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7 16:41  |  문화예술

[책을 만나다] 손영옥의 미술 신간 도서 '미술시장의 탄생-광통교 서화사에서 백화점 갤러리까지'

1876년 개항 후 해방까지 국내에 근대적인 미술시장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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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0월6일 매일신보에 실린 1922년 서울에서 개최한 조선도자전람회 사진 / 사진=도서출판 푸른역사
[아시아아츠 = 김창만 기자]
국민일보가 14회에 걸쳐 연재한 '근대 미술거리를 걷다'의 작가 미술 문화재전문기자 손영옥이 도서출판 푸른역사와 함께 미술 신간 도서 '미술시장의 탄생-광통교 서화사에서 백화점 갤러리까지'를 18일 출간한다.

화랑의 전신 ‘서화관’부터 고려청자의 ‘대체재’, 조선백자, ‘경성의 크리스티’ 경성미술구락부, 서양화 전시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미술품 투자의 대상이 되다, 근대적 화랑 ‘백화점 갤러리’의 등장 등 1876년 개항 후 해방까지 국내에 근대적인 미술시장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한 책으로 18세기 부터 현재까지 국내 근대 미술시장의 완성이 된 동시대 미술시장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있다.

■ '미술시장의 탄생'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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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의 탄생 중 1905년 영국 런던에서 발행되던 매체 ‘더 그래픽’에 실린 삽화 / 사진=Courtesy of artist, 도서출판 푸른역사

120년 전, 한양에서 어쩌다 마주쳤을 한 외국인 신사의 모습을 보자. 중절모를 쓴 그는 조선백자 항아리를 들고 조선인 상인들과 흥정을 하고 있다. 갓을 쓴 조선인 상인 2명은 짐짓 여유를 가장하고 있다. 그 가격엔 팔 의향이 없다는 듯한 포즈다. 몸이 단 쪽은 서양인으로 보인다. 서양인들이 비싼 값을 치르고서라도 사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상인들이 알아차린 것 같다. 낯선 서양인의 출현이 신기한지 코흘리개 동네 아이들이 현장을 빙 둘러싸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발행된 '더 그래픽The Graphic' 1909년 12월 4일 자에 실렸던 이 삽화는 개항 이후 서양인의 등장이 ‘은둔의 나라’였던 한국의 미술시장에 끼친 영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묄렌도르프에서 간송 전형필까지
이왕가박물관에서 미쓰코시백화점 갤러리까지 근대 미술 거리를 걷다
감상에서 거래로, 미술시장 만들어지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형태의 미술시장이 언제 태동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그 답을 찾는 책이다. 미술시장 및 제도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면서 비평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손영옥(국민일보 미술.문화재전문기자)은 한국 미술시장이 전근대적 성격을 벗어나 근대적인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으로 이행한 시점을 개항기라 보고 한국 근대 미술시장 형성사의 첫머리를 개항기에서 시작한다.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고미술품으로 인정받는 ‘미술로서의 고려청자의 발견’이 이뤄진 것도 개항기이고, 갤러리의 전신인 ‘지전’과 ‘서화관’ 등이 모습을 드러낸 것도 개항기라는 것이다. 개항기에서 첫발을 뗀 저자는 이후 여정을 일제 문화통치 이전(1905~1919), ‘문화통치’ 시대(1920년대), 모던의 시대(1930년대~해방 이전)로 옮기면서 한국 미술시장 형성사의 세세한 풍경을 탐색한다.

이 여정에는 거래가 양성화된 후 최고의 미술상품으로 자리잡게 된 고려자기, 일본인들끼리 사고파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고려자기 시장, 천정부지로 치솟은 고려자기를 소유할 수 없던 일본인 지식인층에 의해 고려자기의 대체재로서 ‘발견’된 조선백자, 컬렉터로서 이름을 날리는 한국인 자산가층의 등장, 갤러리.경매회사.전람회 등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한 자본주의적 미술시장 제도 등이 주요 풍경으로 등장한다. 저자의 발자취를 따라 상투 튼 남정네들이 외국인과 마주치는 게 낯설지 않았을 개항기의 한양 종로길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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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신간 도서 '미술시장의 탄생-광통교 서화사에서 백화점 갤러리까지' / 사진=도서출판 푸른역사

■ 책 속으로

개항기는 한국 미술시장에서 가장 격동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다.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고미술품으로 인정받는 ‘미술로서의 고려청자의 발견’이 이때 이뤄졌다. 갤러리의 전신인 ‘지전’, ‘서화관’ 등이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 무렵이다(17쪽).

