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개봉 이후 17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명작 ‘벼랑 위의 포뇨’가 오는 2025년 8월 22일, 일본 ‘금요 로드쇼’를 통해 3년 만에 7번째로 방영됩니다. 단순한 동화를 넘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대담한 연출과 깊이 있는 메시지로 가득한 이 작품은 시간이 흘러 다시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과 생각할 거리를 안겨줍니다. 본 기사에서는 ‘벼랑 위의 포뇨’가 보여준 파격적인 스토리와 그 속에 담긴 현대적 가족 관계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
거장의 폭주, 정형화된 틀을 깨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오랜만에 선보인 오리지널 작품인 ‘벼랑 위의 포뇨’는 그의 이전 발언, 즉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을 끝으로 장편에서 은퇴하겠다는 말을 무색하게 할 만큼,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의 즐거움과 생명력으로 가득 찬 판타지입니다. 이야기는 기승전결의 전통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으며, 일견 비논리적으로 보일 수 있는 파격적인 전개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주인공인 물고기 소녀 ‘포뇨’가 인간 소년 ‘소스케’를 만나면서 세상의 균형이 무너지고 지상 문명이 물에 잠긴다는 설정은 그 이유가 명확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는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1979)의 고대 로마 유적이나 ‘미래소년 코난’의 과학도시 인더스트리아처럼, ‘멸망하는 문명’의 이미지를 즐겨 다루는 미야자키 감독의 머릿속 상상력이 고스란히 스크린에 투영된 결과입니다. 소스케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포뇨의 순수한 열망이 거대한 해일을 일으키고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장면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방화를 저지른 ‘야오야 오시치’의 고사를 연상시킬 만큼 맹목적이고 강력합니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모노노케 히메'(1997)부터 디지털 기술을 도입했음에도, 이 작품의 거대한 파도 장면은 오직 수작업만이 표현할 수 있는 역동성과 박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혼돈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과 생명력
폭풍우가 지나간 다음 날, 소스케가 사는 마을은 물에 잠기고 고대 데본기의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신비로운 세상으로 변합니다. 소스케의 어머니 리사가 일하는 양로원 ‘해바라기의 집’의 노인들은 물속에서도 자유롭게 걷고 휠체어 없이 뛰어다니는 등,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허물어진 듯한 초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혼돈 속에서 다섯 살 소년 소스케는 포뇨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을 증명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미야자키 감독은 두 아이에게 행복과 희망이 가득한 결말을 선물합니다. 이는 ‘생명을 불어넣다’라는 의미를 지닌 애니메이션(Animation)의 어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감동적인 마무리입니다. 당시 스튜디오 지브리 내부에 베이비 붐이 일었고, 미야자키 감독이 직접 원장을 맡은 사내 보육원이 신설된 배경은 그가 미래 세대인 아이들을 위해 희망적인 작품을 남기고 싶었던 이유를 짐작하게 합니다.
소스케는 왜 엄마를 ‘리사’라고 부를까?
‘벼랑 위의 포뇨’가 제시하는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주인공 가족의 관계입니다. 주인공 소스케는 자신의 어머니를 ‘리사’, 아버지를 ‘코이치’라고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러한 설정은 많은 관객에게 신선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에 따르면, 이는 미야자키 감독의 의도된 연출로, “어머니인 리사가 소스케에게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도록 가르쳤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그는 “가족이라 할지라도 각자가 하나의 독립된 개인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상징”이라고 설명하며, 이는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임을 시사합니다.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말하다
실제로 이러한 가족 관계는 현대 사회에서 점차 나타나는 변화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한 매체가 10대에서 60대 남녀 68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모를 이름으로 부른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18.1%였습니다. 성별로 보면 남성(13.7%)보다 여성(22.9%)의 비율이 더 높아, 여성이 상대적으로 더 수평적이고 친구 같은 부모-자식 관계를 맺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스즈키 프로듀서는 “(소스케와 리사 같은 부모-자식 관계는) 어쩌면 미래 일본 가족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언급하며, 가족의 형태가 점차 다양해지고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부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 작품을 통해 “리사가 엄마의 역할을 다하면서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소스케를 신뢰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소스케가 부모를 이름으로 부르는 이유를 알고 나니 이 작품이 더 좋아졌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많습니다. 개봉한 지 17년이 지난 지금, 어른이 된 시점에서 다시 감상한다면 과거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벼랑 위의 포뇨’는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거장이 자신의 재능과 상상력의 한계를 모두 해제했을 때 어떤 경이로운 작품이 탄생하는지를 증명하는 작품으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과 감동을 던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