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6 12:45  |  오피니언

[추니박의 인도 여행기]평범한 풍경 속 놀라운 카마수트라 조각들이 있는 카주라호⑩

[아시아아츠 = 글 그림 추니박]
오르차에서의 6박 7일 간의 휴식을 뒤로하고 카주라호에 도착했다. 이미 이곳은 내가 속한 그룹 친따(친구따라 인도가기 여행사) 친구들이 다녀간 곳이라서 그런지 그들의 흔적과 냄새가 배어있는 것 같아 친숙한 느낌이다. 친따의 리더 디아와 스님, 선희, 지은이 그리고 오르차에 머물다 떠나 진선이와 은주가 이곳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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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주라호역-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종이에 먹, 2001 / 그림=추니박


오르차에서 떠나올 땐 내가 늘 가던 레스토랑 바이샤인 브펜드라가 시내에서 8킬로 정도 떨어진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을 해줘서 우리는 아주 뜨겁게 헤어졌다. 떠나오기 전날 저녁에 그 친구의 집에 초대를 받았었는데 갑자기 외국 관광객이 단체로 식당을 예약하는 바람에 저녁은커녕 늦게까지 손님들 접대하느라 집에도 못 가고 레스토랑에서 잠을 자야만 했단다. 어쨌든 그 친구와 짧지만 뭔가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되어 기쁘다. 다른 인도 친구들이 가지는 인도인의 정형적인 허풍이 없이 느릿느릿한 말투와 점잖은 몸가짐 깔끔한 옷맵시 등이 마음에 든다.(나는 2006년 다시 인도 여행을 했을 때 오르차에 들러 좋은 호텔 지배인이 돼있는 브펜드라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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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여행자,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오르차에서 탄 디럭스 버스는 말만 고속버스이지 거의 트럭 수준에 가까웠다. 버스 뒤 트렁크에 실을 짐은 완전히 먼지 투성이고 의자와 의자 사이가 너무 좁아 앉아 있기도 힘들 지경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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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풍경-짓다만 집, 종이에 먹과 아크릴, 2006 / 그림=추니박

카주라호의 첫인상은 듣기보다 깨끗하고 조용한 동네로 비쳤다. 만나는 사람마다 카주라호는 지저분하고 또 소매치기 등을 조심하라고 해서 바짝 긴장을 하고 온 참이라 모든 게 다 조심스럽게 보인다. 듣던 대로 웬만하면 한국말 한 두 마디는 기본으로 할 줄 알았고 한국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있어 반갑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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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하는 사람, 종이에 펜과 수채, 2001 / 그림=추니박


넓은 밭에 둘러싸인 호텔에 방을 잡고 짐을 내린 후 버스에서 만난 한국 남녀 한 쌍과 오르차를 떠나오며 만난 영국 청년 리치와 총각식당이라는 한국음식점에 가서 닭백숙을 시켜 먹었다.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한국음식을 먹으니 감동이 밀려왔다.

마침 한글로 된 메뉴판 아래 ‘이 메뉴를 만들고 붓을 꺾은 H대 동양화과 96 세랑,,,’이라는 글귀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세랑이는 내가 졸업한 홍대 동양화과 후배라서 반갑고 세상 참으로 좁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식당 사장님에게 이것저것 한국음식점을 하게 된 사연과 음식을 위한 재료 조달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게 되었다. 그 주인장의 말인즉슨 그림 그리는 어떤 여인이 주인장의 집에 민박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한 참을 이곳에 머물면서 한국음식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그 이후 현지에서 비슷한 재료를 구하는 방법을 찾아내 이렇게 번창한 한국음식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했다. 주인장은 내가 그 여인의 대학 선배라는 얘기와 내가 그린 스케치북을 보더니 아주 반가워했다. 그 길로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주인장의 오토바이를 타고 카주라호 근교로 드라이브도 가고 그의 집에 초대받아 가족들과 식사도 같이 하면서 인도인들의 가정 생활상도 들어다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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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주라호의 가난한 학교교실, 종이에 먹과 수채, 2006 / 그림=추니박


인도 사람들은 내가 그림 그리는 것에 매우 관심도 많고 신기해하기도 하고 감탄도 잘해준다. 현시대가 예술이 대중 속으로 전달되고 파급되는 것이 현대미술의 목적이 되고 있다면 사람들 속에서 그들과 호흡하며 그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은 그림을 그냥 그림으로 대하며 그 느낌을 스스럼없이 말할 줄 아는 감성을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선조들로부터 이어온 예술에 대한 창조적 감각이 이들의 핏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은 아닐는지,,,,,이들이 아침마다 집 앞을 깨끗이 쓸고 거기다 그려놓은 그림 문양의 테크닉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다. 길거리에서 쓱쓱 그려 주는 헤라(물감으로 그려 주는 문신, 시간이 지나면 지워진다)의 수준도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 아무리 패턴을 그리는 것이라 해도 이들의 손재주가 정말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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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주라호 사원의 외벽 카마수트라 / 사진=추니박