개항기는 전근대적인 후원ㆍ왕실 종속 관계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상업적 목적으로 그림을 제작하는, 근대적 개념의 민간 직업화가가 보편적인 존재 방식이 되는 한국 근대 미술시장의 출발기다. …… 서양인들은 이러한 전환기에 등장하여 강력한 구매 의사와 뚜렷한 구매 목적, 높은 지불 능력을 바탕으로 화가와 중개상들의 이윤 동기를 자극했다(70쪽).

개항기에 ‘머리칼을 머리 꼭대기에 맨’ 조선인과는 전혀 다른 이목구비와 옷차림을 한 서양인들이 미술시장의 새로운 수요층으로 등장했다면, 역관ㆍ의관ㆍ서리ㆍ향리 같은 중인과 상업ㆍ농업으로 부를 취득한 신흥 부유층은 미술시장의 흐름을 좌우할 정도의 핵심 수요층으로 성장했다. …… 중인층의 미감은 사대부의 취향과는 달랐다. ‘문자향 서권기’의 문인화가 아니라 보다 현실적인 그림이 대세였다(93~97쪽).

개항기 국내 수요자를 위한 서화시장에서 주목할 특징은 처음으로 유의미한 1차 시장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서민들이 벽장에 붙여 집안을 장식하거나 길상吉祥의 목적으로 구입하는 중저가 기성품의 경우 점포에서 거래되었다. 이는 18~19세기 초반 광통교 서화사에 한정됐던 그림 가게가 독점적인 시전체제의 붕괴 이후 확대된 것이라는 점에서 본격적인 1차 시장의 형성으로 볼 수 있다. 그림 가게는 서서히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판매 공간의 유형도 서화포, 지전, 서점 등으로 다양해진다(99쪽).

일본인 수장가층의 확대와 조선시대 고서화로의 수장문화 확산은 기존의 한국 명문 양반가 수장가층의 와해를 의미한다. 그들의 집에서 흘러나온 조선시대 고미술품이 일본인 수집가 혹은 중개상에게 유출되는 현상은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했다(125쪽).

1905년의 통감부 정치로 사실상 시작된 일본의 한국 지배는 한국에 고려청자라는 새로운 미술품 시장이 창출되고 이를 취급하는 일본인 주도의 골동상점이 탄생하는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129쪽).

박물관은 수집과 전시를 통해 생산과 수용 사이를 매개한다. 따라서 이왕가박물관과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전시품은 조선 미술품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국인과 일본인 수집가들에게 미적 가치 판단의 준거가 된다(174쪽).

개항기의 대중적 취향에 맞춘 그림의 유행은 한국이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간 뒤에도 지속되었다. 문제는 판매였다. …… 1906년 이후 대거 생겨난 서화관이 화가가 직접 운영하거나 유명화가를 고용하는 형태를 띤 것은 이처럼 판로 개척에 내몰린 화가들의 상황 때문이다. …… 이 시기 생겨난 화숙은 제작과 판매를 겸하는 곳이었다. …… 말하자면 화숙은 전문적인 화랑이 아직 출현하지 않은 시대에 화가들이 제자를 가르치면서 동시에 손님의 주문을 받아 그린 그림을 팔고 전시를 열기도 했던 일종의 사설 아카데미였다(178~179쪽).

백자가 예술품이 된 것은 고려청자와 마찬가지로 예술품의 아우라가 입혀진 덕분이다. 고려청자에 비하면 헐값이었고 문방구나 제수품으로 쓰이던 조선백자가 예술품의 지위를 획득하는 과정에서는 일본인 식자층이 이론적인 지원을 했다(208쪽).

1922년 9월, 서울 남촌南村 소화통 남산 언덕바지에 2층 양옥건물이 들어선다. 바로 일제강점기 최대 고미술품 경매회사인 경성미술구락부京城美術俱樂部다. …… 경성미술구락부는 미술품 경매회사의 대명사 격인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한국판이라고 할 수 있다. …… 경성미술구락부의 출범은 국내 거주 일본인 수요층이 확산됨에 따라 골동상들이 한국도 충분히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을 내린 결과물이다(216~217쪽).

우리나라에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전시 관람문화가 생겨난 것은 언제부터일까. 전시장 벽에 작품들이 죽 걸려 있고, 관람객들이 찬찬히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으면 구매까지 하는 전람회 문화는 1920년대 들어 보편화되기 시작한다. 1920년대는 가히 전람회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229쪽).

