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4 04:47  |  유럽

[미술을 만나다] 알폰스 무하,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체코의 국보급 화가

상업적 성공과 예술적 성취를 모두 이뤄낸 현대 아티스트의 롤모델
알폰스 무하의 성공의 수만큼 역경과 좌절을 딛은 파란만장한 삶
현대 일러스트 미술의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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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Alphonse Maria Mucha, 1860 ~1939) 체코의 국보급 화가로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유럽과 신대륙을 휩쓸었던 예술사조 아르누보 미술의 대가로 불린다. 'Cycies perfecta', 1902(오른쪽) / 사진=위키아트
[아시아아츠 = 김창만 기자]
알폰스 무하(Alphonse Maria Mucha, 1860 ~1939) 체코의 국보급 화가로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유럽과 신대륙을 휩쓸었던 예술사조 아르누보 미술의 대가로 불린다.

무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시대에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를 받던 슬라브 지역 중 하나였던 모라비아(훗날 체코공화국)의 남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이반치체에서 태어나 유럽과 신대륙을 누볐던 알폰스 무하의 삶은 파란만장했고, 성공의 수만큼 역경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조국과 슬라브 민족임을 잊지 않았다. 40세때 무하는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대표격으로 1900년에 개최될 파리 세계박람회에 선보일 실내 장식에 대한 공식적인 의뢰를 받는다.

[영상=박희아 기자/ 편집=이정희PD] 알폰스 무하(Alphonse Maria Mucha, 1860 ~1939),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체코의 국보급 화가

무하는 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파빌리온의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위해 발칸 반도를 여행하며 영감을 얻고 스케치를 하였다. 그가 파빌리온을 위한 드로잉들을 완성하는 데에는 꼬박 7개월이 걸렸다.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위하여 일하는 자신의 상황과 제국의 통치 아래 고통받는 슬라브족의 딜레마에 고통스러워하였다. 그러나 무하는 이 경험이 훗날 슬라브 족 사람들의 고통과 영광을 위한 기념비적인 작품 '슬라브서사시(The Slav Epic)'에 대한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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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지스몬다, 1894 / 1894년 파리 르네상스극장(Théâtre de la Renaissance)에서 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알리기 위한 석판 포스터를 만들었는데, 무하의 아름다운 포스터는 큰 호평을 받아 유명해졌다 / 사진=위키아트
알폰스 무하가 본격적으로 아르누보 화풍을 시작한 시기는 1887년에 프랑스 파리로 가서부터다. 아카데미줄리앙(Académie Julian)과 아카데미코라로시(Académie Colarossi)에서 미술을 배우면서 잡지와 광고 삽화를 그렸다. 1894년 파리 르네상스극장(Théâtre de la Renaissance)에서 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알리기 위한 석판 포스터를 만들었는데, 무하의 아름다운 포스터는 큰 호평을 받아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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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출판사 F. Champenois 포스터, 1897 / 사진=위키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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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황도 12궁, 1897 / 사진=위키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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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로도 향수 광고 포스터, 1896 / 사진=위키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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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그리스 신화 '메데', 1898 / 1898년 파리 르네상스극장(Théâtre de la Renaissance)에서 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알리기 위한 또다른 석판 포스터 / 사진=위키아트

그는 이때부터 많은 회화, 포스터, 광고와 책의 삽화를 그리고 보석, 카펫, 벽지등을 제작하게 되는데 이러한 스타일은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양식으로 이후 널리 알려지게 된다. 가장 유명한그의 전형적인 회화는 젊고 건강한 여성이 네오클라식 양식의 옷을 입고 꽃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의 아르누보 스타일은 많은 사람들이 흉내 내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이런 상업적인 성공에 대해 부담스러워했으며 보다 고상하고 위엄 있는 예술과 고향에 대한 예술적 관심에 집중하고 싶어했다.

알폰스 무하는 1906년 미국으로 초대받아 1910년까지 있었다. 체코 공화국으로 돌아온 후에 그는 프라하에서 멀지 않은 즈비로그 성의 거대하고 크리스탈로 된 큰 방안에서 자신의 작품에 몰두하였다. 이후 20년 동안 그의 붓 아래에서 20개의 기념비적인 웅장한 작품 슬라브서사시 연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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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슬라브서사시(The Slav Epic) cycle No.1: The Slavs in Their Original Homeland' (1912) / 사진=mucha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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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슬라브서사시(The Slav Epic) cycle No.20: The Apotheosis of the Slavs, Slavs for Humanity' (1926), 480cm x 405cm / 사진=muchafoundation

