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1 15:36  |  오피니언

[추니박의 인도 여행기]타르 사막으로 가는 길목 자이살메르와 사막의 하얀달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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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사막을 가다, 종이에 수채, 2001 / 그림=추니박
[아시아아츠 = 글 그림 추니박]
친따 친구들과 다시 조인해 사막으로 낙타 사파리를 가기 위해 자이살메르로 왔다. 라자스탄의 서쪽 끝에 위치한 자이살메르는 파키스탄과 인접해 있는 타르 사막으로 가는 관문이다.

사암으로 도시를 건설해 골드시티로 불렸던 이곳의 상징은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록되기도 한 자이살메르 Fort(성)이다. 나는 기차에서 내려 릭샤를 타고 커다란 자이살메르 성이 보이는 바로 앞 게스트하우스 촌에 내려서 친따 팀과 만나기로 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델리를 들러 오느라 팀은 나 보다 하루 늦게 도착하기 때문에 나는 하루의 시간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었다. 그동안 여행하느라 쇼핑을 거의 해 본 적이 없는데 이곳은 낙타 가죽이 유명한 곳이니 혼자 슬슬 다니며 시장 조사도 하고 물건 질도 볼 겸 혼자 성으로 나들이를 갔다. 성으로 올라가는 길목 초입에선 며칠 전 수 만 명이 죽었다는 지진의 여파로 한 10여 미터 되는 성이 무너져 내려 인부들이 공사를 하고 있었다. 정으로 돌을 깎는 사람들과 어깨에 줄을 메서 돌을 나르는 사람들이 서로 엉켜 분주하게 일을 하는 모습이 무척 원시적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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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수리하는 사람들, 종이에 연필과 수채, 2001 / 그림=추니박

그중 정으로 돌을 깎는 사람에게 지진 때문에 그러냐고 물었더니 검은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고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그 사람 말이 작년에도 지진이 나서 성이 무너지는 바람에 얼마 전까지 공사를 했는데 또 무너져 내린 거라면서 활짝 웃었다. 나는 참 안됐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는데,,, 그 사람은 ‘우린 계속 일 할 수 있어서 좋아요 ’라는 표정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곳에서 저런 일을 맡으면 1년은 그냥 맘 편히 일을 할 수 있으니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나는 성 앞 시장 통에 들러 이곳저곳 가게를 들러보며 좋은 가방을 살 만한 집을 물색했다. 그러다 인상 좋은 한 가게 주인과 친해져서 그 가게에 눌러앉아 하루종이 그 친구와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 주인은 나보다 열 살은 위로 보이는 나이들은 얼굴이었는데 실제 나이는 나보다 여덟 살이나 어려서 새삼 인도 사람들의 짧은 수명을 생각하게 됐다.

그 주인의 말에 의하면 군인 집안에 태어나면 15년씩 필수적으로 군에 가야 하고 자신 같은 사람들은 평생 대대로 장사만 해야 된다고 했다. 내 생각엔 정말 갑갑하고 암담한 현실임에도 이 사람들은 아무런 불평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여기가 사막의 입구라서 낙타 가죽 세공품을 팔지만 낙타의 양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부분 소, 버팔로, 염소 가죽으로 가방을 만든다는 얘기를 해줬다.

그 주인은 내게 그 비밀을 알려주는 바람에 모든 물건을 다른 가게의 반값으로 팔았다. 비밀을 알려줬으니 낙타 가죽이라는 특별한 메리트에 붙이는 가격을 불일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 나는 물건을 싸게 산 대가로 저녁에 일을 마친 후 그 주인 가게의 셔터 문을 내리고 둘이서 맥주를 한잔 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그들도 뒤로는 다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그러면서 사람답게 살고 있다는 걸 아니 마음이 놓였다.

이제 4일 정도의 여정을 남긴 인도로의 여행,,, 낯설고 두렵기도 했던 이곳이 익숙해지고 정이 드니 묘한 감정으로 바라보게 된다. 죽고 살고가 그저 하늘에 뜻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현실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인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든 일에 ‘No prablum' 하나도 대화가 되는 사람들,,, 옳고 그름은 이 세상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일, 이들에게는 이들의 방식이 가장 편하고 적합하리라, 불편해 보이고 가난해 보이고 불행해 보이는 것은 단지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잠깐 동안의 동정의 시선일 뿐 이들은 이들만의 규율과 규칙 속에 살고 있다. 인도의 부자들은 옛날 한국의 양반들의 모습을 보듯 거만하고 당당하고 차갑다.

