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4 13:41  |  아트&아티스트

동시대 한국 판화의 역사와 가치를 재평가하는 '판화, 판화, 판화'展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14일부터...

'판화, 판화, 판화'展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 2020. 5. 14 - 8. 16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3년 만에 개최하는 대규모 판화 주제전
국내 작가들의 판화 아티스트 북 12점 미술관 최초 전시
김상구, 김형대, 오윤, 황규백 등 한국 현대판화 대표 아피스트 60여 명의 판화, 아티스트 북, 드로잉, 설치, 조각 등 총 100여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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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판화, 판화, 판화'전 전시 전경 / 사진=MMCA
[아시아아츠 = 김창만 기자]
판화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판화는 판(板)재를 기반으로 하여 여러 장의 이미지를 찍어내는 방식으로 제작하는 예술의 한 형태이다.

오늘날 사용되는 판화의 용어는, 프린트(Print) 그래픽 아트(Graphic Art)의 의미로써 이것은 그대로 판에 찍어 낸 그림을 지칭한다. 회화나 조각은 작가가 작품에 직접적인 행위를 통해서 제작되는 반면에 판화는 판에 의한 간접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판화는 원판을 여러 장 찍어 낼 수 있다는 복수기능을 가진다. 특히 판화는 다량으로 생산해 낼 수 있다는 복수 기능으로 편리한 이동과 대중에게 보급화를 가중시켰으며 작품을 소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

한국적 판화가 빛을 잃으려하는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이 판화들을 재소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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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판화, 판화, 판화'전 전시 전경 / 사진=MMCA

국립현대미술관은 대규모 한국 판화 기획전'판화, 판화, 판화(Prints, Printmaking, Graphic Art)'를 5월 14일부터 8월 1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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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판화, 판화, 판화'전 전시 전경 / 사진=MMCA

이번 전시는 미술 장르의 확장 및 장르 간 균형 강화의 일환으로 마련되었으며, 국내 현대 판화를 대표하는 작가 60여 명의 작품 100여 점을 통해 ‘판화’라는 특수한 장르이자 매체, 개념이자 상황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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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판화, 판화, 판화'전 전시 전경 / 사진=MMCA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재발견이 필요한 장르 중 하나인 판화는 그동안 오랜 역사를 지니며 한국의 독자적인 특징을 지닌 장르로 평가받았으며, 196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판법의 발전과 함께 작가들에게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매체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2000년대에 이르러 미디어아트, 융복합 예술 등 새로운 동시대 미술의 홍수 속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동시대 한국미술에서 소외되려하는 우리만의 독특하고 정체성을 지닌 미술 장르를 최근 다시 재소환해 소외 장르의 관심을 끌어올리고 있다.

한국의 근대 판화 역사는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치성을 배제한 향토성의 내용을 담은 미술양식이 자연스럽게 영입되고 순수주의 지상주의 미술이 태동하게 된다.

오늘날 한국현대판화가 처음으로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은 근대 판화의 움직임과 근대미술이 있어 지금의 판화를 만들게 된 것이다. 판화는 판화만이 갖는 특징인 대량 생산을 통한 가격의 저렴화 되었고 이것은 쉽게 대중화 될 수 있었다. 또한 외국에까지 이미 널리 보급되어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판화 보급이 요원한 실정이다. 한국의 독특하고 상당한 수준의 전통 판화는 동시대가 변해가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쇠퇴해 갔고 서양에서 도입된 판화가 유입되면서 현대 한국 판화가 새롭게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것 역시 시대적인 반영으로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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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판화, 판화, 판화'전 전시 전경 / 사진=MMCA

이번에 재소환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 판화 전시 '판화, 판화, 판화'展는 ‘책방’, ‘거리’, ‘작업실’, ‘플랫폼’ 4가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주변에서 익숙하게 접해왔던 장소의 명칭과 특징을 빌려와 한국 판화가 존재하고 앞으로 나아갈 자리들을 장소의 개념으로 조명한다.

‘책방’에서는 판화로 제작된 아티스트 북을 비롯하여 인쇄문화와 판화의 관계를 나타낸 작품들이 전시된다. ‘거리’에서는 사회적인 이슈와 판화의 만남을 통해 예술이 일종의 미디어로 기능했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작업실’에서는 타 장르와 구분되는 판화의 고유한 특징인 다양한 판법들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플랫폼’에서는 동시대 미술의 장르 중 하나로서 확장된 판화의 면모를 만날 수 있다.

