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엔터테인먼트계가 전혀 다른 결을 지닌 두 가지 운명론에 주목하고 있다. 하나는 상상력이 덧대어진 화려한 입헌군주제의 궁궐 안이고, 다른 하나는 생사를 넘나드는 척박한 현실의 국경선 너머다. 극과 극의 텍스처를 가진 이 두 서사는 각각 배우 변우석과 김민하의 새로운 행보를 통해 대중 앞에 섰다.
먼저 브라운관을 달굴 주역은 2025년을 그야말로 ‘선재 열풍’으로 휩쓸었던 변우석이다. 그가 오는 4월 방영 예정인 MBC 새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을 통해 신분 외에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비운의 왕족, 이안대군으로 귀환한다. 극 중 이안대군은 어린 조카를 대신해 섭정을 맡은 실질적 권력자임에도 불구, 빛나서도 소리 내서도 안 되는 차남이라는 태생적 굴레 탓에 철저히 자신을 억누르며 살아온 입체적인 인물이다.
온 국민이 열광하는 수려하고 기품 있는 외모 뒤에 차가운 족쇄를 찬 그가, 평민 출신 재벌 성희주(아이유 분)의 계약 결혼 제안을 받으며 고요했던 일상에 파란을 맞이한다. 공개된 스틸컷 속 유력 인사들을 압도하는 서늘한 카리스마는 변우석이 순정남의 껍질을 깨고 얼마나 묵직한 아우라로 돌아왔는지를 방증한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평민이라 짜증스러운 여자와, 왕의 핏줄이지만 아무것도 가질 수 없어 서글픈 남자가 빚어낼 ‘신분 타파 로맨스’는 꽤나 매력적인 역설이다.
화려한 궐내 암투가 달콤한 판타지를 자극한다면, 스크린 한편에서는 그보다 훨씬 지독하고 날것 그대로인 삶의 궤적이 관객을 기다린다. 덴마크 출신 프레데릭 쑬베르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김민하가 주연을 맡은 영화 ‘하나 코리아’가 그 주인공이다. 무려 2년의 기다림 끝에 오는 7월 8일 개봉하는 이 작품은, 낯선 땅 대한민국에 뿌리내리기 위해 분투하는 탈북민 혜선의 삶을 담담히 좇는다.
김민하는 극 중 인물을 연기함에 있어 기교보다는 ‘진심의 묵직함’을 택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인 만큼, 누군가의 아주 사적인 일기장을 읽듯 조심스럽게 다가가려 했다는 그녀의 말씨에선 작품을 대하는 짙은 책임감이 묻어난다. 솔직히 말해 탈북이라는 현실 자체가 웬만한 영화적 상상력을 가볍게 뛰어넘을 만큼 스펙터클하고 처절하지 않나. 바다를 헤엄쳐 국경을 넘고, 눈앞에서 가족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던 이들의 죄책감을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하면서 그녀는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내레이션 하나에도 온전한 호소력을 담아내려 애썼다. 극 중 혜선은 간호사로서 씩씩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인물이지만, 현실의 수많은 혜선들이 겪어야 했을 어둡고 지난한 이면까지 품어내려 한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자본의 규모나 명성이라는 잣대보다는 이야기 자체가 지닌 고유한 힘을 좇아 ‘하나 코리아’를 선택했다는 김민하의 뚝심.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의 틀 안에서 왕족이라는 묵직한 제약을 깨부수며 범접 불가한 얼굴을 꺼내 보일 변우석의 도발. 어쩌면 교집합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 두 배우의 행보는 결국 ‘자신을 옭아매는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맥락으로 이어진다. 완벽하게 세팅된 왕실의 위엄 속에서 피어날 반항적인 로맨스와, 가장 척박한 밑바닥에서 시작해 기어코 삶의 의지를 다져내는 탈북민의 고군분투기. 올봄과 여름, 우리는 이 상반된 두 세계가 던지는 서사 속에서 과연 어떤 묵직한 감정을 마주하게 될까.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보단 그저 스크린과 브라운관이 열릴 그날을 묵묵히 기다려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