반대로 가난한 이들은 한없이 착해 보이는 웃음을 짓는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계급이 뒤 섞여 있는 그들 사이를 지나가는 관광객들은 어떤 알 수 없는 세상을 타임머신을 타고 지나는 것 같은 묘한 감정을 갖게 된다.

이튿날 새벽 반가운 얼굴들이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기차여행에서 지친 일행들은 오전에 잠깐 눈을 붙이고 정오쯤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떠났다. 나는 사막의 모래밭에서 친구들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닭 바비큐를 해주기 위해 동네에 수소문을 해서 생닭 열 마리를 사서 자루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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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살메르의 기억,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낙타는 생각보다 키가 엄청 컸다. 낙타가 일어날 땐 엉덩이를 먼저 들기 때문에 앞으로 꼬꾸라질 수 있어서 처음에 허리를 뒤로 젖혀서 균형을 잡아 주는 게 무척 중요하다. 그것만 잘하면 낙타를 타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영화에서 본 낙타 거상들처럼 줄을 지어 뜨거운 모래 위를 걸어갔다. 타르 사막은 드문드문 나무와 넝쿨 같은 풀이 자라는 곳이다. 그래서 동그랗게 말린 커다란 마른풀 덩어리가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모습이 마치 서부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으로 보였다. 나는 낙타 위에 앉아 있는 일이 지루해서 뒤로 돌아 앉기도 하고 일어서서 묘기를 부리기도 하면서 즐겁게 여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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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석양,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해가 질 녘 텐트를 친 뒤편 모래언덕에 올라 노을을 보았다. 정말 아득한 지평선 너머로 서서히 넘어가는 석양을 보니 감정이 복받쳐 왔다. 마치 높은 산을 올랐을 때 느끼는 그런 감동이 내가 꿈에도 못 꾸던 사막에 와 있다는 생각으로 몰려왔다.

같은 해가 다른 장소에서 전혀 다른 감동을 주니,,,,나의 예술도 장소에 상관없이 감동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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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몰이 소년,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해가지고 우리는 잔가지를 모아 사막에 불을 피웠다. 가지고 온 쇠꼬챙이에 닭을 랩으로 싸서 끼고 불을 조절해서 바비큐를 만들었다. 아우랑가바드에서 백숙을 먹었을 때 다들 감동했었는데 사막에서 바비큐에 맥주를 마시니 이번엔 더 큰 감동이 밀려온다며 인사를 건넷다. 그 때 우리 머리 위로 이때까지 정말 한 번도 본 적 없는 커다랗고 하얀 보름달이 고개를 내밀었다.

사막이 대낮처럼 밝아져서 우리는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정말 신비스럽고 괴기스러운 시간 속에 놓여 있었다. 그 이상한 상황에서 닭다리를 뜯는 모습이 오버랩돼서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한참 웃었다. 나는 동료 몇 명과 언덕에 올라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고운 모래 위에 쭈그리고 앉아서 한참 동안 달구경을 했다.

삶은 어쨌든 흘러간다. 나도 언젠가 죽음 앞에 서겠지만 그 여정의 고난을 잘 헤쳐 가는 슬기로운 사람이 되기를 그 달님에게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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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사막을 함께 여행한 낙타, 종이에 펜, 2001 / 그림=추니박

하얀 달 속에 얼굴을 비치는 아들과 아내의 얼굴을 보니 이제 빨리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막으로의 여행,,,,

단 하룻밤의 경험이었지만 타르사막의 그 하얀 달은 내게 영원히 잊혀 지지 않는 감동으로 남을 것 같다.

2001. 2. 11. 자이살메르 게스트하우스에서

[추니박의 인도 여행기] 글·그림 추니박(아티스트 박병춘)

수묵화 강의/흑백의매력 / 영상=추니박 유튜브

추니박(박병춘)은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을 비롯해 32회의 개인전과 200여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00년부터 산수풍경시리즈를 시작하고 그동안 독특한 작품을 발표해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그는 2010년 중앙일보 주최 평론가가 뽑은 3040작가 1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많은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추니아트’로 미술 애호과들과 소통 중이다.

chang@asiaart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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