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30 16:00  |  아트&아티스트

말할 수 없는 달콤함... 아티스트 김재용 국내 첫 개인전 '도넛 피어 DONUT FEAR'

답답한 코로나19... 달콤한 '도넛(Donut)'으로 위안을...
김재용 국내 첫 개인전 '도넛 피어 DONUT FEAR'
학고재 본관 | 2020. 03. 25 ~ 0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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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김재용 개인전 '도넛 피어 DONUT FEAR'Installation view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Photo Andy H.Jung
[아시아아츠 = 김창만 기자]
아티스트 김재용의 달콤하고 화려한 색채의 '도넛(Donut)' 작품들은 관객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으며 달콤한 것을 먹고 싶은 욕망을 일으키며 침샘을 자극하는 재미가 있다.

학고재는 2020년 3월 25일부터 4월 26일까지 학고재 본관에서 아티스트 김재용(b.1973, 서울)의 국내 첫 개인전 '도넛 피어 DONUT FEAR'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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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김재용 개인전 '도넛 피어 DONUT FEAR'Installation view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Photo Andy H.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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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김재용 개인전 '도넛 피어 DONUT FEAR'Installation view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Photo Andy H.Jung

'도넛 피어 DONUT FEAR'전시는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아티스트 김재용이 국내에서 여는 첫 개인전이다. 김재용은 화려한 색채의 도넛 도자 조각으로 이름을 알린 작가다. 익숙한 형태와 단순한 이야기 구조가 특징이다. 그는 대중매체에서 차용한 이미지를 작품에 접목하기도 한다.

현대 미술은 어렵다는 편견을 허물고 대중의 공감을 얻으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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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김재용 개인전 '도넛 피어 DONUT FEAR'Installation view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Photo Andy H.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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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김재용 개인전 '도넛 피어 DONUT FEAR'Installation view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Photo Andy H.Jung

이번 전시는 아티스트 김재용의 작품을 보며 코로나19로 답답한 일상을 잠시나마 즐겁고 달콤한 상상으로 위안을 받는 기회로 그의 다양한 도자 연작과 전반적인 작품 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 아티스트 김재용 국내 첫 개인전 '도넛 피어 DONUT FEAR' 전시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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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김재용 개인전 '도넛 피어 DONUT FEAR'Installation view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Photo Andy H.Jung

이번 학고재 개인전은 김재용이 한국에서 여는 첫 개인전이다. 작가가 구축해온 작품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다채롭게 구성했다. 김재용은 2015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째로 큰 사이즈의 조형물을 제작하는것이다. 작품의 크기를 키워 개별 작품이 큰 존재감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둘째로 청화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다. 한국 전통 요소를 작업에 끌어들이려는 시도다. 5년 동안 몰두해온 두 목표의 결과물인 신작을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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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김재용 개인전 '도넛 피어 DONUT FEAR'Installation view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Photo Andy H.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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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발이 묶인 청화 유니콘 Blue and White Unicorn in Captivity, 2019, 세라믹, 언더글레이즈, 산화 코발트, 유약,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45x33x3.8(d)cm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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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청화새를 찾는 중 Finding Blue and White Bird, 2018, 세라믹, 언더글레이즈, 산화 코발트, 유약 Ceramic, under glaze, cobalt oxide, glaze, 119x82x3.8(d)cm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학고재 본관에서 '아주 아주 큰 도넛' 연작을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다. 대형 도넛은 조형물로서의 강한존재감을 드러낸다. 청화 채색 기법을 접목한 '유니콘을 가두지 말아요(2020)', '호랑이와 까치(2020)' 등의 작품도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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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김재용 개인전 '도넛 피어 DONUT FEAR'Installation view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Photo Andy H.Jung

청화 안료인 산화코발트를 사용해 서양 신화 및 한국 민화에서 차용한 이미지를 그렸다. 본관 안쪽 방에 들어서면 작은 도넛들이 시야를빼곡히 메운다. 실제 도넛 크기로 제작한 '도넛 매드니스!!(2012-20)' 연작은 욕망하는 대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달팽이 형상의 조각 연작도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욕망을 좇는 현대인의 모습을 달팽이에 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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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참새 Sparrow, 2018, 세라믹, 언더글레이즈, 산화 코발트, 유약,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Ceramic, under glaze, cobalt oxide, glaze, Swarovski crystals, 18x37x10.5cm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김재용의 작품은 관객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화려한 색채와 반짝이는 크리스털을 활용한 만화적 표현이 두드러진다. 첫 개인전에 방문한 아이가 스케치북에 작품을 따라 그리는 것을 보고 행복감을 느낀 일이 계기가 됐다. 쉽고 친숙한 만화적 요소를 작업에 끌어들여 보는이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혔다. 김재용은 관객이 작품을 이해하기에 앞서 즐기기를 바란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전시명인 ‘도넛 피어 DONUT FEAR’는 ‘두려워하지 말라(Do Not Fear)’는 뜻이다. ‘도넛(DONUT)’의 발음이 ‘두 낫(Do Not)’과 비슷한 데서 착안한 중의적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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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빛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Donut Fear to Shine!, 2013-20, 세라믹, 언더글레이즈, 유약,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Ceramic, underglaze, glaze, Swarovski crystals, 117x146x3.8(d)cm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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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다 내 거야!! All mine!!, 2012, 글레이즈드 세라믹,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Glazed ceramic, Swarovski crystals, 35.5x22.8x45.7(d)cm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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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12시야 저녁 먹어야지!! 12 o_clock, it is Dinner time!!, 2013, 글레이즈드 세라믹,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Glazed ceramic, Swarovski crystals, 41x25.5x41(d)cm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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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도넛 쏘지 마!! Donut shoot!!, 2012, 글레이즈드 세라믹,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Glazed ceramic, Swarovski crystals, 71x46x17(d)cm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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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거꾸로 Flip Side, 2012, 글레이즈드 세라믹,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Glazed ceramic, Swarovski crystals, 50x45x18(d)cm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아티스트 김재용은 선천적으로 적녹색약을 가지고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스스로가 남들과 다르게 색을 본다는 사실이 두려워 색채 사용을 기피했다. 색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려고 일부러 어두운 그림을 그렸다. 표현에 제한을 두니 마음이 힘들었다. 즐거운 작업을해보자는 생각에 저마다 다른 색과 모양을 지닌 작은 조각을 만들기 시작했다. 도넛이 수백, 수천 개 쌓이자 자연스럽게 색에 대한 두려움을극복하게 됐다. 김재용의 도넛 연작은 두려움을 잊고, 조금 더 가볍고 즐겁게 웃어보자는 희망을 담고 있다.

