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브라운관과 스크린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전문가들의 두뇌 싸움으로 뜨겁다. 선명한 권선징악의 통쾌함을 앞세운 법정 드라마들이 안방극장을 장악한 가운데, 스크린에서는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추적하는 첩보 스릴러가 관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현실의 사법 시스템이나 공권력에 대한 답답함을 대리 해소해 준다는 점에서, 무대는 다르지만 이 두 장르는 묘하게 맞닿아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법정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이 쏟아지고 있다. 연초부터 시청률 10.8%를 기록하며 흥행의 포문을 연 ‘판사 이한영’은 10년 전으로 회귀한 판사가 검사와 연대해 거악에 맞서는 서사로 지성의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이나영 역시 3년 만의 복귀작으로 미스터리 추적극 ‘아너: 그녀들의 법정’을 택했다. 여성 변호사 3명이 자신들의 과거와 얽힌 거대한 스캔들을 돌파하는 이 작품에서, 이나영은 대외 메신저 역할을 하는 셀럽 변호사로 분해 극을 이끈다. 여기에 불치병 치료 능력을 지닌 연쇄살인범을 둘러싼 스릴러 ‘블러디 플라워’, 소외 계층을 위한 무료 법률 서비스를 다룬 문유석 작가의 ‘프로보노’ 등 다채로운 변주가 더해졌다. 최근에는 현직 법조인들이 직접 대본을 집필하며 디테일과 현실성을 한층 끌어올리는 추세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전문가들의 정교한 팀워크와 갈등 해결 과정이 바다 건너 할리우드의 첩보 액션물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는 것이다. 가이 리치 감독의 신작 스파이 영화 ‘인 더 그레이(In the Grey)’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도난당한 거액을 회수하는 추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법정 드라마가 법리적 공방을 통해 억울함을 푼다면, 이들은 피지컬과 전술로 잃어버린 자금을 되찾으며 정의를 구현하는 셈이다.
가이 리치 감독은 이 완벽한 작전을 위해 헨리 카빌과 제이크 질렌할이라는 최적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두 배우는 카메라 밖에서도 깊은 유대감을 나누며 현장의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었고, 에이사 곤잘레스까지 합류하며 이들의 팀워크는 더욱 빛을 발했다. 감독 스스로 “배우들과 단축키(shorthand)가 생기면 작업이 훨씬 수월해진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이들이 뿜어내는 호흡은 영화의 가장 큰 무기다.
결국 우리가 안방극장의 변호사들에게 열광하든, 스크린 속 스파이들의 거침없는 액션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든, 본질은 같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각자의 신념과 기술로 뚜렷한 목표를 쟁취해 내는 이들의 활약은 시청자들에게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