우리나라에서 서양화는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거래되기 시작했을까. 서양화는 19세기 말~20세기 초의 개항과 더불어 서구의 문물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한국을 찾은 휴버트 보스 같은 서양인 화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당시 종군화가로 활동했던 일본인 서양화가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들어 고희동이 1915년 일본 유학에서 한국인 1호 서양화가가 된 이래 1920년대 들어서는 한국인 서양화가의 시대가 본격화되었다(247쪽).

자본을 투자함으로써 노동하지 않고도 더 크게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제3의 부의 성취 방법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1930년대 들어 미술시장에도 전염되어, 미술
품을 바라보는 수요자들의 태도에도 서서히 변화가 생겼다. 미술품을 영구히 소장하는 애호품이 아니라, 적절한 시점에 팔아 차익을 실현할 수 있는 투자 상품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288쪽).

자본주의를 속성으로 하는 근대 미술시장의 진전 여부는 재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2차 시장의 진전 정도를 그 척도로 삼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일제의 식민지배가 사실상 시작된 을사늑약을 기점으로 고려청자 거래 욕구가 일거에 분출하듯, 1차 시장인 골동상점과 2차 시장인 고미술품 경매가 일본인의 주도로 동시에 출현하는 독특한 현상을 보였다. …… 경성미술구락부가 창립되어 재판매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한 것이 1920년대 초반이라면, 경성미술구락부에서 미술품의 재판매가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들어서부터다(297쪽).

개항기 이후 구래의 양반가 수장가층은 와해되어갔다. 이들의 소장품은 일본인들의 수중으로 흘러들어갔고 한국인 신규 수장가층은 가시화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변화되기 시작한다. 고미술품 재판매가 활발해지면서 경매 출품이나 고서화 전람회 출품 등을 통해, 혹은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고적도보》의 수장가 명단을 통해 한국인 수장가들이 대외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314쪽).

1930년대 미술시장에서 서양화 전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서양화가들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서양화가 전시될 수 있는 공간도 다양해졌다. 미술 전시 전용의 공공 미술관과 백화점 갤러리가 생겨나고 카페에서 전시가 이뤄지는 등 새로운 전시 장소 유형이 등장한 것이다. 주로 서울의 부유한 중상류층이나 지식인층이 드나들던 이들 공간은 사람들이 아방가르드 장르인 서양화를 일상적으로 접하며 향유할 수 있게 했다(335~336쪽).

‘근대=자본주의’라는 등식을 대입하면 이미 한국의 미술시장은 1930년대 중반 자본주의적 미술시장 제도의 모습을 거의 갖추게 된다. 1930년대의 갤러리와 경매회사, 전람회 등 미술시장 제도의 모습은 21세기인 지금의 갤러리현대, 서울옥션의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1876년 처음 문호를 개방한 이후 해방되기까지 70년이 안 되는 시기에 일어난 변화다. 무엇이 이런 압축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했을까. 거칠게 요약하면, 개항과 일제강점이라는 엄청난 외부 충격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시장 참가자들이 보여준 욕망의 힘 덕분이다(369~370쪽).

■ 도서 ''미술시장의 탄생-광통교 서화사에서 백화점 갤러리까지' 목차

책을 펴내며
서장│120년 전, 한양에서 어쩌다 마주쳤을 서양인

1부 개항기_1876~1904년

01 외교 고문 묄렌도르프와 선교사 앨런도 미술 컬렉터였다
구미 박물관은 왜 묄렌도르프와 앨런에게 수집을 부탁했을까|개항기에 서양인에 의해 재발견된 풍속화 ‘수출화’|일본인보다 먼저 고려자기에 눈뜬 서양인들|개항장에 서화 점포가 들어서다
02 청나라와의 교류_‘기명절지화’에 담긴 중인 부유층의 욕망
상하이의 감각적 미술을 받아들이다|떠오르는 중인 부유층, 미술시장 흐름을 바꾸다
03 민화를 사러 지전에 가다