■ '도넛 피어 DONUT FEAR' 전시 작품소개

'도넛 매드니스!! (20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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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도넛 매드니스!! Donut Madness!!, 2012-20, 세라믹, 언더글레이즈, 유약,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Ceramic, underglaze, glaze, Swarovski crystals, 가변크기 Dimensions variable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본관 안쪽 방에 들어서면 '도넛 매드니스!!' 연작이 시선을 압도한다. 1,358점의 도넛조각을 설치하고 위아래 벽면을 시트지에 인쇄한 도넛으로 가득 채웠다. 복잡한 생각과 욕망으로 가득 차 일말의 틈도 보이지 않는 현대인의 내면을구현하고자 했다.

'도넛 매드니스!!'는 작가로서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만들어낸 작품이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작가로서의 삶을 포기하려던 차에 평소 좋아하던 도넛을 흙으로 빚어 벽에걸었다. 관객은 도넛 조각을 보며 다양한 욕망의 형태를 떠올린다.

수많은 도넛 속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찾아낸다. 전시 서문을 쓴 조새미 비평가는 김재용의 도넛 조각에 대해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은 삶의아름다움을 발견했고, 삶에 지친 사람들은 위안을 찾아냈다. […]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담을 그릇이 되어주었을 뿐 아니라 되고 싶은 자신을 보여주는마법의 거울이 되었다.”라고 썼다.

'동양과 서양에서 자랐거든(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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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동양과 서양에서 자랐거든 Growing up @ East and West, 2018, 세라믹, 언더글레이즈, 산화 코발트, 유약,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135x132x3.8(d)cm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동양과 서양에서 자랐거든(2018)'은 청화 도자의 형식을 빌려 제작한 작업이다. 91개의 도넛을 둥근 형태로 배치하고 청화 안료로 그림을 그렸다. 본바탕은 청화를 떠올리게 하지만 중동풍 아라베스크 문양이 눈에 띈다. ‘카펫’을 검색했을때 나오는 이미지를 모아 재구성했다. 가장자리에 위치한 도넛에는 실을 묶어 마감 처리한 부분을 그려 넣었다. 벽에 거는 태피스트리의 형태를 차용했다.어린 시절 집에 걸려있던 태피스트리에 대한 기억을 동양 청화의 형식으로 표현했다.

'아주 아주 큰 흐르는 노랑 하트 도넛 01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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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아주 아주 큰 흐르는 노랑 하트 도넛 014 XXL Donut 014, 2019, 섬유강화플라스틱, 우레탄 도색,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F.R.P, urethane, Swarovski crystals, 95x100x36(d)cm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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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아주 아주 큰 베이비블루 스프링클 별 도넛 016 XXL Donut 016, 2020, 섬유강화플라스틱, 우레탄 도색,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F.R.P, urethane, Swarovski crystals, 100x100x36(d)cm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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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아주 아주 큰 빨강 점 버블 도넛 020 XXL Donut 020, 2020, 섬유강화플라스틱, 우레탄 도색,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F.R.P, urethane, Swarovski crystals, 100x100x36(d)cm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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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아주 아주 큰 노랑 점 곰 도넛 022 XXL Donut 022, 2020, 섬유강화플라스틱, 우레탄 도색,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F.R.P, urethane, Swarovski crystals, 90x120x36(d)cm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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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아주 아주 큰 크롬 별 도넛 S004 XXL Donut S004, 2019, 스테인리스 스틸, 미러 피니쉬 Stainless steel, mirror finish, 100x100x36(d)cm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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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아주 아주 큰 크롬 스프링클 원 도넛 S001 XXL Donut S001, 2019, 스테인리스 스틸, 미러 피니쉬, 비닐 스티커 Stainless steel, mirror finish, vinyl sticker, 100x100x36(d)cm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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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아주 아주 큰 하얀 초콜릿 원 도넛 019 XXL Donut 019, 2020, 섬유강화플라스틱, 우레탄 도색,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F.R.P, urethane, Swarovski crystals, 95x95x36(d)cm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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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아주 아주 큰 인기 많은 청화 도넛 015 XXL Donut 015, 2019, 섬유강화플라스틱, 우레탄 도색,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F.R.P, urethane, Swarovski crystals, 95x100x36(d)cm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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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아주 아주 큰 도넛 있니 XXL GOT DONUT, 2020, 섬유강화플라스틱, 아크릴릭,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F.R.P, urethane, acrylic, Swarovski crystals, 133x93x36(d)cm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아주 아주 큰 도넛' 연작은 보는 이에게 보다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크게 확대한 형태가 점차 거대해지는 욕망을 상징한다. 사람들이 마음속에 간직한 다양한 바람을 작은 도넛으로 표현했다면 작은 욕망이 점차 커지고 변화하는 모습을 대형 도넛형태를 통해 직관적으로 드러냈다.