이곳 카주라호는 13세기 찬델라 왕조를 세운 찬드라 트레야 왕이 건설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애 사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까마수트라 조각으로 잘 알려진 이곳 사원들은 성의 외벽에 정교하게 조각된 미투나(성교 장면)를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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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수트라 조각상 / 사진=추니박

나는 대학 미술사 시간에 사진을 통해 몇 장의 카마수트라 조각을 보기는 했는데 외벽 전체에 조각된 성교를 위한 교본과 각가지 포즈로 적나라하게 묘사된 것에 조금은 충격을 받았다. 누가 봐도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로 적나라한 포즈를 성의 외벽에 그것도 엄청난 규모로 건축을 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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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주라호 미투나-사랑을 나누는 사람들 / 사진=추니박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정교함과 묘사력 그리고 조각의 표현방법이 정말 사실적이고 뛰어나다. 하지만 그곳에 서서 조각을 유심히 쳐다만 보고 있어도 주위 사람들에게 눈치가 보여서 서로서로 표정관리를 하느라 여념이 없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야말로 야한 조각이 있는 부분에선 얼른 지나가고 좀 점잖은 곳에선 한참을 감상하고 서있게 되는 상황이 그 성 앞의 풍경이다.

세계의 많은 조각가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하는데 나에겐 그리 큰 관심사는 아니 여서 성을 둘러보고 굳이 드로잉은 하지 않고 성의 윤곽만 기념으로 한 점 그렸다. 오르차에서 오래된 성을 정교하게 그리느라 질린 상태인데 온통 카마수트라로 조각된 더 복잡한 성을 보니 확 질려버렸다.

카주라호는 평지에 위치한 작은 도시라서 주변이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여기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기는 힘들다. 벌써 오르차에서 매일 보던 해돋이와 일몰 풍경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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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주라호의 가난한 학교교실, 종이에 먹과 수채, 2006 / 그림=추니박


한마디로 카주라호는 거대한 도시를 압축해 놓은 작은 도시 같다. 이곳의 아이들은 그야말로 확 까져서 어른들 흉내를 내며 호객행위를 하고 거들먹거리고 대화를 하면서 비아냥 거리기도 해서 도저히 애들이라고 봐주기 어려울 정도다. 그리고 사람들이 말만 하면 거짓말을 해대고 여기저기 거지와 호객꾼이 많아서 동, 서 서원 사이에 놓인 중앙로를 걷는 일은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빌려 카주라호 성을 둘러싼 들로 드라이브를 다녔는데 그것도 지루할 정도로 평범한 풍경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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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주라호의 풍경-똥누는 부자, 종이에 수채, 2001 / 그림=추니박


그나마 재밌는 일은 내가 작은 호숫가를 내려다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로 와서는 둘이서 작은 깡통에 물을 뜨더니 그 옆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똥을 누는 것이 재밌어서 그림에 얼른 그려 넣었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한참 동안 똥을 누다가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나를 뒤늦게 발견하고는 정신없이 똥을 닦고 허둥지둥 달아나 버리는 장면이 코믹해서 한참을 웃었다.

이곳은 특히 한국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아침에 도착해서 사원에 들러 사진 찍고 총각식당에서 밥을 먹고 저녁이면 바라나시를 향해 떠나는 일정으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참 여행을 바쁘게들 하는구나,,,,저런 여행을 통해 도대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카주라호는 그만큼 어떤 여행자에게도 여유와 휴식을 제공할 여력이 없는 곳이기도 했다.

저녁을 먹고 와이프와 잠깐 통화를 했는데 마침 그 순간에 오르차에서 만났던 남녀 커플 두 팀이 호텔을 잡기 위해 내가 묵는 숙소 프런트로 들어왔다. 서로를 알아보고 가볍게 손을 흔들었는데 그 두 여인이,,, ‘오빠~~“라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서 호들갑들 떨었다. 정말 전화를 받고 있는 저쪽에서는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그 바람에 와이프가 내심 속상해하며 전화를 끊어서 저녁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딱 그 순간에 그렇게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오버하는 여학생들의 호들갑 때문에 내가 이곳 인도 땅에 와서 희희낙락하며 놀고 다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씁쓸해할 현주의 얼굴과 마음을 생각하니 정말 속이 상한다.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전화를 해서 마음을 풀어줘야겠다.

머리맡에 놓인 와이프와 아들의 사진을 보니 서울이 그립고 가족들이 보고 싶다.

아직도 내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와있는지 알 수 없지만 작은 욕심들을 버리고 더 큰 것을 위해 나아가는 자유로운 예술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 다짐해본다.

2001. 2. 2.

[추니박의 인도 여행기] 글·그림 추니박(아티스트 박병춘)

추니박 개인전 초대합니다 사비나미술관 / 영상=추니아트 유튜브

추니박(박병춘)은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을 비롯해 32회의 개인전과 200여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00년부터 산수풍경시리즈를 시작하고 그동안 독특한 작품을 발표해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그는 2010년 중앙일보 주최 평론가가 뽑은 3040작가 1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많은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추니아트’로 미술 애호과들과 소통 중이다.

chang@asiaart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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