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한 해 동안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시청자와 관객들에게 그야말로 숨 돌릴 틈 없이 볼거리를 쏟아냈다. 변우석과 아이유가 호흡을 맞춘 드라마 ‘퍼펙트 크라운(Perfect Crown)’이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안방극장을 장악하는가 하면, 김혜윤 주연의 ‘살목지: 속삭이는 물’은 무려 8년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 공포 영화로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바야흐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드는 K-콘텐츠의 화제성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시기다.
그렇다면 이 화려한 라인업을 이끌며 2026년 4월 배우 브랜드 평판 1위의 왕좌를 차지한 한류 스타는 과연 누구일까. 대세로 떠오른 변우석도, 김혜윤도 아닌 바로 박지훈이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완벽히 떼어낸 그는 대작 ‘왕의 파수꾼(The King’s Warden)’을 통해 흔들림 없는 1위를 수성했다. 이 작품은 한국 영화 역대 흥행 2위이자 최고 수익을 올린 기록적인 수작으로, 박지훈은 매혹적인 연기력을 인정받아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신인상 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 뒤를 이어 ‘퍼펙트 크라운’에서 아이유와 눈부신 케미를 뽐내는 변우석이 2위를 차지했고, ‘왕의 파수꾼’에 함께 출연한 유해진, 공포 퀸으로 거듭난 김혜윤, 그리고 ‘클라이맥스’에서 카리스마를 뿜어낸 주지훈이 톱 5를 형성했다. (이 외에도 하지원, 하정우, 박정민, 우도환, 유지태, 나나, 고윤정, 한지민, 공승연, 이준혁, 차주영, 유연석, 정우, 김지영, 이솜, 박성웅, 문채원, 갓세븐 박진영, 박성훈, 박보영, 김남길, 배인혁, 아이유, 이동휘, 이서진 등 쟁쟁한 배우들이 상위 30위권에 대거 포진하며 치열한 경쟁을 입증했다.)
이토록 대중이 한국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에 열광하는 기저에는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나 이름값을 넘어선 깊이가 존재한다. 시청률과 화제성을 싹쓸이했던 tvN의 <일타 스캔들>을 복기해 보면 그 해답의 실마리가 엿보인다.
살벌한 현실 속에서 길어 올린 로맨스의 힘
<일타 스캔들>은 사교육 1번지의 피 말리는 입시 전쟁을 배경으로 둔다. 하지만 <스카이캐슬>처럼 시청자를 옥죄며 고통스럽게 몰아붙이지 않는다. 그 가장 큰 원동력은 장르 특유의 매력과 배우들의 압도적인 내공에서 나온다. 조카를 딸처럼 키워낸 국가대표 출신 반찬가게 사장 남행선(전도연)과 ‘1조 원의 사나이’로 불리는 일타 강사 최치열(정경호)의 로맨스는 탄탄하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전도연 특유의 해사함과 정경호가 그려낸 예민한 병약미는 묘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특히 정경호는 섣불리 흉내 낼 수 없는 수학 일타 강사의 디테일을 소름 돋게 재현하며,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는 배우인지 실감케 했다.
여기에 남해이(노윤서)를 둘러싼 풋풋한 10대들의 삼각관계—오랜 모범생 남사친과 혜성처럼 등장한 비운의 운동부 소년—는 학원 로맨스의 정석을 훌륭히 밟아간다. 어른들의 끈끈한 우정과 최치열의 일상을 살뜰히 챙기는 지동희(신재하)의 브로맨스까지 어우러지다 보니, 극 중에 입시 부작용으로 인한 자살이나 시험지 유출, 쇠구슬 테러, 고양이 학대 같은 꽤 묵직한 범죄가 얽혀 있음에도 시청자는 온기를 잃지 않고 극을 따라갈 수 있다.
관찰자에서 당사자로, 영리한 거리두기
이 작품이 시청자를 설득하는 방식은 꽤나 영리하다. 초반부 남행선은 학원가에 줄을 서는 극성 학부모들을 보며 한 걸음 물러나 있는 비판적 서술자였다. 하지만 차츰 그 세계에 발을 들이며 “처음엔 별 관심 없었는데, 역전승했을 때처럼 짜릿하다. 승부욕이 생긴다”고 고백한다. 드라마는 처음부터 사교육에 완전히 매몰된 사람들만 비추거나 반대로 끝까지 외부인의 시선으로 훈계하지 않는다. 거부감 없이 주인공의 흐름에 탑승하게 만들어, 도대체 왜 이들이 그토록 경쟁에 목매는지 내재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흔히 상류층의 교육열을 다루는 작품들이 겉으로는 그들을 비판하면서도 은연중에 시청자의 동경을 부추겨 사교육을 조장하는 모순을 범하는 것과는 궤를 달리한다. <일타 스캔들>은 철저히 자본의 원리로 굴러가는 시장을 그리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질서에 균열을 내는 변수에 집중한다.
자본주의 교육 시장을 거스르는 변수: 밥과 주체성
최치열이 남행선의 조카를 개인 과외하게 된 동기는 대단한 사명감이 아니다. 첫째는 불면증과 섭식장애에 시달리는 그가 유일하게 넘길 수 있는 행선의 ‘밥’ 때문이고, 둘째는 학생을 향한 순수한 마음 때문이다. 으리으리한 침대를 두고도 침낭에서 쪽잠을 자는 치열에게 생체권력, 즉 진짜 ‘밥줄’을 쥔 행선은 무소불위의 자본을 넘어서는 존재다. 본디 생체권력이란 그토록 무서운 것이다.
또한 학원 강사의 노동이 자본에 의해 철저히 조직된다 한들, 가르치는 일의 특성상 스승과 제자라는 인간적 관계가 필연적으로 작용한다. 학생 역시 부모가 설계한 대로 결과값을 뱉어내는 기계가 아니다. 억지로 최고반에 밀어 넣는다고 수업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고, 시험지를 몰래 빼돌려준다고 해서 일말의 가책 없이 순응하지도 않는 자율적인 주체다. 극 중 맹목적으로 부모를 따르던 이들이 결국 최악의 파국을 맞은 것은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촘촘하게 엮어낸 사회적 병리 현상과 여운
이야기가 입시 경쟁에만 매몰되지 않는 이유는 발달장애, 섭식장애, 은둔형 외톨이 등 우리 사회의 그늘을 자연스럽게 녹여냈기 때문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인물의 반복 행동이 스토킹으로 오인되는 에피소드는, 두려움을 느끼는 서비스직 여성의 입장과 장애인의 현실을 균형 있게 짚어낸다. “민폐인데 왜 돌아다니게 하느냐”는 남자친구의 서늘한 혐오 발언을 굳이 숨기지 않고 들려줌으로써 장애 인식 개선에 대한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섭식장애를 단순히 외모 강박에 빠진 젊은 층의 다이어트 부작용쯤으로 취급하던 시선에도 경종을 울린다. 먹방과 ‘소식좌’ 열풍이 팽창하는 시대에 섭식장애가 얼마나 심각하고 복합적인 사회문화적 병리 현상인지 짚어내는 대목은 시의적절하다. 더불어 최근 서울시 청년의 4.5%가 고립·은둔 상태로 추정된다는 발표가 말해주듯, 드라마 속 은둔형 외톨이의 묘사는 면밀한 정책적 고민이 필요한 당면 과제임을 일깨워준다.
2026년 현재,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자랑하며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는 수많은 한류 배우들의 얼굴 위로,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밥 한 끼의 온기와 주체성을 잃지 않으려 치열하게 온기를 뿜어내던 드라마 속 인물들의 숨결이 겹쳐 보이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