■ '도넛 피어 DONUT FEAR' 전시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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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김재용 개인전 '도넛 피어 DONUT FEAR'Installation view / 사진=Courtesy of artist, 학고재 ⓒPhoto Andy H.Jung

'이방인의 심리학' 中 발췌 | 조새미 (미술비평가, 미술학 박사)

두 가지 다른 색이 같아 보인다

김재용 작가의 열여덟 번째 개인전이 학고재에서 열린다. 지명도 높은 국제 전시 이력을 가진 작가가 이제야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이유를 그의 성장과 삶의 과정을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김재용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토목공학을 전공한 아버지와 현악을 전공한 어머니의 2남 중 막내로 태어나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중동의 건설 수주 붐은 198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는데 이때 그의 아버지는 중동 건설 현장에 지점장으로 파견되었다. 김재용은 아버지를 따라 가족이 함께 이주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서 4세부터 9세까지 유년기를 보내게 되었고, 이 5년이라는 시간은 그에게 문화적 다양성에 관해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가 무어 장식 문양(Moorishornament)과 같은 이슬람 장식을 볼 때 오랜 친구와 같이 친근한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최근 작업에서 확인되는 아라베스크(Arabesque)와 같은 페르시아 및 아라비아 문양과 이슬람 전통 유색 보석 장신구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장식도 성장기의 경험에 기인하는 것이다.

김재용은 자신이 흙으로 무엇인가 만드는 작업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고등학교 조소부 활동에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당시로써는 한국에서 미술대학에 진학하기 어려운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적색과 녹색을 병치했을 때 이 두 색이 비슷해 보이는 색각 이상(색약, color blindness) 때문이었다.

김재용은 자신이 느끼기에 어떤 특정한 완벽함을 주는 색의 조합으로 작업을 했을때 사람들의 반응이 각양각색이었다고 말한다. 미국 유학 중 서양화 전공의 한 교수는 그가 색을 쓰는 방식의 독특함을 재능으로 보았고, 화가로서의 가능성도 높이 보았다. 하지만 한국 입시 미술학원의 담당 강사는 그가 그린 강렬한 색상의 수채화를 보고 그에게 화실에 출석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소년은 한국에서 미술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199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코네티컷 주(Connecticut)에 위치한 하트퍼드 대학교(University of Hartford)는 그에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수학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김재용은 조각 전공으로 입학해 흙이라는 재료에 몰입하게 되었다.

흙이라는 재료는 조소뿐 아니라 도조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재료 중 하나이기에 그는 자연스럽게 도자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매체 중심적 관심은 장르중심적 전문화 경향보다 더 다양하고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문제이다. 김재용은 도자와 조각을 복수 전공했던 경험을 통해 장인 정신을 중요시하면서도서사와 상징을 이해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색’은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여러 얼굴의 동물들

대학 시절 김재용에게 영감을 준 작품으로 이탈리아 조각가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 1598~1680)의 <오벨리스크와 코끼리>(1667)와 이탈리아 화가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 1871~1958)의 <목줄을 한 개의 역동성>(1912)을 들 수 있다. 김재용은 이 두 작업에서 첫째, 거장이라 할지라도 언제나 심각하거나 극도의 긴장된 순간만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둘째, 작품이 가진 상상력과 유머의 힘이 어떤 다른 요소보다 호소력이 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건축가이기도했던 베르니니는 <성녀 테레사의 환희>(1647~1652)와 같은 과장된 아름다움이 넘치는 수많은 대리석 조각 작품을 남겼다. 그런거장도 쓰다듬어주고 싶을 정도의 충동이 생기는 귀여운 코끼리 상도 조각할 수 있다는 사실에 김재용은 놀랐다.