한편, ‘판화’라는 단어가 거듭 반복되는 이번 전시명은 복수성을 특징으로 하는 판화의 특징을 담아내고자 붙여진 것이다. 그리고 타 장르에 비해 낯설면서도 누구나 한 번쯤 접해본 판화, 여전히 자기만의 고유한 매력을 지닌 판화, 작가들의 주제의식과 기술 속에서 계속 이어질 판화에 대해 강조하여 살펴보려는 전시의 의도를 반영하였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판화, 판화, 판화'전을 통해 한국 판화가 지닌 가치를 재확인하고, 소외 장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가능성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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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판화, 판화, 판화'전 전시 포스터 / 사진=MMCA

■ 한국 판화 기획전 '판화, 판화, 판화(Prints, Printmaking, Graphic Art)'

참여 아티스트

강동주, 강승희, 강애란, 강은영, 강행복, 강환섭, 곽남신, 구자현, 김구림, 김란희, 김봉준, 김봉태, 김상구

김상유, 김승연, 김억, 김영훈, 김인영, 김준권, 김형대, 김혜미, 김홍식, 나윤, 남궁산, 남천우, 류연복, 문승근

민경아, 박경훈, 배남경, 변상환, 서승원, 손기환, 송번수, 아티스트프루프, 안정민, 오민예, 오윤, 오이량

유강열, 윤동천, 윤명로, 윤세희, 윤여걸, 이상국, 이영애, 이윤엽, 이은진, 이인철, 이항성, 임영길, 정명국

정원철, 정헌조, 정희경, 정희우, 하동철, 홍선웅, 홍성담, 황규백, 황재형 등 총 61명

전시 주제별 주요 출품작 소개

1.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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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판화, 판화, 판화'전 전시 전경 / 사진=MMCA

판화는 그 태동에서부터 판에 새기고 종이에 찍어내는 매체의 특징으로 인하여 인쇄문화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그리고 이것은 판화를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비교적 가까운 예술로 만들어 주었다.

‘책방’에서는 ‘책’이라는 형식을 작가의 작품으로 재해석한 판화 아티스트 북과 개념미술, 디지털 아트까지 책과 판화의 개념을 확장시킨 작품들, 판화 일러스트북과 그 원화들을 다채롭게 소개함으로써 판화와 인쇄문화의 접점을 살펴본다.

참여 아티스트 : 강애란, 강행복, 김란희, 김상구, 김억, 김혜미, 김홍식, 남궁산, 류연복, 문승근, 배남경, 아티스트 프루프, 안정민, 오민예, 윤세희, 이윤엽, 이은진

김상구는 한국 추상 목판화를 대표하는 원로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50여 년 동안 30회가 넘는 작품 전시 활동을 이어가며 목판화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제작해 왔다. 1,500여 점의 대량의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하며 한국 현대 목판화의 기틀을 마련한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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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구, 'No. 895(파란새)', 2005, 30x180cm, 목판화, 8/20, 작가소장 (위) / 'No. 820(산죽)', 2001, 26x163cm, 목판화, 10/20, 작가소장 (아래) / 사진=Courtesy of artist, MMCA

'No. 895(파란새)(2005)'와 'No. 820(산죽)(2001)'은 가로로 길게 만들어진 판화 작품이자 표지와 내지로 이루어진 판화 아티스트 북이다. 한지 위에 유성 잉크와 수성 잉크를 함께 사용하여 목판화의 다양한 표현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 속 푸른빛을 지닌 새와 녹색의 대나무 이미지는 김상구가 즐겨 사용하는 소재들이다. 작가는 형태가 모호한 대상이 아닌 구체적이고 친근한 생물들을 작품에 끌어 들여와 기호처럼 단순화시켜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 작품들은 이러한 김상구의 작품이 지닌 형식적 특징과 대표적인 소재, 서정성과 대중성의 조화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No. 895(파란새)'와 'No. 820(산죽)'은 같은 작품의 다른 에디션이 미국 버밍험 미술관(The Birmingham Museum of Art)에 소장되어 있다.

