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에서 배우들이 자신의 예술적 열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갈수록 다채로워지고 있다. 어떤 이는 외부의 자극을 철저히 차단한 채 오직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여 독창적인 캐릭터를 빚어내고, 또 다른 이는 카메라 앞을 벗어나 직접 메가폰을 잡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영화라는 같은 공간에 머물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스크린을 대하는 두 배우, 강동원과 장동윤의 행보가 대중의 이목을 끌고 있다.
타인의 연기를 지우고 상상력으로 채우다, 강동원의 ‘전우치’
‘아이돌’의 홍수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청춘스타’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는 단연 강동원(28)이다. 영화 <늑대의 유혹>에서 여주인공의 우산 속으로 뛰어들며 뭇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그는 어느덧 데뷔 7년 차에 11편의 작품을 소화한 단단한 배우로 성장했다. 날카로운 눈매가 주는 신비로움과 이웃집 오빠 같은 개구쟁이 미소가 공존하는 그의 모순적인 외모는 최동훈 감독이 영화 <전우치>의 ‘악동 도사’로 그를 낙점한 결정적 이유였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동원은 겉보기와 달리 지독한 일중독자이자 승부욕의 화신이었다. 2007년 <엠(M)> 이후 무려 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그는 그간의 공백이 시나리오 전면 수정 때문이었다고 털어놨다. 애초 기획했던 극지방과 수영장을 오가는 설정이 할리우드 영화 <점퍼>와 겹치고, 물과 불을 쏘는 핵심 배경이었던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되는 등 예기치 못한 암초를 만난 탓이다. 그럼에도 그는 <전우치>에 완전히 매료되어 다른 작품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반년의 휴식기 동안 집에서 백수가 된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렸다는 그는 현장에 있을 때가 마음도 편하고 가장 재미있다며 천상 배우의 면모를 드러냈다.
그가 티브이 드라마를 고사하고 영화에만 매진하는 이유는 뚜렷하다. 준비 기간이 길고 장르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특유의 가족 같은 현장 분위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전략적인 행보보다는 스스로 즐겁게 일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연기에 임하는 그만의 독특한 철학이다. 강동원은 동료 배우들의 작품을 비롯해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 탓에 슬픈 영화를 보면 덩달아 오열하고, 인상적인 캐릭터를 보면 그 잔상이 머리에 깊게 박혀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최 감독의 권유로 <다이하드>, <본> 시리즈, <캐리비안의 해적> 등을 챙겨본 뒤에도 머릿속에 가득 찬 기성 배우들의 연기를 지워내느라 꽤나 고생을 했다. 그는 간접 경험보다는 스스로의 상상력이 훨씬 중요하다고 굳게 믿는다. 죽어봐야 죽는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을 관객에게 얼마나 잘 전달하느냐가 핵심이라는 그의 말에서 확고한 주관이 엿보인다.
이러한 상상력은 현장에서 빛을 발했다. <전우치>에서 시종일관 오른쪽 입꼬리를 올리며 짓는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 역시 치밀한 연구의 결과라기보다는 찰나의 직관에서 탄생했다. 서인경(임수정)을 보쌈하는 촬영 초반, 불현듯 떠오른 표정을 지어 보였고 감독의 호응을 얻어 캐릭터의 시그니처로 굳어졌다. 물론 직관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정두홍 무술감독이 극찬할 정도로 완벽한 액션을 선보인 이면에는 엄청난 고충이 따랐다. 체력 훈련에 매진했지만 정작 액션 촬영이 뒤로 밀리면서 헛수고가 되기 일쑤였고, 야식을 먹고 자동차 추격신을 찍다가는 속에 있는 것을 모두 게워내는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피사체에서 창작자로, 메가폰을 잡은 장동윤의 <효모>
강동원이 카메라 앞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견고하게 다지는 데 집중한다면, 장동윤은 스스로 카메라 뒤로 물러나 새로운 서사를 직조하는 도전을 택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등 다수의 텔레비전 시리즈와 영화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져온 그는 최근 자전적 성격의 독립 영화 <효모(The Yeast)>를 통해 장편 영화 감독으로 공식 데뷔했다.
시사회 직후 만난 장동윤은 처음부터 엄청난 야심을 품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배우로 활동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무언가를 직접 창조하고 싶다는 갈증이 자연스레 커졌고, 그것이 결국 연출이라는 새로운 길로 그를 이끌었다. 2023년 단편 영화 <내 귀가 되어줘>로 연출의 맛을 본 그는 이번 장편 데뷔작의 각본까지 직접 쓰며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효모>는 막걸리를 사랑하는 열여덟 살 소녀 다슬(김승윤 분)의 이야기를 담은 따뜻한 성장 영화다. 양조장을 운영하는 집안의 딸인 다슬은 어느 날 막걸리의 맛이 변한 것을 알아채고, 사라진 효모의 행방을 쫓아 여정에 오른다.
이 독특한 소재는 팬데믹 기간 중에 번뜩이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초기에는 막걸리가 질병을 치료한다는 설정의 블랙 코미디로 기획되었지만, 대본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점차 인물들의 내면에 집중하게 되었고 지금의 따뜻한 이야기로 발전했다.
초보 감독으로서 감당해야 할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현장의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자신만 바라보며 정답을 요구할 때 머릿속이 하얘지는 순간도 많았다. 정답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외로운 과정이었다. 이 부담감을 덜어준 것은 다름 아닌 인연이었다. 아빠 역할로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던 박명훈을 비롯해 자신이 평소 잘 알던 이들로 제작진의 90% 이상을 꾸렸고, 이는 현장의 안정감으로 이어졌다.
배우 출신 감독이라는 점은 연출에 있어서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다슬 역을 맡은 주연 배우 김승윤은 장동윤의 직관적인 디렉팅에 찬사를 보냈다. 숨을 조금 더 쉬어보자라거나 몸에 힘을 빼보라는 식의 명확하고 구체적인 지시가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배우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감독 덕분에 마치 노련한 선생님을 좇아가듯 편안하게 연기에 임할 수 있었다고 그녀는 회고했다.
장동윤은 영화의 제목이자 핵심 소재인 ‘효모’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내재된 보편적인 믿음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명확하다. 극장을 나서는 이들의 마음 한구석에 작은 용기와 따뜻함이 피어나길 바라는 것. 연기라는 틀을 깨고 나와 기꺼이 타인에게 온기를 전하는 창작자가 된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각자의 방식으로 스크린을 채워나가는 강동원과 장동윤. 서 있는 위치와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대중에게 자신만의 그림을 전달하고자 하는 두 청춘스타의 치열한 고민과 열정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