심지어 베르니니는 코끼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코끼리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의 설명만으로 베르니니가 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김재용은 보지 않았던 대상을 사실적으로 구현해 내는 힘의 근원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또한 발라가 강아지 발의 잔상을 여러 번 그려 넣는 방식으로 속도를 화면에 옮겨놓은 것을 보았을 때 김재용은 속도감보다는 만화와 같은 장면 묘사에 더 애착을 느꼈다. 더는 희극적일 수 없는강아지의 모습은 끊임없는 웃음을 자아내게 했고 김재용은 이러한 상상력과 유머를 자신의 작품에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작가의 반려견 ‘모모’는 그런 의미에서 그의 뮤즈였고 대부분의 초기작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광대가 되고 싶은 개>(1999)는 가면인지, 실체인지 구분하기 힘든 모습으로 벽에 거치되는 작품이다. 김재용이 미시간 주에 위치한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Cranbrook Academy of Art)에 도자 전공으로 진학한 후 제작한 작품 <가면을 쓴 토끼 귀를 가진 남자>(2002)에도 모모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자신의 심리적 갈등상태를 희극적으로 풀어낸 자화상과 같은 이 작품에는 김재용의 작품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해학, 풍자, 위기의식과 같은 핵심 요소가 함축적으로 내재한다. 주인공은 죽음의 사자같이 검은색 광택이 나는 해골 가면을 쓰고 개 발 모양을 한 양말을 신고 있다. 귀는 토끼 귀 모양인데가면을 씀으로써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남자는 품속에 날개를 단 작은 강아지 모모를 안고 있으며, 치명적독을 품고 있을지도 모를 작은 뱀은 그의 목덜미를 물 기세이다. 그는 가면, 모자, 양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몸에 걸친 것이 없지만 우리에게 웃으라고, 인생이 힘든 것만은 아니라고 승리의 사인을 보낸다.

반려견 모모의 형상 대신 달팽이 모티프가 작업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01년부터이다. 그런데 달팽이 모티프는 <카드를 든 오뚝이 소녀>(1999)와 <전해지는 차가움>(2000)에서주인공의 머리, 어깨, 팔 등에 부착되는 형식으로 이미 등장했었다.

이를 1960년대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케네스 프라이스(Kenneth Price, 1935~2012)의 작품에 등장하는 달팽이와 비교해보자.

프라이스는 컵이라는 인공물에 양서류, 파충류 등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만들어 부착하는 형식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이런 부조화한 만남의 이유는 “불쾌한 미학의 중요한 예”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프라이스에게 달팽이는 불안 그리고 매력과 혐오 사이의 변증법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일종의 장치였다. 반면 김재용의 달팽이는 작가 자신의 분신이다. 작품이라는 연극 무대에서 주연으로 등장해 풍부한 표정과 다양한 동작으로 관객인 우리에게 즐거움을준다.

여기서 ‘달팽이’에 관해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김재용은 자신이 여러 나라를 오가며 생활하기 때문에 확정된 거주지를 소유하는 것에 관해 편안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달팽이의 등껍질은 적어도 작가에게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생존을 위한 어떤 조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스위스 심리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 언급했던 의식과 무의식의 상보적 관계에 관한 성찰을 상기시킨다. 융은 달팽이의 취약하고 물렁물렁한몸을 무의식에, 단단한 껍질을 의식에 비유했다. 융에게 의식이 없는 무의식은 취약하고, 무의식이 없는 의식은 살아있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살아있음은 아름다움의 조건이다. 미국의 영문학자 일레인 스캐리(Elaine Scarry, 1946~)가 아름다움을 살아있음으로부터 찾았던 것처럼 김재용의 작품에서 달팽이의 등껍질은 가면처럼 자신의 정체를 변화시키는 도구인 동시에 아름다움의 조건으로써 생존의 방법론을 상징한다.

이것은 도넛이 아니다

김재용이 작가로서 국제적 인지도를 얻는 결정적 계기는 <도넛> 시리즈를 통해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넛> 시리즈 작업은 만약 작가에게 위기가 닥치지 않았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작품이다. 작가는 결혼 후 뉴욕에서젊은 예술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요식업에 투자했으나 2000년대 후반 미국 금융시장에서 시작된 대규모 세계 금융위기와 맞물려 크게 실패하고 말았다.

2008년, 혹독한 현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더는 예술가일 수 없는 삶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말았다. 만약 도넛이라도 만들어 팔면 생계를 이을 수 있을까? 그렇게 하면서도 작품을 계속할 수 있을까? 질문의 답을 알지 못한채 그는 좌절의 늪에서 도넛 대신 <도넛>을 만들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긍정하기 위해,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작가는 ‘흙’ 도넛을 빚고 또 빚었다. 그리고 그 도넛 위에서 자신이 가장 피하고 싶었던 ‘색’과의 사투를 벌였다. 색각 이상으로 인해 언제나 색을 작업에 사용하는것을 금기시해 왔던 작가는 <도넛> 위에 화려한 색의 향연을 펼쳤다. <도넛>은 스스로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와 확신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 사이의 줄다리기를 벌이지 않았더라면 결코 탄생할 수 없었던 작업이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마치 스마일리 아이콘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듯 작가가 만든 <도넛>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발견했다.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은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삶에 지친 사람들은 위안을 찾아냈다. 금욕적 삶을 기대하는 사람은 도덕률을 발견했고, 에로틱한 사랑을 꿈꾸는 사람은 환상을 엿보았다. 삶의 벼랑 끝에서 시작했던 <도넛> 작업은 다른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담을 그릇이 되어주었을 뿐 아니라 되고 싶은 자신을 보여주는 마법의 거울이 되었다.