강행복은 광주를 중심으로 중국, 일본, 미국 등 국내외로 활발히 활동하는 목판화 작가이다. 그의 작품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의 꽃과 나무, 구름, 길 등의 형태가 그래픽 디자인의 패턴처럼 빼곡히 새겨져 있다. 강행복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일상적 소재를 단순화하여 재해석하고 수행과 명상의 과정으로 찍어내는 일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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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행복, '화엄', 2019, 목판화, 86x122cm, 작가소장 (위) / '화엄(아티스트 북)', 2019, 21x15x18cm, 1/2, 작가소장 (아래) / 사진=Courtesy of artist, MMCA

'화엄(2019)'은 20권의 아티스트 북을 이어 붙여 설치 미술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동일하게 찍어낸 판화들을 모두 하나의 책으로 제본하여 아티스트 북의 형식으로 제작한 두 가지 형식을 지니고 있다. 작가는 판화의 과정을 마친 뒤 산사에 들어가 바느질로 제본 작업을 시작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파편으로 흩어져있던 수많은 이미지와 형태, 기억 등이 하나로 모이고 엮이는 의미가 덧입혀진다고 작가는 말한다.

작품의 제목인 '화엄'은 이처럼 작은 것들이 엮이고 묶여 더 큰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그의 판화 아티스트 북은 읽고 해석하여 지식을 습득하는 책이 아닌, 자신의 주제를 표현하고 확장시키는 작업의 중요한 매체가 된다.

2.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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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판화, 판화, 판화'전 전시 전경 / 사진=MMCA

판화는 복제와 배포가 가능하다는 점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는 특징 등으로 작가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확산시키는 일종의 미디어로 기능한다. ‘거리’에서는 1980년대 민중 목판화를 비롯하여 현실의 사회적인 이슈를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판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현실의 잔혹한 억압과 부조리함부터 일상의 친숙함, 소박함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풍경들을 담아낸 판화는 작품이 지닌 강렬한 표현과 맞물려 더욱 큰 파급력을 지니게 된다.

참여 아티스트 : 강환섭, 김봉준, 김상구, 김상유, 김억, 김준권, 나윤, 류연복, 박경훈, 손기환, 송번수, 오윤, 윤여걸, 이상국, 이인철, 정원철, 홍선웅, 홍성담, 황재형

오윤은 짧은 생을 작가로 살아가며 민중을 향하고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예술을 지향하였다. 판화는 이러한 오윤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매체로서, 매체가 본래 가지고 있었던 복수성, 인쇄와 결합하는 성질, 프린트를 통해 나오는 강렬한 표현과 오윤의 칼을 쓰는 자기만의 기법, 화면 구성 등이 맞물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쳐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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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 '도깨비', 1985, 리놀륨 판화, 91x218cm, 개인소장 / 사진=Courtesy of artist, MMCA

‘도깨비’는 오윤이 말년에 관심을 가진 소재 중 하나인데 이를 통해 일부 학자들은 그가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세계가 신명과 주술이 지배하는 영역은 아니었을까 추측하기도 한다. 고무판으로 제작한 대작 '도깨비(1985)'는 머리에 뿔이 달린 도깨비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다.

통상적으로 도깨비는 농민을 못살게 구는 존재, 탐욕이나 비리의 인물, 사회악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의 민간 설화의 도깨비는 친숙하고 어리석은 존재이다. 오윤은 사회를 비판하거나 현실을 드러낼 때에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다 도깨비와 같은 상상의 존재로 은유하는 상징적 방식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오윤 작품의 면모는 웃음과 해학을 통해 비판하려는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둠으로써 두려운 상대에 쉽게 굴복하지 않고 직면할 수 있는 긍정적 반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홍선웅은 민중 목판화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작품 속에서 우리의 전통을 계승하거나 다시 해석한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은 주로 조선시대 민화나 팔만대장경 등 전통회화와 판화의 영향을 받았고, 작가 자신이 직접 문화유적을 방문하여 문헌을 연구하는 등 작업과 판화 연구를 병행하며 민중 목판화의 새로운 전개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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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웅, '제주 4.3 진혼가', 2018, 목판화, 62x182cm, 작가소장 / 사진=Courtesy of artist, MMCA

'제주 4.3 진혼가(2018)'는 홍선웅이 제주 4.3 사건을 주제로 제작한 단색목판화이다. 화면의 중앙 하단에는 1947년 제주 4.3 사건 당시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제주도민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당시 항만으로 모여든 군함들, 경찰과 군인들의 행렬 모습, 전투 장면, 피난처로 이동하고 있는 제주도민들의 모습을 모두 하나의 화면에 담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는 무덤에 망자의 넋을 달래준다는 의미를 지닌 꼭두인형이 등장하여 사건을 지켜보는 증인의 역할과 바다에서 살풀이 춤을 추며 무고하게 희생된 영혼을 달래주는 역할로 등장하여 작가의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3.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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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판화, 판화, 판화'전 전시 전경 / 사진=MMCA

