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9 11:36  |  오피니언

[추니박의 인도 여행기]인도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⑨

[아시아아츠 = 글 그림 추니박]
하나둘 친구들이 떠난 자리에 새로운 친구들이 함께한다.

한국 친구들이 떠나고 나는 잔시역에서 잠깐 안면이 있던 다카시라는 일본인 친구와 함께 숙소를 쓰고 있다. 만화를 그리며 여행하는 친구인데 한눈에 봐도 어찌나 궁해 보이는지 가진 걸 주고 싶은 인상을 가진 젊은 친구다. 오사카에 사는 다카시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해서 모은 돈으로 인도 여행을 왔다고 한다. 인도 여행을 하며 세상 구경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러스트 그림으로 뒤에 책도 만들어 볼 생각이란다. 다카시의 실력은 아직은 아마추어 수준이라 조잡하고 어눌하지만 어딘지 진지함과 유머러스한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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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오르차의 오후,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아침에 스케치를 가면서 시장 입구에 앉아 그림 그리는 다카시를 잠깐 보고 하루 종일 들판을 돌아다니다 마을로 돌아왔는데 그때까지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실력은 안 되지만 그 끈기와 집요함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중에 꼭 훌륭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될 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카시는 내가 그린 성 그림을 보고 완전 감동해서 내가 엄청 유명한 화가인줄 안다ㅋㅋㅋ.

그 친구는 침낭도 없이 그저 가진 이불이라고는 얇은 천쪼가리였는데 그나마도 대한항공 기내에서 나눠준 서비스 이불이였다. 그 천하나를 덮고 콘크리트 벽에 습기가 가득한 침대에서 덜덜 떨며 자는 다카시가 안쓰러워 내 침낭을 펴서 함께 덮고 잠을 잤다. 그 바람에 다카시는 나를 형처럼 생각하며 잘 따르게 됐다. 나라는 밉지만 사람을 미워할 수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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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이 많은 성,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들판이 보이는 언덕이나 마을 입구 성에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관심을 가지는 외국인들도 많아 우리는 쉽게 인사를 나누고 친구가 된다. 오늘은 남아공에서 여행 온 친구와 국적을 모르는 웹이라는 친구 그리고 다카시와 저녁을 함께 먹었다.

오르차는 야채 위주의 식사를 하는 베지테리안 마을이라 딱 두 곳의 레스토랑에서만 탄두리를 판다. 나의 주된 주식이 된 탄두리에 저녁을 먹으며 맥주 한잔을 하면 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탄두리는 닭다리 하나와 날개 한쪽이 나오는데 가격은 100루피 우리 돈으로 3000원 정도 하는 가격이다.

내가 추천을 해서 탄두리를 먹어본 외국 친구들도 인도식 바비큐에 아주 흡족한 듯했다. 배낭여행을 온 친구들은 다들 돈이 없어서 주야장천 카레만 먹고 다니는 편이라 인도의 다른 음식은 거의 모르는 편이다. 물론 나도 그 외는 모른다.

내일은 디아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 며칠 떨어져 있어 내 안부도 궁금해할 거고 또 우리가 다시 만나서 가야 하는 인도 서부 라자스탄의 자이살메르 ‘타르 사막’ 쪽에 큰 지진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니 일정도 확인해야만 한다.

약 만 명의 사람들이 이번 지진으로 죽었다고 해서 낮에 만난 인도 사람들에게 슬픈 일이 생겨 가슴 아프다고 했더니 이 친구들 하는 말 “노 프러브럼”,,,,인도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 정도는 죽어도 상관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런 참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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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오르차의 들녘, 종이에 펜과 먹, 2001 / 그림=추니박


이 사람들은 정말 걱정이 없을 만큼 낙천적인 건가! 생각이 없는 건가! 오후 내내 그 생각을 하며 들판을 걸어 다녔다. 밤늦은 시간에도 숙소를 서성이며 흥정을 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인도는 배낭을 짊어진 여행객들이 만드는 묘한 향수가 있다. 그들의 모습이 인도의 낡고 허름한 그리고 지저분하고 복잡한 거리를 하나의 완성체로 만들어주는 매력이 있다.

2001.28 오르차의 차가운 숙소에서

손목이 아프다.

며칠 전부터 아픈 손목이었는데 오늘은 특히 통증이 심하다. 그림을 그리는데도 힘이 들고 글을 쓰는 일은 더욱 힘이 든다. 매일매일 파스를 붙이고 여분의 펜으로 부목을 대고 스카프로 손목을 매어 고정을 시키고 있지만 통증은 가라앉지 않는다. 산치에서 버스를 탈 때 지붕으로 무거운 배낭 20여 개를 다 올려주느라 무리했던 것이 펜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무리가 온듯하다. 아무래도 손목 인대가 늘어난 것 같다. 아직도 여행할 날이 20여일 남았는데 걱정이다.