'슬라브서사시'는 슬라브 민족 역사에 있어서 변혁의 단계를 묘사한 것으로 특히 '조국의 역사에 선 슬라브인들', '불가리아 황제 시메온', '얀 후스의 설교', '그룬반트 전투가 끝난 후', '고향을 떠나는얀 코멘스키', '러시아의 농노해방령'과 같은작품을 20년간 연작 작업을 한 '슬라브서사시(The Slav Epic)'이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현대적 스타일로 프라하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들이었던 '임페리얼' 그리고 자치의회 건물인 '유럽'의 인테리어 작업도 했다. 또한 곧 준공될 성 비투스 대성당의 메인 유리를 스케치했다. 1918년독립된 체코 정부가 형성된 후에 무하는 '관제적 양식'인체코의 기하학적 양식의 창조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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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슬로바키아 우표, 1918/1919, 체코슬로바키아의 첫 번째 우표는 무하에 의해 만들어졌다 / 사진=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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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슬로바키아 지폐, 1920 / 알폰스 무하 디자인 / 사진=wikipedia

그의 재능은 새 정부가 쓸 우표, 은행권, 문서 등을 디자인했다. 1928년 그는 슬라브 서사시를 완성하고 프라하에 이를 헌정했다. 당시의 프라하에서는 모든 '슬라브 서사시' 작품 전체를 전시할 만한 갤러리를 찾을수 없었다. 슬라브 서사시는 전쟁후에 일시적으로 모라비아 성에 일시적으로 출품하였다. 체코어로는 Moravsky krumlov로 1963년부터 관람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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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스테인드 글라스 창' ,성 비투스 대성당 , 프라하 (1931) / 사진=wikipedia / GuyFrancis CC BY-SA 3.0

그의 인생 말엽에 무하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사라졌다. 1930년 체코에서 그의 작품들은 낡은 기능주의 전성시대의 산물인 구식이며 지나치게 민족주의를 강조한 작품으로 간주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첫 번째 우표는 무하에 의해 만들어졌다. 무하의 애국심은 히틀러의 독일 정부가 무하를 적으로 간주한 명부에 포함할 만큼 유명했다.

1939년 3월 프라하가 독일에게 점령된 후에 게슈타포는 몇 번이나 고령인 무하를 검거해서 심문을 가했다. 그 결과 무하는 폐렴을 앓게 되었고 1939년 7월 14일에사망했다. 알폰스 무하는 비셰그라드의 국립 묘지에 안장되었고 무하의 작품들은 프라하 박물관에 헌정되었다. 그의 20년 역작 슬라브 서사시 연작은 모라비아 크루믈에 전시되었다.

“1900년경을 전후해 소위 모든 위대한 화가들은 ‘모던’이라 불리는 것에 대한 압박을 느꼈다. 그러나 반 고흐 속에 불어오는 폭풍도, 고갱이나 쉬라의 곡선 감각도, 혹은 툴루즈 로트렉의 단순화된 선묘의 판화도 ‘스타일’이라는 것을 창조해 내지 못했다.

색채로 타오르는 묘한 도시 프라하로부터 곡선의 부활이 도래했고 체코의 예술가 알폰스 무하는 진정으로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다. 그는 위대한 여행가였고 오랜 민족적 꿈에 국제적인 명성을 기어이 선사해 주었다.” - 프랑스 소설가 루이 아라공 -

무하는 예술을 통해 자신을 브랜딩하고 소비를 창출하는 커뮤니케이션에 뛰어난 스타 아티스트였다. 세기말에 떠돌았던 위기의식과 삶의 불확실성을 떠안은 인간의 속성이 스민 예술로 알폰스 무하는 시대와 정면 대결을 했고, 시대가 요구하는 예술은 새로운 시장과 소비를 창출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법칙이다. 무하의 삶은 동시대 미술가들의 롤모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편 서울 삼성동에 새로 개관하는 마이아트뮤지엄에서 개관 기념으로 ‘알폰스 무하'展을 오는 24일부터 2020년 3월 1일까지 전시한다. 이번 전시는 ‘알폰스 무하’의 판화, 유화, 드로잉 등 오리지널 작품 230여 점을 작가의 삶과 여정에 따른 작품의 변화에 따라 총 5부로 구성하여 선보인다.

고흐와 앤디워홀 사이의 간극에 있는 아르누보의 거장, 알폰스 무하의 작품을 보며 농익은 레드 와인처럼 깊은 가을, 무하의 일생과 예술사적 발자취를 작품을 통해 살펴보는 좋은 전시가 될 것 같다.

김창만 기자 chang@asiaart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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