판화는 작가에게 예술성과 기술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매체이다. 석판화, 동판화, 목판화, 실크스크린 등 판법에 따라 각각 다른 기술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처럼 판을 제작하여 잉크를 묻히고, 종이에 찍어내는 섬세한 과정을 통해 판화는 타 장르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게 된다. 판화를 주요 매체로 다루는 작가들은 ‘작업실’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표현하고 확장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판화의 기법을 연구하고 발전시켰다.

참여 아티스트 : 강승희, 구자현, 김봉태, 김상구, 김승연, 김준권, 김형대, 남천우, 민경아, 서승원, 송번수, 안정민, 오이량, 유강열, 윤명로, 이영애, 이항성, 임영길, 정헌조, 정희경, 황규백

이영애는 50여 년 간 꾸준히 동판화 작업을 이어온 대표적인 한국 여성 판화가이다. 그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애쿼틴트 기법을 중심으로 다수의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여성 판화가들로 이루어진 서울 프린트 클럽의 핵심적인 구성원으로 활동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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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 '내 날개 아래 바람 1', 1995, 애쿼틴트, 120.5x171cm,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 / 사진=Courtesy of artist, MMCA

'내 날개 아래 바람 1(1995)'은 이영애의 애쿼틴트 기법의 특징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판형이 정해져있는 판화에서 보기 드문 거대한 화면을 지니고 있으며, 가늘고 섬세한 선으로 작가가 주로 다루는 자연의 소재인 낙엽, 나뭇잎 등을 표현하였다.

애쿼틴트는 동판화의 일종으로 동판을 부식시켜 요철을 만드는 에칭 기법 중 하나이다. 작가에게 고난도의 기술과 노동을 요구하기에 애쿼틴트를 주요 매체로 국내에서 작업하는 작가는 많지 않다.

이영애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애쿼틴트를 능숙하게 사용하여 세필로 그린 듯 치밀한 묘사를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보는 사람의 눈앞에 익숙했던 자연물을 크게 확대하여 제시함으로써 이미 죽고 말라버린 생명을 반대로 생생하고 생경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든다.

임영길은 판화를 주요 매체로 다루는 작가이자 대학에서 판화를 가르치는 교육자이다. 그는 판화라는 기본 형식에 충실하면서도 다양한 판화의 현대적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가 중 한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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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길, '기호풍경-신의주', 2017, 실크스크린, 1/29, 53.5x76.5cm, 작가소장 / 사진=Courtesy of artist, MMCA

그의 '기호풍경-신의주(2017)'는 시리즈로 제작된 '한국의 기호풍경' 중 신의주를 나타낸 것이다. '한국의 기호풍경'은 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16개 지역을 기호 혹은 상징을 통해 재현한 작품이며, 적게는 10판에서 많게는 19판까지 많은 색을 입혀 찍어낸 다색 실크스크린 판화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이 살아가며 바라본 한반도라는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산과 강부터 도로와 건물, 하늘의 별자리와 지역과 관련된 조류까지 각 지역의 특징을 담아낸 기호와 상징으로 표현하였다.

이와 같이 일종의 지도이자 회화인 '기호풍경'은 백두산 삼지연, 풍계리, 신의주부터 서울, 인천, 부산, 제주 등을 물리적, 정치적 구분 없이 데이터화 시키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역사적 담론과 쟁점, 자연의 상징들이 공존하고 있으며 보는 사람에게 가보지 못한 풍경에 대한 상상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4.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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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판화, 판화, 판화'전 전시 전경 / 사진=MMCA

최전선의 동시대 미술 안에서 판화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을까? 마주치고, 연결하고 펼쳐지는 장소인 ‘플랫폼’에서는 판화로부터 출발하여 드로잉, 설치미술, 조각에 이르기까지 매체의 확장을 보여주는 작품들과 타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판화의 특징을 간직한 작품, 판화 자체를 실험의 장으로 삼고 있는 작품 등 판화적인 감수성과 가능성을 새롭게 해석하고 제시하는 한국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참여 아티스트 : 강동주, 강은영, 곽남신, 김구림, 김영훈, 김인영, 김혜미, 변상환, 윤동천, 정명국, 정희우, 하동철