2부 일제 ‘문화통치’ 이전_1905~1919년

04 이토 히로부미와 데라우치 마사타케, 고려청자 대 조선서화
이토 히로부미의 고려청자 ‘사랑’|데라우치 마사타케와 조선시대 서화
05 이왕가박물관과 일본인 상인 커넥션_그들만의 리그
최초의 일본인 고려청자 골동상 곤도 사고로|일본이 이식한 고미술품 시장|이왕가박물관과 ‘미술 정치’|한국인 고려자기 골동상 이창호와 쏟아진 한국인 골동상|이왕가박물관과 일본인 골동상의 커넥션|조선서화 시장까지 진출한 일본인 골동상
06 조선총독부박물관의 ‘동양주의’ 선전_중국 불상 구입
07 화랑의 전신 ‘서화관’과 한국판 사설 아카데미 ‘화숙’
화랑의 맹아, 서화관|사설 아카데미, 화숙

3부 ‘문화통치’ 시대_1920년대

08 고려청자의 대체재, 조선백자의 ‘발견’
09 ‘경성의 크리스티’ 경성미술구락부

설립 배경|운영 방식
10 전람회 시대의 개막
봇물 터진 각종 민ㆍ관 전람회|과도기적 성격|외국인 미술품 유통 공간
11 서양화 전시회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1920~1940년대: 서양화 가격의 변화|동양화와 가격 추이 비교|누가 서양화를 사들였을까|서양화의 인기가 동양화를 누르다|미술품, 가격으로 거래되다

4부 모던의 시대_1930년대~해방 이전

12 미술품, 투자 대상이 되다
13 무르익는 재판매시장
경성미술구락부|조선미술관
14 한국인, 마침내 고려청자의 주인이 되다
한국인 수장가들의 등장|한국인 골동상점의 시대가 열리다
15 근대적 화랑 ‘백화점 갤러리’의 등장
젊은 서양화가, 미술시장의 주역으로 부상하다|서양화 전시 공간의 등장

글을 마치며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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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 도서출판 푸른역사 -

우리나라 근대적 형태의 미술시장, 태동에서 완성까지

‘시장’은 ‘여러 가지 상품을 사고파는 일정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상품으로서의 재화와 서비스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추상적인 영역’을 지칭하기도 한다. 미술시장은 미술품이라는 구체적인 재화, 미술품 제작이라는 구체적인 서비스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영역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의미의 미술시장이 출현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미술시장의 탄생-광통교 서화사에서 백화점 갤러리까지'는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형태의 미술시장이 언제 태동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그 답을 찾는 책이다. 미술시장 및 제도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면서 비평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손영옥(국민일보 미술ㆍ문화재전문기자)은 한국 미술시장이 전근대적 성격을 벗어나 근대적인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으로 이행한 시점을 개항기라 보고 한국 근대 미술시장 형성사의 첫머리를 개항기에서 시작한다.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고미술품으로 인정받는 ‘미술로서의 고려청자의 발견’이 이뤄진 것도 개항기이고, 갤러리의 전신인 ‘지전’과 ‘서화관’ 등이 모습을 드러낸 것도 개항기라는 것이다.
개항기에서 첫발을 뗀 저자는 이후 여정을 일제 문화통치 이전(1905~1919), ‘문화통치’ 시대(1920년대), 모던의 시대(1930년대~해방 이전)로 옮기면서 한국 미술시장 형성사의 세세한 풍경을 탐색한다. 이 여정에는 거래가 양성화된 후 최고의 미술상품으로 자리잡게 된 고려자기, 일본인들끼리 사고파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고려자기 시장, 천정부지로 치솟은 고려자기를 소유할 수 없던 일본인 지식인층에 의해 고려자기의 대체재로서 ‘발견’된 조선백자, 컬렉터로서 이름을 날리는 한국인 자산가층의 등장, 갤러리ㆍ경매회사ㆍ전람회 등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한 자본주의적 미술시장 제도 등이 주요 풍경으로 등장한다. 저자의 발자취를 따라 상투 튼 남정네들이 외국인과 마주치는 게 낯설지 않았을 개항기의 한양 종로길로 떠나보자.

개항기(1876~1904), 한국 미술시장 태동하다

미술시장의 수요자로 참여한 서양인
개항기는 고종이 직접 통치를 한 지 수년 뒤인 1876년(고종 13) 일본과 강화도수호조약을 맺은 것을 기화로 구미 여러 나라와 통상조약을 체결하며 봉건적 사회질서를 타파하고 근대적인 사회를 지향해가던 시기를 말한다.
대외 개방은 미술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양인들이 외교, 선교, 사업 등 여러 목적으로 들어왔고, 이들은 미술시장에 새로운 수요자로 참여했다. 수요는 공급을 창출한다. 화가들은 서양인의 취향과 목적에 맞춰 ‘수출화’라는 풍속화를 개발해 만들어 팔았다. 중개상들은 서양인들의 동양 도자기 애호 취미를 눈치 채고 무덤에서 꺼내진 옛 도자기와 토기들을 몰래 거래하기 시작했다. 또한 서양인들은 민속품을 수집해 고국의 민족학박물관에 제공하기도 했다.