응시의 시선을 반사해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돌려주었다. 하지만 도넛 모양은 그림틀이 되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구분한다. 마치 열쇠 구멍으로 반대쪽 방을 들여다볼 때 열쇠 구멍만큼만 보이듯 작가의 작업에서도 제한적인 부분만 허락되는 것이다. 하지만 <도넛>의 형태는 그 자체가 경계이자 제약임에도 불구하고 시각적으로 인지되지 않는 영역을 상상 속에서 완성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준다.

작가는 완벽한 삶의 아름다움, 충만한 위로, 흠집 없는 도덕률, 완전한 에로스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동그라미, 하트, 네모, 별, 꽃, 동물모양이라는 테두리를 통해 암시하는 동시에 완전한 상태는 어떠할지 보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김재용의 <도넛>이 도넛처럼 보이지만 도넛이 아닌 이유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의 <샘>이 소변기가 아닌 이유나,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의 <브릴로 상자>가 브릴로 상자가 아닌 이유와는 다른 맥락에 위치한다. 뒤샹은 <샘>을 통해 예술의 조건을 질문했고, 워홀은 <브릴로 상자>를 통해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의 상품과 예술을 화해시키는 시도에 중점을 두었던 반면 김재용의 <도넛>은 감상자에게 뒤샹과 워홀이 그랬던 것처럼 이것이 예술인가 아닌가를 묻지 않을 뿐 아니라 “미학적 즐거움은 물리쳐야 할 적”이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김재용의 <도넛>은 시각적 관심의 결여를 요구하지 않는 상징적 대상이다.

이러한 김재용의 <도넛> 세계에서는 긍정과 부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주요 특성 중 하나이다. 도넛은 Donut이기도 하면서 Do not이기도 하다. 이 전시의 제목 《DONUT FEAR》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두려움의이중 부정이다. 걱정을 덜고 행복해지자고 말하지만, 작가는 잘 알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야 할 때 다수의 사람은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두려움 없는 삶은 사건도 운명도 없는 삶이라는 것을.

그래서 김재용의 <도넛> 작업은 마치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정물화 바니타스(Vanitas)를 닮았다. 바니타스는 헛됨 또는 허영을 뜻하는 라틴어로 ‘메멘토 모리(memento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의미하는 해골 또는 금은보화로 세공된 식기, 유리잔과 같은 수입 사치품이 정교하게 묘사되었다. 바니타스 회화는 인간은 필멸의 존재이며 죽음 앞에서는 부귀영화와 쾌락이 부질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장치이기도 했지만 반면에 사치품 모티프를 통해 소유욕과 과시욕을 충족시키는수단이기도 했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가 자랑하는 차분한 빛은 진취적 기운이 넘치고 합리성을 존중한 근대의 시민사회가 뿜어내는 세속의 빛”이었던것이다. 17세기 유럽, 집마다 걸려있던 바니타스 회화처럼 김재용의 작업도 세속의 빛을 내뿜으며 시선을 욕망하는 응시의 대상으로 기능한다.

<XXL 도넛>의 매끄러움과 반짝임

김재용은 사적이고, 유일하며, 도자와 유약이라는 귀한 재료로 만든 <도넛> 연작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작업에 접촉할 방법을 모색해왔다. 이는 밀실이 아닌 광장에서 모든 시민에게 공개된 베르니니라는 거장의 <오벨리스크와 코끼리>를 로마 미네르바 광장에서 마주했던 경험에 기초한다. 중국 선양 시(沈阳市)에 위치한 복합 문화 공간 '믹스 시티(Mix City)'에 설치한 <도넛 가든>(2020)은 이러한 작가의 생각이 구현된 대표적인 예이다.

이번 전시에는 이의 연장 선상에서 지름 약 100㎝의 <XXL 도넛> 10여 점이 설치된다. 이 작품들은 세라믹이 아닌 FRP 우레탄 또는 스테인리스스틸을 기본 재료로 한다. 기본적인 표면 처리에서도 서프보드나 할리데이비드슨 오토바이, 그리고 스포츠카의 표면과 같은 매끈함과 반짝임을 자랑한다. 이러한 산업적 표면처리 기법은 작가의 모교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디트로이트(Detroit) 자동차 디자인 문화의 반영이기도 하다. 클래식 자동차의 매끈하고 윤기 나는 표면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유려하게 그려진불꽃 장식은 전형적인 미국적 장식 문화의 하나이다.

<XXL 도넛> 표면의 예사롭지 않은 그러데이션,강렬한 배색, 수백 개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이 부착된 불꽃 형태의 장식은 이러한 장식문화와 맥락을 같이 한다.

한 걸음 더 들어가 김재용의 <XXL 도넛>과 미국 미술가 제프 쿤스(Jeff Koons, 1955~)의 <풍선 개>를 비교해보자. 이 두 작품은 모두 극도로 매끄럽고 깨끗하고 흠집이 없으며 심지어 이음새도 없는 표면에서 시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 두 표면은 본질적 차이가 있다. 쿤스의 매끄러운 표면은 그의 예술의핵심이다. 익명성 보장과 절대적 긍정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쿤스의 <풍선 개>는 의도적으로 유아적이고 따라서 고통, 상처, 저항도 거부한다.

