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6 07:20  |  아트&아티스트

세상과 소통하는 나만의 방법... 아티스트 노은주·무진형제·이윤이 그룹전 '눌변가'

그룹전 '눌변가(Fluent Stutter.)
낙원악기상가 4층 전시공간 d/p | 5. 19 - 6. 20
달변이 아니어도 묵직하게 소통하는 방식 조명한 영상, 회화, 설치 작품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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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노은주·무진형제·이윤이 그룹전 '눌변가' 포스터 / 사진=d/p
[아시아아츠 = 김창만 기자]
1979년부터 서울올림픽이 있던 1988년까지 이땅에 태어난 아티스트 5인이 각자의 방식과 매체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전시하는 '눌변가'는 별들이 흩어지고 모이는 ' d/p, 이산낙원(discrete paradise)’의 약자로 다양한 개인들이 모여 그들 각자의 낙원, ‘우리들의 낙원’을 만들어내는 낙원악기상가 전시공간 d/p의 지향점과 같아 보인다.

도심 속 복합문화공간 낙원악기상가 전시공간 d/p에서 아티스트 노은주, 무진형제(정무진, 정효영, 정영돈), 이윤이 5인의 그룹전 '눌변가(Fluent Stutter.)展을 지난 19일부터 6월 20일까지 열고있다.

낙원악기상가 전시공간 d/p는 별들이 흩어지고 모이는 ‘이산낙원(discrete paradise)’의 약자로 다양한 개인들이 모여 그들 각자의 낙원, ‘우리들의 낙원’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d/p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 ‘눌변가’ 는 국내 1세대 비영리 미술 전시공간 서울 구기동 ‘아트 스페이스 풀’과 처음 시도하는 기획 교류 프로젝트로 아트 스페이스 풀에서 활동 중인 신지이 큐레이터가 기획했고 2020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신진작가 부문 선정작이다.

‘눌변가’는 더듬거리는 서툰 말솜씨를 뜻하는 ‘눌변’에 ‘가’를 붙여 눌변을 능숙하게 하는 사람(家)과 눌변의 노래(歌)라는 의미를 함께 담았다. 달변은 아니지만 묵묵히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영상, 회화, 설치 작품으로 조명하는 전시다. 이번 전시에서는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개인’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작가 3팀이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작품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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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형제, 여름으로 가는 문, 2018, 2채널 영상, 4분 30초, 설치, 가변크기 / 사진=Courtesy of artist, d/p

미디어 아트 그룹 ‘무진형제(정무진, 정효영, 정영돈)’는 영상 설치 작품 ‘여름으로 가는 문’을 선보인다. 지독하게 더운 날씨에 줄넘기를 계속하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 외형은 어른과 별 차이가 없지만 세상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모르는 청소년기를 조명한다. 언어가 배제된 채 행위를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영상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시각, 청각, 후각적으로 극대화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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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주, Dropping, 2020, 캔버스에 유화, 193.9x112.1cm / 사진=Courtesy of artist, 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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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주, 야경, 2015, 캔버스에 유화, 193.9x130.3cm / 사진=Courtesy of artist, d/p

노은주 작가는 찰나의 순간을 드로잉으로 기록한 후 다시 조각으로 만들고 캔버스 위에 옮기는 방식으로 작업하며 이름 없는 대상에 서사를 부여해왔다. 이번에 전시되는 회화 작품 ‘야경’, ‘녹는형태연습’ 등은 말솜씨가 유창하지는 않지만 단어 하나도 오래 고르고 묵직하게 내뱉는 눌변가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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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이, 메아리 Hearts Echo Like Mercury, 2016,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20분 27 / 사진=Courtesy of artist, 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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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이, 메아리 Hearts Echo Like Mercury, 2016,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20분 27 / 사진=Courtesy of artist, d/p

이윤이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친구와 떠난 여행을 소재로 한 영상 작품 ‘메아리’를 전시한다. 등장 인문들은 서로의 말을 반복하거나 조금씩 변주하고, 노래로 전달하면서 메아리의 미세한 떨림을 표현한다. 작품은 메아리처럼 시간차를 두고 다시 돌아와 가슴에 남는 단어의 조각들을 다룬다.


'눌변가' / Seoul Art Friend Instagram

■ 그룹전 '눌변가(Fluent Stutter.)

전시 서문

혼잣말을 더듬는 이는 드물다. 더듬어 말을 뱉는다는 것은 말이 ‘밖’으로 나가는 과정에 긴장된 공백이 침투하는 것, 갑작스러운 모호함을 맞닥뜨리는 일이다. 혼잣-말이 말-하기로 이동하면서 떨리고, 반복되고, 멀어지다 급기야 사라져 버리면 말의 목적이 성급히달성되는 것을 잠시 지체시킬 수 있다. 그때 말은 곁길로 새기도 하고, 상념이 튀어 오르는 것을 허락하며, 어떨 때는 너무 선명해서 더듬어 감각하게한다. 더듬음으로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상대의 한없는 여지를 발견하는 곳. 단언하지 못하는 사람, 말의 빈자리가 많은 사람, 우회하는 사람, 행간이많은 사람, 그렇게 밖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가장자리(邊). 《눌변가》는 ‘혼자’가 ‘하기’가 되는 순간 말에 벌어진 사건 안으로 더듬더듬들어가 보고자 한다.

