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3 12:45  |  오피니언

[추니박과 함께 걷는 그림여행⑧] 영월 한반도 지형을 그리며 보낸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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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에서 내려다본 한반도지형 27X40 스체북에 먹 2013 / 그림=추니박
[아시아아츠 = 글 그림 추니박]
지금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영월의 한반도 지형을 처음 가게 된 것은 2004년 4월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스케치를 하러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정말 우연히 그 장소를 만났다. 그 당시 영월은 어디를 가도 강과 절벽이 어우러진 멋진 풍경이 있어서 나는 마음이 답답할 때면 영월로 스케치를 나갔다. 그러다 그 날 묵었던 들꽃민속촌 이라는 숙소의 주인아주머니의 소개로 한반도 지형을 가게 되었다.

그녀는 언덕으로 쭉 올라가면 비포장도로가 나오는데 제대로 된 길이 아직 없으니 그냥 시멘트 공장 마당을 가로질러 올라가서 고갯마루에 해당하는 곳에 차를 세우고 왼쪽 산비탈로 올라가 능선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한반도 지형을 닮은 곳이 내려다보일 거라고 알려줬다.

나는 초행길도 제법 잘 찾는 편이라 약간씩 헷갈리기는 했지만 어렵지 않게 능선을 찾아 산 아래를 살피면서 좁은 오솔길을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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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지형, 스케치북에 드로잉 2013 / 그림=추니박

소나무와 참나무가 섞여 그늘이 시원하게 드리운 숲길을 한 참 걸어가다 확 트인 전망이 나오면서 정말로 한반도 지형과 똑 같이 생긴 지형을 만나게 되었다. 구불구불 서강이 흘러 한반도 지형을 감싸며 내려가는 산의 형상이 남태평양의 하늘 아래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똑같았다. 그 후로 그곳으로 스케치를 더 자주 가게 되었는데 그러다 우연히 자신이 아마추어 사진작가이며 그곳의 이름을 국회에 알렸다는 분을 만났다.

나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귀담아듣지 않았는데 그분이 꺼내서 보내준 사진 자료에 그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날 그분으로부터 한반도 지형에 얽힌 재밌는 사연을 듣게 되었다. 그 당시 그곳은 아름아름 아는 사람들만 찾던 유명하지 않은 장소였는데 우연히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들렀다가 그 풍경에 매료되서 그곳에 무궁화도 심고 한반도 지형이라는 이름도 지어 사람들에게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자처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국도 건설 계획에 새로 나는 신설 국도가 한반도 지형의 허리를 가로질러 가게 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그때부터 그분은 국회에 그 장소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사진자료를 보내고 그곳을 보존해야 하는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심지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까지 해가며 몇 년을 노력한 끝에 결국 도로 계획을 옆으로 비껴가게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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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마을 한반도 지형 27X68 화첩에 먹 2008 / 그림=추니박


나는 한반도 지형의 등에 해당하는 선암 마을 앞에서 본 절벽을 좋아한다. 선암마을은 한 다섯 가구 정도만 있는 작은 마을인데 몇 채의 집을 지나면 강변으로 나갈 수 있다. 그 강변에서 바라보는 절벽은 높이가 한 20여 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한 100여 미터로 길게 병풍처럼 서있는 모습이 아기자기하고 산 능선으로 서있는 소나무들이 어우러져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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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지형의 절벽 사생 27X68 화첩에 먹 2008 / 그림=추니박

절벽의 결도 어떤 부분은 가는 선이 섬세하게 얽혀있고 어떤 부분은 도끼로 쪼개 논 것처럼 파여 있기도 하다가 또 어떤 부분은 얇게 칼로 도려낸 것처럼 부드럽기도 하다. 그 절벽 아래 흐르는 서강의 깨끗한 물과 어우러져 그곳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나는 2000년대 후반 한반도 지형을 그리러 영월에 수십 번을 간 것 같다.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다가도 화구를 챙겨서 무작정 한반도 지형으로 달려가 숙소를 잡아 놓고 하루 종일 그 절벽을 먹으로 직접 사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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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풍경-사랑 190X136 한지에 먹과 아크릴 2005 / 그림=추니박

절벽을 하나하나 꼼꼼히 관찰하고 그것에서 중요한 선을 찾아 새로운 그림으로 구성해 가는 재미는 그 어떤 것보다 내게 흥미를 주었다. 나는 그 사생을 바탕으로 500호 이상의 대작을 몇 점이나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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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어떤풍경-모란 80X105 한지에 먹 2007 / 그림=추니박

그 대작들은 아주 작은 세필을 이용해 준을 떠서 보는 이들에게 절벽의 핏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도록 하였다. 그 절벽 앞에 노란 우체통을 세워두거나 빨간 소파를 그려 넣기도 하고 모란꽃이나 원앙새가 하늘을 나는 글라이더 등을 그려 넣어 절벽을 통해 내가 세상에 바라는 것들은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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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우체통이 있는 풍경 70X98 한지에 먹 2005 / 그림=추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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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어떤풍경 172X540 한지에먹 2006(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그림=추니박

때로는 절벽을 그리는 동안에 벌어진 사건이나 이슈 등을 절벽 그림에 새겨 넣기도 해서 그 절벽이 언젠가는 시대를 읽는 하나의 단서가 되도록 하기도 하였다. 그 한반도 지형의 절벽 앞에 노란 우체통을 그려 지나간 추억과 그리움을 표현한 작품 ‘노란 우체통이 있는 풍경’은 중학교 교과서에 새로운 한국화의 예로 실리기도 하고 또 5미터 40센티로 그린 대작 ‘낯선, 어떤풍경-한반도지형’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으로 들어가 있다.

2003년 성곡미술관 중견작가 회고전 작가로 초대됐을 때 전시실 하나를 수묵화, 아크릴화, 유화 등으로 그린 한반도 지형 시리즈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지난 시절 나는 아주 많은 사람들과 그 절벽 앞에서 함께한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내가 그 절벽을 오랫동안 그려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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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지형의 여름 69X260 캔버스에 유채 2013 / 그림=추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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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마을의 여름 69X260 한지에 아크릴 2013 / 그림=추니박


나는 지금도 가끔 한반도 지형에 가서 그림을 그린다. 햇볕 좋은 봄날 진달래가 핀 절벽 앞에 앉아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행복 중에 하나이다.

이제 그 절벽은 단순한 절벽이 아니라 세월이 쌓인 의미 있고 소중한 사진첩 같은 그런 대상이다.

[추니박과 함께 걷는 그림여행] 글·그림 추니박

추니박의 수묵화 안개낀 석모도의 밤섬 그리기 / 영상=추니박 유튜브

추니박(박병춘)은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을 비롯해 32회의 개인전과 200여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00년부터 산수풍경시리즈를 시작하고 그동안 독특한 작품을 발표해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그는 2010년 중앙일보 주최 평론가가 뽑은 3040작가 1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많은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추니아트’로 미술 애호과들과 소통 중이다.

chang@asiaart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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