반면 김재용의 <XXL 도넛>은 작가 개인의 감수성 영역을 통과한 이미지가 표면에 투사된 결과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자기 확신과 두려움 사이의 줄타기에 잠재되어있던 기억이 더해져서 완성되었다. 표면에 도포된 유색 크리스털은 작가의 유년 시절 기억에서 소환된 파편들의 흔적이다. 검은 아바야(Abaya) 속에서 별처럼 빛나던 현란한 유색보석 장신구들의 이미지는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쿤스의 <풍선 개>가 가진 매끄러움을 반대자와 부정성을 제거하는 매끄러움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김재용의 <XXL 도넛>의 매끄러운 표면과 반짝이는 장식은 문화적 이방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당화하기위한 노력이자 자신을 세계인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실험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김재용의 <XXL 도넛>은이방인의 상실감과 박탈감까지도 끌어안는 동시에 동서양의 만남을 위한 불빛이 되어 준다.

범세계적 블루 앤 화이트 Blue and White

문화적 추방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정체성이 어떤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보호막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추방의 원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김재용은 아랍 국가에서는 충분한 아랍인이 아니었고, 미국에서도 충분한 미국인이 아니었으며, 한국에서도 충분히 한국인이 아니었다. 아랍인이 되기도, 미국인이 되기도, 심지어 한국인이 되기도 충분하지 않은 전 지구적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은 김재용의 작품 곳곳에 스며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특정 문화권에도 속하지 않는 이러한 그의 정체성은 그의 작품이 어떤 문화권에서든 사랑을받을 수 있는 조건의 토양이 되었다.

도넛 형태 조형물 위에 카펫, 민화 등의 이미지를 청화(靑華)로 표현하는 2018년 이후의 작업은 동서양 문화의 하이브리드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특히 더 주목할 만하다. 청화는 자기에 색이나 문양 등을 나타내는 데 쓰이는 안료로 코발트(Co)를 비롯하여 철(Fe)·망간(Mn)·동(Cu)·니켈(Ni)등으로 구성된 여러 가지 금속 화합물이다. 백자 태토 위에 청료(靑料)로 문양을 그린 뒤 백색의 장석유를 시유하여 소성하였을 때 얻어지는 백자를 청화백자(靑畫白磁)라고 하며 흔히 이를 청화라고 일컫는다. 하지만 이러한 청화는 동양에만 국한되었던 것이 아니라 중동과 유럽에서도 큰사랑을 받았다. 청화를 Blue and White로 번역할 수 있다면 청화의 범 세계성은 더욱 확대된다.

특히 네덜란드 델프트웨어(Delftware)는 김재용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이브리드성으로 대표된다. 델프트웨어는 16세기 네덜란드의 ‘델프트(Delft)’ 지역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이는 이탈리아의 마이오리카(Maiolica)의 전통 위에 중국의 청화를 모방하면서 시작되었다.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동아시아 지역에서 청화를 대량으로 수입하면서 소위 ‘블루 앤 화이트’를향한 욕망은 전 유럽을 휩쓸었다.

그런데 동양의 청화와 델프트웨어는 태토의 종류에서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동양 청화의 태토는 고령토로 금속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1,300°C 이상의 열을 견딜 수 있을 만큼 견고했던 반면에 델프트웨어는 저화도 흙으로 성형한뒤 주석 유약(tin glazed)을 발라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소성한 도기(earthenware)였다. 중국징더전 시(景德鎭市) 등에서는 8세기에 이미 품질 좋은 고령토로 자기를 제작할 수 있었지만,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마이오리카, 17세기 네덜란드의 델프트웨어의 성행에도 불구하고 18세기 이전까지는 태토의 비밀을 알지 못했다. 1709년 독일 작센주에서 카올린(Kaolin)이라는 동양의 고령토와 유사한 성분의 태토의 발견은 세계 도자 역사의 변곡점이 되었다.

하지만 고령토 또는 카올린을 태토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여 모든 도기의 예술성을 폄하할 수는 없다. 특히 델프트웨어의 확장성은 태토 품질의 우수성의 기준을 무력화시킬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카올린이 발견되지않았기 때문에 섬세함과 우아함이 절대적 조건이 아닐 수 있는 델프트 블루 타일을 대량으로 생산했고 이 타일은 제후들의 궁전과 귀족의 저택 건축에 웅장함과 화려함을 부여했다. 이러한 델프트웨어는 영국에도 전파되어 런던을 비롯한 여러 도시의 도자 공방에서 생산되었다.

하얀 도자 바탕에 그려진 이 푸른색의 그림은 강력한 세계화의 아이콘이 되어 세계 곳곳의 사람들 마음속 깊이 침투했다. 지구상에 ‘블루 앤 화이트’라는 도자 문화에 매혹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 대중이 있었다면 그들이 문화적 혜안과 강력한 경제적 역량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고 평가하는 것도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다시 김재용의 ‘블루 앤 화이트’로 돌아와 보자. 김재용의 작업은 엄밀한 의미에서 청화백자는 아니다. 태토가 고령토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넛 형태의 세라믹 조형물을 제작하는 과정은 청화백자의 제작 과정보다 델프트웨어의 제작 과정에 한결 더 가깝다. 저화도 흙으로 성형한 뒤 백색 하회 유(under glaze)를 발라 1차 소성한 후 그 위에 중국, 일본, 한국에서 생산된 청화 유약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 유약들은 탁도와 명도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작가는 그려지는 주제에 따라 유약의 종류를 선별적으로 사용한다.

