해 기호화, 탈맥락화한 상태로이다.

서구적 방법으로 서구를 상대화시키려는 이러한 동종요법적 요구에 의해 이들의 작업은 때로는 개념적이고 추상적이고 때로는 서술적이고 자전적이며 때로는 정치적이고 때로는 미학을 앞세운다.

전통의 재현은 차이와 차별의 경계에서 환유의 힘과 함께 이국주의적 오리엔탈리즘을 재생산할 아이러니를 발생시킬 수 있다. 이것이 후기식민주의의 인식론적, 정치적 입장을 시각화, 조형화하는 예술작업의 잠재된 위험이자 딜레마다.

전통의 재현은 새로운 정체성을 수립하는 효과적인 전략이 된다. 전통이 형식화, 미학화의 과정을 거쳐 낯선 새로움으로 번안, 혼합, 재생산되며 차이를 만드는 순간 그것의 관례적, 회고적 의미가 희석되고 그 자리에 역사성과 정치성을 함의
하는 현재 진행형의 새로운 정체성이 들어선다.

이것이 1990년대 이후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는 한국의 신세대, 이산작가들에 의해 표방되는 혼성의 미학, 환유의 정치학의 비평적 의미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혼성의 미학과 환유의 정치학이 90년대 이후 한국의 포스트모던 미술을 이전의
모더니즘 시대의 미술과 구별 짓는 단초이자 현대적 개념의 정치예술로 파악하는 근거로서, 나아가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성 담론의 골자로서 효력을 갖는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1990년대 후반의 한국의 대중문화는 과거와 많은 차이를 보였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작가들에게 새로운 활동 영역을 제공해주었다. 1990년대 이후 변화한 환경과 매체를 작업에 반영한 작가들은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양쪽 모두에 상호적 영향을 받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을 잘보여준다. 이는 2000년대에 들어 한국 현대미술의 더욱 확장된 형식과 내용을 밑받침 해주었다.

1990년대 활동을 시작한 젊은 작가들은 이제 중견작가로 한국미술을 대중문화와 고급문화를 넘나들며 관객 소통적 미술을 실천하고 있다.

시각매체의 발달은 한국 현대미술이 어떤 영역이던 크게 관계 없이 그들의 구상과 작업관을 지지해 줄 수 있는 독자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는 2000년대 이후 미술의 전반적인 개념의 변화를 불러오며, 다음 세대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반경을 넓혀주었다.

어느 나라건 문화의 이동은 상품의 수출입과 같은 물질의 이동과는 그 맥을 달리한다. 거기에는 민족, 역사, 전통 등과 함께한 시공간의 문제의식을 항상 수반하므로 ‘정체성(identity)’에 관한 질문이 항상 뒤따르기 때문이다.

문화의 이동에 따른 결과는 단기간 내에 가시적이거나 뚜렷하게 인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향과 수용의 과정에서 변형, 변질되어 원본성과의 미묘한 차이를 형성, 또 다른 모습으로서의 원본 행세를 하기도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던은 무수히 많은 의미를 뜻하고 있다. 정치 사회 문화로 퍼져있는 인간의 모든 활동에서 '모던함'이라는 것이 쓰이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러한 모던의 새로운 재 정의이며 가치를 가지려는 인간의 사유과정에서 나온 산물이다. 철학적으로 구시대의 발명품과 차이가 있을지언정 부단히 노력하려는 인간의 사유 활동의 하나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중요한 인간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포스트모더니즘도 현재 새롭게 진행중이다.

참고 : '최열, 한국현대미술의 역사', '김희영, 한국근현대미술사학', '김홍희, 후기식민주의 시각으로 살펴보는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성'

김창만 기자 chang@asiaarts.net
Asia Arts가 제공하는 뉴스콘텐츠에 대해 독자는 친근하게 접근할 권리와
정정·반론·추후 보도를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저작권자 ©아시아아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sia Arts TV

인터넷신문위원회

Asia Arts TV

인기 뉴스

Editor’s Pick

뷰티&패션

Art & Artist

라이프

생활경제 | 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