서양인, 한국 미술시장에 역동성을 부여하다
청나라와 교역이 늘어남에 따라 상하이를 중심으로 번성한 해상화파의 감각적이고 실용적인 화풍이 한국으로 건너와 유행하게 된다. 고종의 근대화 의지에 따라 신식학교가 생겨나고 철도가 부설되고 전차가 놓이고 신분제가 폐지된 새로운 시대, 이렇게 달라진 세상에서 청나라의 감각적이고 세련된 화풍은 크게 사랑받았다.
한반도 지배권을 둘러싼 열강의 다툼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면서 개항기도 막을 내린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을사늑약(1905)을 맺어 한국의 외교권을 뺏은 일본은 서양인들에게 출국을 강요한다. 개항기는 30년이 채 안 된다. 그 시공간을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활보했던 서양인들은 공과를 떠나 한국 미술시장에 역동성을 부여했다.

일제 ‘문화통치’ 이전(1905~1919), 일본인들이 한국 미술시장을 장악하다

한반도를 장악한 일본인, 고려자기 거래를 시작하다
한반도 지배권을 둘러싼 열강 간 치열한 다툼의 최후 승자는 일본이었다. 그 변곡점은 러일전쟁의 승리였다. 일본은 1904년에 시작한 이 전쟁에서 승리하자 1905년 7월에 미국과 밀약을 맺고, 8월에는 영일동맹을 수정해 한국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마침내 그해 11월에는 고종황제의 허가 없이 체결에 동조하는 5명의 대신과 을사늑약을 맺어 외교권을 빼앗고 간접통치기구인 통감부를 통해 한국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러일전쟁 승리 후 서울은 완전히 일본의 세상이 된다. 자국에서 기회를 잡지 못한 일본인들이 물밀듯이 조선으로 밀려들었다. 일본의 무법천지가 된 세상에서 일본인 상인들이 재빨리 움직였다. 개성에서 도굴된 고려자기를 거래하기 위해 경매와 골동상점이 서울(경성)에서 차례로 문을 연 시점이 1906년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시사적이다.

박물관, 일본인 골동상들의 한국 미술시장 장악의 발판이 되다
공식적인 식민지 전락은 1910년의 경술국치이지만 이처럼 미술시장에서 체감된 일본의 지배는 5년 앞섰다. 한국 근대 미술시장사를 서술하는 이 책이 문화통치 이전의 시기 구분을 1905∼1919년으로 설정한 이유다.
일제의 제국주의 기획에 따라 개관한 이왕가박물관(1908)과 조선총독부박물관(1915)의 수집 행위는 일본인 골동상들이 발빠르게 미술시장을 장악하는 발판이 되었다. 일본인 골동상들은 ‘골동 신상품’인 고려자기뿐 아니라 전통적으로 애호되던 조선시대 고서화 분야까지 진출했다. 나라가 망하자 양반가에서 흘러나온 고서화는 그렇게 일본인 중개상을 거쳐 일본인 상류층 호사가의 손으로 넘어갔다. 식민지 조선의 권력과 부를 거머쥔 일본인들은 미술시장의 핵심 수요자로 부상했다. 바야흐로 일본인들이 미술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세상이 됐다.

‘문화통치’ 시대(1920년대), 근대적 미술시장 본격화하다

전람회, 보편적인 미술 관람 형식으로 자리잡다
1919년 3ㆍ1만세운동은 일제의 한반도 정책이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뀌는 분수령이 되었다. 문화통치의 산물로 1922년부터 조선총독부가 주최하여 시작된 조선미술전람회는 1920년대를 가히 ‘전람회의 시대’로 특징짓는 기폭제가 되었다. 앞서 민간에서도 최대 미술단체인 서화협회가 주최한 서화협회전람회가 1921년부터 시작했는데, 여기에 관전인 조선미술전람회가 가세하며 전람회는 보편적인 미술 관람 형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특히 신진작가 등용문인 조선미술전람회는 관전이 갖는 권위로 인해 이른바 ‘선전鮮展 스타일’을 낳으며 일제가 피지배 민족을 순응시키는 통치 기제로 활용되었다. 개인전도 활발하게 열렸는데, 일본 유학파 2세대에 의해 서양화 개인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도 이 시기다.