도넛 위에는 민화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까치, 유니콘, 불사조, 십장생, 나아가 날개가 달린 도넛 등 각종 문화권의 신비로운 동물들 및 상상의 사물들이 그려진다. 때로는 어린 시절 중동에서의 성장기를 상기시키는 모티프를 적용하기도한다. 예를 들어 <동양과 서양에서 자랐거든>(2018)에 등장하는 패턴은 웹 사이트에서 ‘carpet’을 키워드로 검색을 통해 선별한 수십 개의 이미지를 재구성한 결과이다. 그래서 이 작업에는 일반적으로 직조된 카펫 이미지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는 직물의 제작과정 흔적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당초문 등 여러 가지 식물 문양의 복합체는 방사형의 이미지를 이루어 공기중에 부유하는 것 같다. 도넛 위에 그려진 블루 앤 화이트는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각종 문화와 중력의 경계까지도 허물어트린다.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김재용의 <동양과 서양에서 자랐거든>과 폴란드 태생 디자이너이자 도예가인 마레크 세큘라(Marek Cecula, 1944~)의 <도자 카펫>(2002)을 비교해보자. <도자카펫>은 수백 개의 접시가 갤러리 바닥과 벽에 그리드 형태로 설치된 작업이다. 세큘라는 이 작업을 위해 산업적으로 생산된 백자 접시에 실제 페르시아 카펫을 스캔한 이미지를 디지털 프린터로 전사했다. 산업적 기술이 작가의 설치 작업에 깊이 개입한 결과였다.

영국 도자 작가이자 도예에 관한 깊이 있는 글을 써온 에드먼드 드 왈(Edmund De Waal, 1964~)은 <도자 카펫>을 정물의 맥락에서 해석하고자 했다. “펑크와 유머만은 피하면서 불안과 걱정의 원천으로서가정의 사물을 의례화” 했다는 것이다. 형식적 측면에서 드 왈의 분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세큘라가 페르시아 카펫을 포슬린 접시에 전사한 문화적 배경에 관한 사유는 생략되어있다. 세큘라는 유대인으로 폴란드에서 태어났지만, 이스라엘로, 이스라엘에서 브라질로, 브라질에서 다시 미국으로 이주하여 마침내 뉴욕에 정착했다. 그는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동시에 세라믹 작업을 하면서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에서 학생들도 가르쳤다. 이후 세큘라는 <도자 카펫>과 같은 작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소량의 포슬린(Porcelain) 제작이 가능했던 고향폴란드로 다시 향했다.

마치 세큘라가 포슬린 실험을 위해 폴란드의 공방으로 향했던 것처럼 김재용도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 교수로 임용되어 한국에 다시 돌아온 후 청화를 작업에 소환하는 실험에 몰입했다. 작가는 한국에 돌아간다면 반드시 성취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청화였다고 말한다. 문화를 소환하는 작업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의 차이를 피부로 흡수해 본 경험을 해 보았던 사람이 가질 수있는 특수한 감각지각이다. 이는 김재용과 세큘라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대부분은 하이브리드라는 방법론을 따른다.

밤하늘의 별과 같은 <도넛>

작가는 <도넛>이 상징하는 바가 “다양한 삶의 지표들”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 매일 매일 원하는 것이 생깁니다. [···] 그 원하는 것을 꼭 가져야만 할까요? [···] 그것을 갖지 못해서 걱정이 가득한가요? 두려운가요? [···] 도넛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트로피처럼 달아 놓은 모습입니다. 하늘의 별처럼 도넛들은우리가 바라보며 살아가는 다양한 지표들입니다.”

이번 전시의 마지막 방에는 천 삼백여개의 <도넛>이 설치된다. 밤하늘의 별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세라믹 <도넛>들은 완벽하게 일렬로 줄지어 서 있다. 이러한 삶의 지표로 삼을 만한 각각의 욕망이 규율에 따라 벽에 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는 그 이유가 <도넛>이트로피와 같은 기념물의 한 형식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김재용의 <도넛>이 그의 내적 갈등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주지는 못했을 테지만 적어도 자신을 인지하도록 하는 역할을 해온 것은 분명하다. 작가 안에 있는 섬세하고 깨지기 쉬운 “창조적 에너지의 덩어리”는 밤하늘의 별과 같은 <도넛> 위에 뿌려졌다. 범 세계성을 획득한 <도넛>은 작가 안에서 쉽게 깨질 수도 있었던 꿈이 체현된 결과이기도 하고, 비트코인이기도 하고, 전환기적 대상이기도 하고. 자유무역 세계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끝으로 클리셰(cliché)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공예와 미술이라는 규범과 김재용의 작업은 도대체 어떤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지 질문해보도록 하자. 김재용은 도자라는 고전적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공예’를 규범적으로 이해하는 한 ‘공예’라고정의할 수 없는 대상을 생산하고 있다. 좀 더 너그러운 입장에서 흙으로 무엇인가 만든다는 행위와 과정을 ‘공예’ 문화에 편입시킨다면 그의 작업을 ‘공예’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김재용의 작업이 ‘공예인가? 미술인가?’ 하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이 질문은 그의 작품의 가치를 측정하거나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김재용의 작품이 한국에서 도자와 공예, 나아가 미술이라는 분야를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볼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김재용의 작업은 ‘과연 공예란 무엇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관해 더욱 확장된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동시에 ‘그렇다면 미술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라는 질문에도 짓궂은 미소로 답할 수 있다.