나는 람라자 레스토랑 2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아침 식사를 주로 하는데 그 식당에 ‘브펜드라’라는 웨이터가 각별히 내게 신경을 많이 써준다. 떠나기 전날 그 웨이터의 집에서 저녁을 먹자고 초대도 받았으니 우리는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아침에 그 친구에게 도시락을 부탁하면 커피와 삶은 계란, 볶음밥 등을 준비해 줘서 나는 그걸로 점심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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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에서 만난 성, 종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오르차 읍내에서 남쪽으로 뻗은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농가로 쓰이는 성을 다녀왔다. 한가로운 전원풍경 속, 나무 밑에 누워 현주에게 편지도 쓰고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을 하늘에 그려보기도 했다. 가족들과 형들 친구들 후배들 얼굴들이 떠오르고 부모님 얼굴도 스쳐가서 이내 슬퍼져 버렸다.

인도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어디를 가든 어디서든 나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어본다. 내 평생 이렇게 자유롭고 편안한 삶을 살아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때 묻지 않은 삶을 위해 노력하리란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가는 만큼 세상은 또 오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오고 가는 여행자들을 통해 깨닫는다. 또 내가 이곳을 지키지 않아도 또 누군가가 이곳을 지키게 될 것이니,,,,어떤 곳에 집착하지 말고 떠나고 남고 만나고 헤어지는 것에 연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2001.1.29. 오르차의 들판 나무 그늘에 누워서 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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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오르차, 종이에 펜, 2001 / 사진=추니박


나는 그 허름한 성 앞 나무 그늘에 누워 하루 종일 생각도 하고 잠도 자고 도시락도 먹으며 시간을 보내다 돌아오는 길에 석양을 볼 수 있는 성에 올라갔다. 오늘은 사람들이 많아서 줄을 서서 좁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숫자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석양을 보기 위에 탑에 매달려 있기도 하고 난간에 걸터앉기도 하고 어떤 커플은 부둥켜안기도 하면서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지는 해를 구경했다.

마침 석양을 보면서 부자로 보이는 인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는데 내가 마음에 든다며 자신의 여동생이 결혼을 해서 피로연을 여니 저녁에 집으로 오라고 초대를 했다. 나는 혼자 가기 쑥스러워 저녁 내내 갈등하다 포기했는데 그 집에서 밤새 여는 피로연 잔치 때문에 온 동네 음악이 울려 퍼져서 잠을 한 숨도 못 잤다. 차라리 가서 놀았더라면 오히려 스트레스도 안 쌓이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을 텐데,,,,,

어쨌든 오르차의 6일을 정리하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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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차 인상, 종이에 펜과 수채, 2001 / 사진=추니박


아무것에도 얽매이거나 걱정하는 일 없이 그저 밥을 먹고 소풍을 가고 스케치를 하고 저녁이면 레스토랑에 앉아 차를 마시고 또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아침이면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틈나는 대로 일기를 쓰면서 매일 새벽 일출을 보고 매일 저녁 일몰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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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성과 어울리는 나무,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그저 인생의 한 장면을 통째로 보고 있는 그런 느낌, 과거의 한 시점으로 돌아가 나를 보고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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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템플, 종이에 펜과 수채, 2001 / 그림=추니박

다시 내가 이곳에 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의 한 시절을 이곳에서 보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나는 2006년 화가 후배와 오르차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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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 보이는 풍경, 종이에 펜과 수채, 2001 / 그림=추니박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사람들의 문화와 문명이 존재한다는 사실, 서로 다른 여러 개가 아무런 불편 없이 존재하는 이곳 인도! 아들이 크기 전에 꼭 이 어메이징한 인도를 보여주리라!

완전히 다른 삶이 존재하는 이 넓은 인도 땅의 문화와 그들의 선조들이 만들어 온 문명의 실체, 죽음과 삶, 가난과 부, 웃음과 슬픔, 사랑과 미움이 교묘하게 어우러진 인도를 경험한다면 세상 무서울 것이 없을 것 같다.

간판도 없고 난방도 없고 온수도 없는 이 차가운 숙소의 썰렁한 침대 그러나 사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이 작은 테라스의 따뜻한 햇볕과 끊임없이 오고 가던 배낭족들의 모습이 그리우리라,,,

2001. 1. 30 내게 휴식과 많은 영감은 준 오르차를 떠나며

[추니박의 인도 여행기] 글·그림 추니박(아티스트 박병춘)

노란 유채꽃이 핀 고창풍경 / 영상=추니아트 유튜브

추니박(박병춘)은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을 비롯해 32회의 개인전과 200여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00년부터 산수풍경시리즈를 시작하고 그동안 독특한 작품을 발표해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그는 2010년 중앙일보 주최 평론가가 뽑은 3040작가 1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많은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추니아트’로 미술 애호과들과 소통 중이다.

chang@asiaart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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