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2 12:03  |  오피니언

[추니박과 함께 걷는 그림여행 ②] 열정과 사랑이 함께 했던 대학시절의 스케치여행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방배동 천변풍경' 78X90 한지에 수묵 1989(대학2학년) / 그림=추니박
[아시아아츠=글·그림 추니박]
나는 23살이라는 조금은 늦은 나이에 미대를 입학했다. 그야말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황의 청춘을 보내던 내게 문득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어찌 보면 꿈에도 생각 못했던 미대생이 돼버렸다.

사람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 같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이끌려 인생이 살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온갖 방황을 하며 세상을 주유하던 내가 미대생이 되고 또 예술가가 되어 있단 말인가!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꿈꾸는 소년' 50X50 한지에 먹과 아크릴 1990(대학3학년) / 그림=추니박

나의 대학 생활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스펙터클했다. 마음 내키면 언제든 여행을 떠나고 매주 전시 오픈식이 있는 수요일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선배들의 오픈식 뒤풀이에 참석해서 예술에 대한 귀동냥을 하려고 노력했다. 한마디로 나는 대학 1학년 때부터 나 스스로 화가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의 의식을 화가라고 세뇌시켰던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세상살이의 힘든 일들을 경험한 탓인지 대학생활은 특별히 어렵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스스로 밥을 해 먹어야 하는 자취생활마저도 그저 삶의 일부로 느껴졌기 때문에 한 번도 그런 상황들이 고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1학년 2학기에 학교 복도에서 마주쳐 사랑에 빠진 와이프 덕에 나의 학교생활은 뜨겁게 활활 타오르는 열정과 사랑으로 가득했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연인' 140X70 한지에 아크릴 1990(대학3학년) / 그림=추니박

여행을 좋아하던 나와 한 번도 집 밖을 마음 놓고 돌아다녀 보지 못한 서울 여자 와이프와의 만남은 어쩌면 하느님이 정해준 운명처럼 시작되었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강촌 등선폭포계곡' 100X79 한지에 수묵, 꼴라주 1988 (대학1학년) / 그림=추니박

모험심 좋아하고 장난기 많고 늘 도전하는 걸 좋아했던 나는 풍경화가들이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업이 빌 때와 주말이면 학교 근처나 서울 근교로 스케치를 다녔고 방학이면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늘 에너지가 넘쳐나던 나에게 액티브한 행동을 해야 하는 스케치여행은 그야말로 야생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적당한 취미였다. 나는 이미 세상사 쓴맛을 많이 보고 학교를 들어온 터라 그림 그리는 일이 얼마나 편하고 호사스러운 직업인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저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어디서든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그림을 그렸다.

그런 걸 신기하게 생각한 와이프도 화가는 그래야 되나 보다 생각하고 내가 이끄는 대로 나를 따라 열심히 그림을 그리러 다녔다. 내가 처음으로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던 갈대밭은 강화도 여행에서 그렸던 스케치를 그린 것이고 대학 2학년 때 후소회라는 공모전에 입선했던 150호 크기의 풍경은 서대문 무악동의 달동네를 그렸던 것인데 그 모든 장소를 와이프와 함께 도시락을 싸서 스케치를 다녔던 곳이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미사리 강변' 78X100 한지에 수묵 1988(대학1학년) / 그림=추니박

나는 내가 풍경에서 좋은 구도를 찾아낼 수 있는 특별한 눈을 가졌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정말 그 시절부터 끊임없이 스케치를 다니며 수 천 장의 그림을 그려서 생긴 노력의 산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쨌든 나는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나만의 시선으로 풍경을 그리려고 노력을 하고 그것을 와이프와 나누고 둘 다 좋은 화가가 되기를 바랐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태백신기의 방앗간' 90X120 한지에 수묵 1989(대학2학년) / 그림=추니박

나는 지금도 대학시절 와이프와 함께 그림여행을 다녔던 몇 곳의 장소를 잊지 못한다. 강촌 구곡폭포, 미사리 강변, 내 작업실이 있던 방배동 일대, 강원도 태백과 북한강변 여러 곳이 우리가 다녔던 곳이다. 그중에 가장 먼저 갔던 장소이자 가장 의미 있는 장소가 강화도 외포리의 석모도이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외포리 포구' 13X21 중성지에 먹 2009 / 그림=추니박

석모도는 내포리에서 배를 타고 10분 정도 가는 아주 가까운 섬인데 서울에서 가깝기도 하고 돈도 적게 드니 아르바이트로 겨우겨우 살아가던 미대생에게는 아주 딱 맞는 여행 장소였다. 일요일 아침 와이프는 맛있는 반찬을 준비하고 나는 커다란 도시락에 밥만 잔뜩 담아서 신촌 로터리에 있는 터미널에서 만나 삼화고속을 탔다. 거기서 1시간 10분 정도만 버스를 타면 내포리에 도착하고 시간마다 있는 배를 타고 석모도로 넘어가서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다. 갯벌 위에 빨갛게 자라는 바다 해초와 보문사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를 그리다 널따란 바위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으며 봤던 바다 위로 떨어지는 햇빛의 찬란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세상사 그때만큼 걱정 없고 행복한 시절이 있었을까! 거기다가 젊기까지 했으니 참으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다행히 우리는 내가 4학년이 된 3월 그러니까 1991년 봄에 학교 강당에서 교수님의 주례 하에 결혼을 했고 그때부터 30년을 줄기차게 그림여행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함께 했던 그 많은 장소들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우리가 그림을 그리며 보낸 청춘의 많은 날들은 오랫동안 삶의 따뜻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이 글을 위해 그 시절 그린 작품들을 꺼내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던 시절을 잠시 추억해 보니 행복하다.

아! 청춘이여~~~~



[추니박과 함께 걷는 그림여행] 글·그림 추니박

추니박(박병춘)은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을 비롯해 32회의 개인전과 200여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00년부터 산수풍경시리즈를 시작하고 그동안 독특한 작품을 발표해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그는 2010년 중앙일보 주최 평론가가 뽑은 3040작가 1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많은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추니아트’로 미술 애호과들과 소통 중이다.

news@asiaarts.net
Asia Arts가 제공하는 뉴스콘텐츠에 대해 독자는 친근하게 접근할 권리와
정정·반론·추후 보도를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저작권자 ©아시아아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sia Arts Focus

Asia Arts TV

인터넷신문위원회

Asia Arts TV

인기 뉴스

Editor’s Pick

뷰티&패션

Art & Artist

라이프

생활경제 | 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