언어의 과잉-파동

이윤이의 이야기는 최소한으로 놓인 정황들을 하나씩 하나씩 뒤틀며 전개된다. “우리는 여행을 계획하였다”, 내레이션의 첫 문장은 등장인물이 서로를 처음 의식한 외딴 산을 여행지로, 그들을 ‘우리’로 인식하게 한다. “말간 목덜미”를 내놓은 “단발머리”라는 묘사가등장인물의 모습과 꼭 같으니 시작은 순조롭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여행은 정말이지 계획으로만 그쳤거나 그저 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순식간에 장소가전환되어 있고, 두 사람은 다수의 목소리, 화자, 문체, 그러니까 다중적으로 재현되어 있다. “내(my)”와 “네(yes)”가 같은 것으로 들리나사실은 굉장한 오해인 것처럼, 보이고 들리는 표면적인 것들에 의심의 가지를 친다. 작가는 여행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을 중심에 놓고 인물의 현전을암시하는 대화와 물건과 묘사들, 그로부터 떠오르는 단상, 음악과 기억, 움직임을 중첩했다. 어떤 부분은 바로 알겠고 어떤 부분은 절대로 파악할수 없는 상태로, 그러니까 “아는데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이야기는 조각조각 발화된다. 그는 정말 “쌍둥이”일까? “노래”는 왜 멈춘 것일까?

사라짐의 서사-감탄사

노은주가 줄곧 관심을 가져온 대상들에게는 별다른 이름이 없다. 이름이 붙여지길 기다리고 있거나, 혹은 본래의 기능과 역할이 탈각된 것들이다. 작가는 어디에도 포섭되지 않는 대상들로부터 풍경을 인지하고 그 찰나의 경험을 형태로 드러내고 있다.

베란다나 창문, 불빛조차 아직 채워지지 않아 그저 높은 기둥일 뿐인 아파트가 해가 지면서 땅거미와 함께 풍경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있다. 2015년에 그린 ‹야경›은 매일 다니던 길에 느릿느릿 세워지고 있는 고층 아파트가 시간이 흐르며 주변의 인상을 뒤바꿔버린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낮과 밤 사이, ‘어스름’에 덮인 아파트는 작가가 마음을 쓰는 풍경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느낄 수 있다. 작가의 시간성은‹녹는형태연습›(2017)과 ‹Dropping›(2020)에서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무엇인가 끈적하게 녹아내려 물체의 전신을 덮어버리고, 좁은구멍 사이로 액체가 뿜어져 내려 바닥에 쌓여 있는 이 ‘과정’의 조형들은 감각을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며 더욱 촉각적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노은주의회화적 제스처는 그의 작업 태도에서도 엿보인다. 작가는 꽤나 지난한 우회의 과정을 거치는데, 시선에 잡힌 풍경을 재빠르게 드로잉으로 기록하고,다시 손으로 더듬으며 조각으로 만든 뒤에 비로소 캔버스 위로 옮긴다고 한다. 말을 입안에서 고르다 묵직하게 뱉어내는 눌변가처럼 중간 자세를 오래취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라짐을 향해있는 그의 조형이 고정된 상태가 아닌 ‘흐르는’ 이야기로 들리는 것 같다.

노은주의 회화를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언어는 감탄사였다. 아직 말이 되지 못한 탄식, 푹-하고 새어 나온 조음, 감각에 바로 작용하는 언어. 무엇도 온전히 설명하거나 주장하지 못하지만, 발화 행위 자체로 존재에 의의가 있는 감탄사는 명징한언어의 앞 또는 뒤에 위치한다. 작가가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과정의 풍경은 감탄사와 같이 고정된 세계의 앞과 뒤에서 그 너머의 물렁한 것들을상상하게 하는 힘이 있다.