조선백자의 미적 가치 ‘발견’
일본의 통치가 10년을 넘기면서 미술 수요층에서도 슬슬 손바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초기 고려자기 수집가층이 사망하거나 본국으로 귀국하면서 물러나자 신규 수장가층이 시장에 진입했다. 이에 따라 고미술시장의 파이가 커졌고 이를 겨냥해 골동상들이 연합해 만든 경성미술구락부가 생겼다. 경성미술구락부는 주식회사 형태를 취하고 주기적으로 경매를 하면서 경매 도록과 진위 감정서까지 발행하는 근대적 시스템을 갖췄다.
경성미술구락부 운영 초기 조선백자는 수요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 가격이 너무 저렴했다. 조선백자의 미적 가치를 ‘발견’한 주역은 야나기 무네요시와 아사카와 노리타카, 아사카와 다쿠미 등 일본 지식인이었다. 이들은 조선백자에 미술의 아우라를 입힘으로써 1930년대 조선백자 붐을 여는 단초를 제공했다.

모던의 시대(1930년대~해방 이전), 자본주의 영향이 확대되다

백화점 갤러리, 본격 상업 화랑의 출현
1930년대는 자본주의가 관통한 시대였다. 식민지 조선의 부가 집결된 경성의 경우 건축물이 만들어내는 도시의 스카이라인뿐만 아니라 도시 속을 활보하는 사람들의 심리에서도 자본주의의 영향은 확연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백화점의 증축과 확장은 이런 거대 자본의 한국 진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서울에는 미쓰코시, 미나카이, 조지아, 화신 등 서양 건축의 외관을 한 여러 백화점이 도시의 풍경을 바꾸었다. 백화점은 엘리베이터와 옥상정원 등 첨단 시설을 갖춰두고 상류층 고객을 겨냥해 갤러리도 만들었다.
백화점 갤러리는 전시 전용 공간의 탄생이라는 점에서 혁신적이었다. 전시는 상설화되고 기획전까지 열렸다. 지금의 서울 삼청동에 있는 갤러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본격 상업 화랑이 출현한 것이다.

미술품, 투자의 대상이 되다
이 시기 미술 수요자들에게서 주목되는 것은 자본주의적 태도다. 금광 개발, 주식거래 시대의 개막과 함께 미술품 역시 적절한 시점에 팔아 차익을 실현할 수 있는 투자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전근대 시대에는 없던 이런 투자심리가 기저에 흐르며 경성미술구락부 등 미술시장은 번창했다.
한국인 수장가와 한국인 중개상이 미술시장의 전면에 등장한 것도 1930년대다. 한국인 수장가층이 부상하는 과정에는 고려자기와 조선백자, 서화 등이 지켜야 할 민족정신의 기호로 상징화되어 수집이 장려된 시대적 분위기도 작용했지만, 근저에는 경제적 욕구가 자리잡고 있었다. 1937년부터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전시경제체제로 들어갔지만 미술시장은 해방 이전까지 상승세를 이어갔다. 미술은 상류층의 문화였던 것이다.

■ 저자 손영옥 소개

미술 시장 및 제도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고 연구하며 비평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경북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석사학위MIPP를, 명지대 예술품감정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에서 미술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논문으로 '한국 근대 미술시장 형성사 연구'를 썼다. 국민일보에서 문화부장을 거쳐 현재 미술 문화재전문기자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 '단색화 새로 읽기: 포스트식민주의와 글로벌리즘 사이', '이왕가박물관 도자기 수집 목록에 대한 고찰', '일제 강점기 서양화 거래에 관한 고찰',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소장 버나도Bernadou.알렌Allen.주이Jouy 코리안 컬렉션에 대한 고찰', '개항기, 서양인이 미술시장에 끼친 영향 연구' 등을 썼다.

저서는'아무래도 그림을 사야겠습니다', '한 폭의 한국사', '조선의 그림 수집가들', '독일 리포트(국민일보 특별취재팀 공저)' 등이 있다. 2020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미술평론(필명 손정)으로 당선됐다.


(자료: 교보문고, 알라딘)

1876년 개항 이후 70년간 동시대 미술시장에 출렁이며 흘러 넘친 건 단지 미술품, 미술시장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욕망”이었다고 말하는 저자 손영옥의 미술 신간 도서 '미술시장의 탄생-광통교 서화사에서 백화점 갤러리까지'는 이번 주말부터 출고예정이다.

김창만 기자 chang@asiaart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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