김재용의 작업은 미술관, 지역축제, 연예인 집의 앞마당, 힙스터 카페, 쇼핑몰, 미술관의 기념품 가게, 지역 회전교차로의 미술 장식품을 위한 자리, 아파트의 거실 벽 면 등 어느 자리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범세계적 인간의 기억 소환을 통한 심리학적 연구 결과는 <도넛>이라는 한 형식으로보편성을 획득하여 우리의 시간과 공간의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앞으로 그 범위는 점점 더 확장될 것임이 틀림없으며 이것은 일관성 있게 입증되고 있다. 김재용의 <도넛>은 상상력, 유머, 그리고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장식을 통해 오늘날 절대적 긍정과 냉소주의를 동시에 초월하고있다.

참고 문헌

김재용 인터뷰, JYK 스튜디오, 신사동, 서울, 2020년 1월 31일, 인터뷰: 조새미.
『20세기 도자의 역사 20th Century Ceramics』 (시공아트, 2018 [2003]),에드먼드 드 왈, p.188.
김재용 작가노트.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 On Beauty and Being Just』 (도서출판b, 2019 [1999]). 일레인 스캐리, 이성민 옮김,
『이미지와 기호, 고정 이미지에 대한 기호학적 연구 L’Image et les Signes』 마르틴 졸리, 이선형 옮김, (동문선, 1994), p.177.
『철학하는 예술, 예술작품의 철학적 특성 Philosophizing Art』 아서 단토, 정용도 옮김, (미술문화, 2007 [1999]), p.97.
『고뇌의 원근법』 (돌베개, 2009), 서경식, 박소현 지음, p.78.
『아름다움의 구원 Die Errettung Des Schönen』(문학과 지성사, 2016),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p.9-1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1996.
Lucy Trench (ed), Materials & Techniques in the Decorative Arts (London: John Murray, 2000), p.114.
『앞의 책』 에드먼드 드 왈, 이윤희 옮김, p. 224.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 Playing to the Gallery』 (원더박스, 2019 [2014] 그레이슨 페리, 정지인 옮김, p. 178.

- 조새미 (미술비평가, 미술학 박사)

■ 아티스트 김재용(Jae Yong KIM, b.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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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김재용 / 사진=학고재

1973 서울출생

1998 미국 웨스트 하트퍼드 하트퍼드 대학교 하트퍼드 아트 스쿨 도자& 조각과 학사 졸업

2001 미국블룸필드 힐스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 도자과 석사 졸업

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도예학과 조교수

서울과 뉴욕에서 거주 및 작업


아티스트 김재용 Instagram

개인전

2020
도넛 피어, 학고재, 서울
2019
아이러브 도너츠, 파워롱미술관, 상하이
도넛에버 포겟 미, 보이시 미술관, 보이시, 미국
2018
위러브 도너츠, 라에비뉴, 상하이
2017
아이 러브 도넛, 갤러리 바이 더 하버, 하버 시티, 홍콩
2016
하이라이티드솔로 아트 쇼 – 김재용, 환타이박물관, 쯔보, 중국
뻥하고 터지는 도넛, 라이언스 위어 갤러리, 뉴욕
도넛 생각이 자꾸나…., 마샬 M. 프레데릭스 조각 박물관, 새기노,미국
2015
생각을 멈출 수 없어…., 데노스 박물관, 트래버스시티, 미국
2014
도넛러시, 라이언스 위어 갤러리, 뉴욕
아이러브 도너츠, 헌터돈 아트뮤지엄, 클린턴, 미국
2013
도넛필드, 워터폴 맨션 & 갤러리, 뉴욕
2012
도넛에대한 욕망, 블랭크 스페이스, 뉴욕
2004
스네일링,뉴 센츄리 아티스트 갤러리, 뉴욕
2003
신작,비주얼 리서치 갤러리, 뉴 헤이븐, 미국
1999
모모온 월, 한스 바이스 뉴스페이스 갤러리, 맨체스터 커뮤니티 대학, 맨체스터, 미국
근작, 우드 메모리얼 라이브러리 & 뮤지엄, 사우스 윈저, 미국
1998
저스트모모, 더 갤러리, 브리지포트 대학교, 브리지포트, 미국

아티스트 김재용의 '도넛'을 보며 코로나19로 답답한 일상을 잠시나마 즐겁고 달콤한 상상으로 위안을 받을 전시 '도넛 피어 DONUT FEAR'展은 학고재 본관에서 4월 26일까지다. 마스크 착용은 필수.

김창만 기자 chang@asiaart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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