반복-전복의 언어

무진형제의 ‹여름으로 가는 문›(2018)은 두 개의 영상과 설치, 텍스트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왼쪽의 영상은 쉼 없이 줄넘기를 넘는 성장기의 한 소년을 조명한다. 화면 가득 포착된 땀에 젖은 셔츠와 바짝 마른 사마귀의 시선이 지독하게 더운 여름의 한 계절을오롯이 느끼게 하고, 줄넘기의 줄이 공간을 가르고 아스팔트 바닥을 쳐 낼 때 발생하는 소리가 조용히 신경을 긴장시킨다. 오른쪽, 대기의 흐름을보여주는 기상 그래픽이 화면을 가로지르며 일렁인다. 공원이라고 하기에는 아득히 크고 멀리서 흐름을 전하고 있는데, 바람 한 점 보이지 않는 공원의날씨와는 대조적이게 이곳의 속도는 제법 분주하다. 아득함은 물리적인 공간 사이의 거리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측정 불가능한 마음의 거리를 묘사할 때도적당하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그건 그냥 하는 거야”. 물음에 대한 회피의 대답이 전시장 벽에 손글씨로 새겨져 있다. 외형적으로는 다 자란 어른처럼 보이지만 소년은 다른 이들의 물음에 미숙한 부정의 말들만 뱉을 뿐이었다. 무진형제는 어떻게 소통을해야 할지 어려워하는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기 시작했고, 그의 발화가 다른 방식으로 솟구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일 아침 이루어지는 4,000개의줄넘기는 단순히 ‘그냥’으로 넘기기 어려운 어떤 수행 혹은 선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정서적 긴장은 근경에서 부감으로 이어지는 시선, 생경한 시공간의 낙차, 뜯기고 깨져버린 타일에서도 발생한다. 각각의 요소들은 말의 빈자리를 채우는 신체적 징후들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있다. 덕분에 언어가 지극히 배제된 채 행위의 결과인소리와 땀, 그로부터 연상되는 냄새와 같이 청각, 시각, 후각을 자극하는 감각이 고조되어 언어가 아닌 몸을 통해 세상과 관계 맺고 발화하는 인물의이야기를 듣게 한다. 전시장의 소란함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어느 순간 그를 제외한 다른 세상이 지워져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들뢰즈에게 있어 말더듬기는 “세계 너머를 흘끗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언어, “언어를 한계까지 끌고가는 형식” 이었으며, 그러한 뒤틀림, 변주로부터 새로운 잠재성이 나온다고 여겼다. 제목으로 더듬거리는 말씨를 뜻하는 눌변에 '가'를 붙여 눌변을 능숙하게 하는 사람(家)과 눌변의 노래(歌)라는 의미를 담았다. 행위의 반복이 언어의 전복으로 이어지는 영상, 정교하고 능숙하게 다루는 언어가 그 의미를 초월해 가는 과정, 공백이자 그 어디에도 포섭되지 않았던 감각들을 길게 뽑아내어 말이 안에서 머무는 순간, 말하기의 다른 가능성을 살피고자 한다.

인용 : 들뢰즈와 언어: 언어의 무한한 변이들, 장자크 르세르클, 그린비, p.388, p.380.

- 신지이(기획자) 전시서문 中 발췌

참여 아티스트


아티스트 노은주(b.1988)

2016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전문사 졸업
2012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개인전 'Walking-Aside(스페이스 월링앤딜링,서울,2019)', '상황/희미하게 지탱하기(스페이스 월링앤딜링,서울,2013)'
레지던시 2017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11기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한국)

아티스트 그룹 무진형제 : 정무진(b.1979), 정효영(b.1983), 정영돈(b.1988)으로 구성된 미디어 작가그룹

개인전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아트 스페이스 풀, 서울,2019)', '궤적(아카이브 봄,서울,2018)', '여름으로 가는 문(백남준아트센터 메자닌 스페이스, 용인,2018)','속인의 밀담(스페이스 오뉴월 이주헌, 서울,2016)'
2019년 한네프켄-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코리안 비디오 아트 프로덕션 어워드 2019의 수상자로 선정, 2015년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최고구애상 수상.

아티스트 이윤이(b.1979)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뉴욕 헌터컬리지 미술학부 학사 및 통합매체 석사 졸업

개인전 '싹 다 살아졌음(두산 갤러리,서울,2019)', '내담자(아트선재 프로젝트 스페이스, 서울,2018)', '두번 반 매어진(인사미술공간,서울,2014)'
2018년 두산아트센터의 두산연강예술상수상.

기획 신지이(b.1983) 아트 스페이스 풀 큐레이터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인턴,창원조각비엔날레 코디네이터를 지냈다.
2017년부터 아트 스페이스 풀의 큐레이터로 재직하며 '사실, 시체가 냄새를 풍기는 것은 장점이다(2019)', '무진형제: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2019)', '정글짐(2018), '금혜원: 섬호광(2018), '정덕현: 조각모음(2017) 등의 개인전과 그룹전 기획.

이번 기획 전시 ‘눌변가’ 전은 낙원악기상가 전시공간 d/p 에서 6월 20일까지며 화~토요일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입장료는 무료다. 전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낙원악기상가 전시공간 d/p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낙원악기상가 전시공간 d/p는 “이번 전시가 코로나 블루로 지친 시민들에게 힐링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안전하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손소독제 비치, 방명록 작성 및 마스크 착용 후 관람 유도 등 방역을 철저히 하겠다”고 말했다.

김창만 기자 chang@asiaart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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