강동주는 종이와 연필, 먹지 등을 주로 사용하여 자신이 담아내고자 하는 대상과 그것을 향하는 시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대상의 미묘한 변화에 주목한다. 그에게 판을 긁어내 종이에 찍어내거나, 종이를 눌러 대상을 떠내는 판화의 과정들은 자신의 드로잉에 시간과 움직임을 담아내려는 작업의 일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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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주, '커튼', 2018, 목판인쇄, 유성잉크, 사포, 각 79x54.5x(61)cm, 작가소장 / 사진=Courtesy of artist, MMCA


강동주의 '커튼(2018)'은 4개월 동안 작가가 머물던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밤의 풍경을 기록한 61장의 판화 작품이다. 같은 장소, 밤이라는 동일한 시간대, 같은 자리에서 바라본 풍경이지만 매일 미묘하게 다른 얼굴을 만들어내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판화의 느린 호흡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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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주, '1시간 58분 3초의 땅' (2015.1), 2015, 연필, 23.5x16.5x(37)cm, 작가소장 / 사진=Courtesy of artist, MMCA

한편 작가가 도시를 걷다 멈춰선 순간의 지면을 기록한 '1시간 58분 3초의 땅(2015.1)(2015)' 또한 이동과 기록, 시간과 기억을 서정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땅바닥 드로잉' 시리즈 중 하나인 이 드로잉은 작가가 2015년 1월에 1시간 58분 3초 동안 멈춰선 서른여덟 번의 순간과 그 땅의 질감을 기록한 것이다. 전시실에는 그가 담아온 다양한 순간들이 다시 벽면에, 바닥에 펼쳐지며 새로운 시간의 장면을 만들어낼 것이다.

김인영은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시간의 중첩이 물리적으로 드러난 풍경과 그 사이에서 나타난 조형의 변화에 주목한다. 작가는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 스크린을 통해 보이는 납작한 이미지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지닐 수 있는 물성의 가능성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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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영, '매끄러운 막', 2019, 아크릴, 수전사, 스캐노그라피, 210x105cm, 작가소장 / 사진=Courtesy of artist, MMCA


그의 대표작인 '매끄러운 막(2019)'은 투명한 아크릴판 위에 판화 기법 중 하나인 수전사와 스캐노그라피(scanography)를 사용하여 제작한 것이다. 작가는 특히 이 두 판화 기법을 통해 디지털의 계산된 체계에 미세한 오류들을 개입시켰다.

그는 직접 그린 원본의 이미지를 스캔하여 변형과 왜곡을 통한 변주를 만들고, 다시 하나의 이미지를 선택하여 수전사 기법으로(물과 특수 용액의 화학작용으로 지지체에 이미지를 전사하는 방법) 입체 작품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의도적으로 탄생한 왜곡들은 디지털과 수공적 기술의 역전된 상황과 함께 이미지 자체가 아닌 매체와 물성을 감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김인영의 작품을 통해 동시대 신진 작가의 작품 속에 판화의 기술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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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판화, 판화, 판화'전 전시 전경 / 사진=MMCA

판화는 다수, 복수성이 지닌 의미에서 복제와 같다는 인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1960년 미국판화위원회(The Print Council of America)인 미술가, 판화가 내린 판화에 대한 규정을 명확히 구분했다.

"어떠한 인쇄미술이라 할지라도 첫째, 미술가가 인쇄미술작품을 창작할 목적을 기반으로 독자적으로 판, 돌, 나무, 기타 물질에 이미지를 구성했을 때이며, 둘째, 판화 인쇄 작업은 오리지널 재료로 작가 스스로 또는 작가의 감독 밑에서 다루어질 때이며 셋째, 완성된 작품에는 반드시 작가가 책임 있는 서명을 했을 때만 오리지널 판화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판화의 쓰임과 기능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하였으며 판화가 창작물로써 보호되며 작품성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의 판화예술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고 있는 '판화, 판화, 판화'展에서 한국 판화에 관심을 기우려 보자. 전시는 14일부터 8월 16일까지 마스크 착용은 필수.

한편, 5월 6일부터 온라인 사전예약제를 통한 거리두기 관람을 진행 중인 국립현대미술관은 화~일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김창만 기자 chang@asiaart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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